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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물컵 반’ 일본이 채운다더니…‘더 채우라’는 말만 듣고 왔다

등록 2023-03-17 19:33수정 2023-03-18 01:21

[사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강제동원 피해의 과거사를 덮고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제3자 변제안’을 들고 일본 방문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가 끝났다.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강제동원 문제를 ‘사과’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일본군 위안부, 독도 문제 등에 대한 자국 입장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한국에 추가 양보를 요구한 것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6일 ‘강제동원 해법 정부안’을 발표하며 “물컵의 남은 반을 일본 쪽 호응으로 채우겠다”더니, 남은 반도 우리더러 채우라는 말만 듣고 온 셈이다. 일단 먼저 내놓고, 일본 양보만 기대한 무능 외교의 예고된 참사다.

기시다 총리는 16일 정상회담에서 12·28 한-일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윤 대통령에게 요청했고, 심지어 독도에 대한 일본 입장도 전달했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일본 정부 고위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다케시마(독도) 문제도 (현안에) 포함된다” “위안부 문제도 한-일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규제, 2018년 12월 한국 해군이 일본 자위대 초계기를 향해 레이더를 작동해 조사했다는 일본 주장까지 언급하는 등 한-일 관계 여러 부분에서 일본 입장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살뜰하고 꼼꼼하게 외교적 성과물을 챙기려 한 것이다. 17일 대통령실은 독도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다며 부인했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논의 내용을 전부 공개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사실상 시인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어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든 독도 문제든 논의된 바 없다”고 말을 바꿨다. 한-일 간에 정상회담 설명이 엇갈리는 등 혼선이 일고, 석연치 않은 부분이 생겨났다.

이번 일본 방문에 앞서 윤 대통령은 강제동원 피해에 대한 한국 대법원 판결을 ‘제3자 변제 방식’으로 사실상 무효화했다. 여론 동의를 구하거나 피해자들을 설득하는 과정도 제대로 없었다. 오로지 ‘한-일 정상회담’만 바라보며 달려간 것이 약점이 되어, 일본이 더욱 무리한 요구를 할 것이라는 우려가 처음부터 있었다. 만일 기시다 총리가 이런 민감한 이야기를 거론했다면 윤 대통령은 어떻게 대응했는지 밝혀야 한다. 한국 내에서 우려가 큰 후쿠시마 제1원전의 방사성 오염수 방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문제 등에 대해 우리 입장을 어떻게 밝혔는지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우리 입장을 밝히기는 한 건지 알 수 없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국민의힘 간부가 지난주 비밀리에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총리가 직접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과’를 언급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기시다 총리는 수용하지 않았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까지 나왔다. ‘가해자’ 일본은 ‘피해자’인 우리에게 주문하고, 우리 주문은 들은 척도 않는다. 그래도 된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참담한 외교 실패를 더 이상 ‘한-일 관계 개선의 결단’으로 포장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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