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에서 열린 소아진료 등 필수의료 정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과 양곡관리법 등 정부, 여당과 이견이 큰 법안들에 대한 본회의 직회부 카드를 활용하고, 정부·여당은 미리부터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대치가 격화하고 있다. 대통령실과 거대 야당이 권한 대 권한으로 맞서며 타협의 여지를 없앴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은 최근 쟁점 법안들을 잇달아 본회의에 직회부했거나 직회부할 뜻을 밝혔다.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수매하도록 하는 내용의 양곡법 개정안과 간호사 처우 개선을 담은 간호법 제정안, 성범죄 등 금고 이상 형을 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직회부됐다.
민주당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를 지난 21일 통과한 ‘노란봉투법’도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이 위원장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이유 없이’ 60일 안에 심사를 마치지 않으면 본회의로 곧장 보내는 과정(직회부)을 밟을 것이라고 했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하면 법사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법안을 바로 회부할 수 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2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법사위에서 60일이 도과된 주요 민생·경제법안들도 절차대로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노란봉투법과 관련해 “야당이 일방적으로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어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야가 각자의 ‘답’을 정해둔 채 타협 가능성을 사전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란봉투법은 민주당이 제시한 시간표에 따르더라도 법사위에서 ‘60일’의 내용 조정 시간이 있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재계 입장을 대변하며 법안이 상임위원회를 통과하기도 전에 ‘대통령 거부권 행사’부터 언급했다. 대통령의 거부권이 실제 행사된 것은 이승만 대통령 때 45차례를 빼면 지금까지 21차례에 불과하다.
여야는 각각 “민주당이 날치기한 선심쓰기 입법을 막아야 한다”(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169석의 다수당이 대통령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복지부동한다면 그게 오히려 직무유기”(민주당 원내 관계자)라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여당과 야당이 국회 안에서 ‘타협의 정치’를 회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정치외교학)는 “국회에 계류돼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친 노란봉투법이나 간호법 등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건 국회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실에서 추가 협의를 요구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목진휴 국민대 교수(행정학)는 “아무리 필요한 법이라고 해도 합의 없이 추진하면 부작용이 따르게 된다”며 “민주당이 올해 상반기까지 쟁점 법안 처리를 미루고 대통령실에 협의하자고 먼저 제안한다면 외려 대통령실의 운신의 폭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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