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전 국회의장. 정의화 전 국회의장 제공.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2014∼2016년 재임 때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하고 원내교섭단체 요건을 20석에서 10석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당제가 아닌 다당제가 필요하다는 소신이었다. 정계 은퇴 뒤 부산 봉생병원장으로 돌아간 정 전 의장은 <한겨레>와 한 서면·전화 인터뷰에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위해 다당제로 전환해야 하고, 이를 위해 선거제도 개혁을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19일 정리한 정 전 의장과의 일문일답.
-현행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이 뭔가.
“국회의장 재임 중에도 우리 정치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미래가 암담하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소선거구제로 승자독식의 정쟁 정치, 국민 화합을 해치는 지역 구도와 민의가 제대로 반영 안 되는 사표 양산을 바로 잡아야 한다.
선거제도는 모두가 장단점이 있으므로 딱히 무엇이 좋다고 주장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것은 소선거구제를 둘러싼 많은 문제가 노출되고 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사표로 인해 국민적 의사가 제대로 국정에 반영 안 된다는 점이다. 둘째는 승자독식 문제다. 현재 심각한 분열과 갈등의 근본적인 문제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에 있다. 의회 민주주의의 성공은 대화와 타협의 정치에 달렸는데 우리나라 양당정치는 파트너가 아니라 적으로 변한 지 오래됐다.
의회 민주주의는 국가 비전에 맞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가능할 때 성공할 수 있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되기 위해선 다당제가 돼야 하고 다당제는 소선거구로는 안 된다. 다당제가 되면 과반수 정당이 생기기 어렵고 정당 간 연합을 해야 하므로 국익을 위한 초당적인 노력이 가능해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가능하다.”
-국회의장 재임 당시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각 정당 특히, 현재 거대 여·야의 지지와 합의가 불가능해 실패했다. 양당 대표가 합의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해도 당 계파와 기득권 문제로 의원총회에서 비토당했다.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도 ‘(선거제 개편이) 일리 있다고 공감했지만, 우리 의원총회에서 통과되기 어렵다’고 하더라.
또 당시엔 선거제 개편 논의가 지금처럼 탄력받지 못했다. 국회의장만 주장하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반응은 없었다. 국회의원들도 본인들 기득권과 관련 있으니까 논의가 크게 뜨지 못했다.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다.
선거구제는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을 버려야 가능하다. 현실적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나 내 경험으로는 국민의힘의 실질적 총재라 할 수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를 제안한 이상 박근혜 전 대통령 때와 달리 여당에서 (합의가) 가능하다고 본다. (국회의장 재임)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대표와 민주당이 논의에 긍정적이었으므로 현재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기득권만 버린다면 성사가 가능하다.”
-중대선거구제는 지역 대표성이 약하고 파벌 정치를 심화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 문제 제기도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도 파벌 정치는 존재하고 있다. 아시다시피 모든 제도는 장단점이 있다. 국론분열이 심각한 우리 현실을 볼 때 이것을 해결하지 않고는 미래가 암울하다. 진영 간 파국적 정쟁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대립적 정치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 최대 과제다. 정치권이 활발히 논의한다면 중대선거구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제도를 강구할 수 있고 새로운 정치의 틀이 우리 정치의 바람직한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도농 복합제(대도시는 중대선거구, 농촌 지역엔 소선거구) 주장도 있다.
“지난 수십년간 국가운영의 잘못으로 수도권의 초비대현상을 낳아 농촌 인구감소와 지방은 소멸하고 있다. 갈수록 심각해질 것이다. 따라서 지역은 소선구제로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2020년 총선 때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손질도 화두다.
“(국회의장 재임 당시)사표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준연동형 비례제도의 도입을 검토해달라는 심상정 당시 정의당 대표의 제안이 일리있다고 봤지만, 양당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현재의 선거법은 평가를 떠나 20대 국회 말 선거법 개정 당시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전히 무시한 입법행위로 탄생했으므로 무효다. 시합의 규칙을 정하는데 제1야당을 제외하고 통과시켰다. 의회 민주주의에선 절차적 정당성이 중요하다. 절차를 무시하고 꼼수나 편법으로 입법하면 이미 의회 민주주의가 아니다. 따라서 총선을 15개월 앞둔 지금 선거법 논의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하고 정당 득표율에 따른 연동형 모델을 만든다면 다당제가 가능하다.“
-선거제 개편과 함께 개헌 얘기도 나온다.
“대통령 단임제는 수명을 다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권력 구조에 대한 원포인트 개헌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윤석열 정부의 역사적 사명 중 하나는 권력 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과 정치의 틀을 바꾸는 것이다. 선거법 개정으로 국민의 의사가 의정에 제대로 반영되도록 사표를 최소화하고 승자독식의 폐해와 지역 구도를 타파해야 한다. 정치권 모두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가 장래와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자세를 가지고 논의해주길 바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제안했다.
“대통령 4년 중임제와 5년 단임제는 사촌지간이다. 5년 단임제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는 4년 중임에서도 똑같다. 다만 내각제는 먼 훗날 얘기다. 나는 이원집정제를 주장한다.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되 국가를 대표하게 하고 나라 살림은 내각이 맡는 거다. 관련 논의에 군불을 땔 필요가 있다.”
-선거제 개혁 성공을 위해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은.
“나라를 위해 자신의 기득권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차기 총선에서 자신의 유불리에 얽매이지 말고 현재 우리 정치의 폐해를 잘 생각하고 국가의 장래를 위해 판단해주길 바란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사즉생, 생즉사 해야 한다. 선거를 치를 때마다 국회의원이 최소한 반 이상 바뀐다. 기득권을 버리면 그런 사람이 오히려 국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공천을 받고 당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여야의 극한 대치가 심각한 양상이다. 협치를 위한 방안이 있다면.
“지난 수년 전부터 여야가 적대시하는 정쟁이 도를 넘었고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꼼수와 반칙이 판치고 포퓰리즘에 찌들어 나라는 장래는 암담하다. 상호이해나 상호신뢰는 땅에 떨어져 있다. 복원은 쉽지 않겠지만, 심기일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모두가 국민 앞에 참회하고 기본적인 도리와 윤리를 지키고 협력통치를 하겠다고 선언할 것을 요청한다.”
-집권 2년 차를 맞은 윤석열 정부에게 조언을 한다면.
“집권여당이 국정을 잘 이끌고 가기 위해서는 먼저 야당에 손을 내미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는 이재명 대표와 만나긴 쉽지 않다. 대신 국회의장, 야당 대표들과 중진의원들과 자주 만나 야당의 도움을 구하기 위한 노력을 가일층 해주기를 바란다.”
김해정 기자
se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