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주 미국 방문 중 불거진 ‘비속어 논란’과 관련해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하는 것은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며 최초 언론 보도에 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치열한 외교 무대의 한편에서 비속어를 내뱉은 데 대해 고개를 숙이지는 않고, 오히려 파문을 덮기 위해 ‘한-미 동맹 위협론’을 들어 공세적 태도를 취한 것이어서 논란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2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하며 기자들이 ‘이번 순방 과정에서 한 발언이 논란이 됐다’고 묻자 “전 세계 2~3개 초강대국을 제외하고는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자국 능력만으로 온전히 지킬 수 있는 국가는 없다. 그래서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에는 동맹이 필수적”이라며 해당 보도를 ‘동맹을 훼손하는 허위 보도’로 규정했다.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이 ××들이 … 쪽팔려서”라고 발언한 데 대한 비판을 염두에 둔 듯 “그와 관련한 나머지 얘기는 먼저 이 부분에 대한 진상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더 확실히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뒤 집무실로 올라갔다.
대통령실의 이재명 부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순방외교와 같은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에서 허위 보도는 국민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악영향”이라며 “동맹을 희생하는 것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일이며 그 피해자는 다름 아닌 국민이라는 점이 (윤 대통령이) 강조하고 싶었던 메시지”라고 부연했다.
윤 대통령의 이날 발언 직후 국민의힘 지도부는 비속어 발언을 처음 보도한 <문화방송>(MBC)과 더불어민주당의 ‘정언 유착’ 의혹을 주장하면서 이 방송사 박성제 사장과 보도 책임자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히는 등 지원사격에 나섰다. 여권이 ‘비속어 논란에 대해 윤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여론은 묵살하고, 일제히 문화방송을 표적 삼아 반격을 편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윤 대통령의 ‘이 ××’ 발언이 “야당에 대해 얘기한 게 아니다”라고 말해, 사실상 야당을 겨냥한 것이라던 기존 입장을 바꿨다. 특별히 야당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갖추려는 것으로 비친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순방 중이던 지난 22일 윤 대통령의 발언은 “예산 심의권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 야당이 국제사회를 향한 최소한의 책임 이행을 거부하면 나라의 면이 서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라고 설명한 바 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온 국민은 대통령의 진솔한 사과를 기대했건만 대국민 사과는 끝내 없었다”며 “진실을 은폐하고 언론을 겁박하는 적반하장식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한겨레>에 “자신에게 따라붙는 실언 논란을 안보 프레임 쪽으로 돌려 한-미 동맹을 부정하는 ‘이적행위’가 있었던 듯한 주장을 하는 것은 국민을 분열시키고 신뢰를 떨어뜨리는 행위”라며 “지지층 결집을 위한 회피 전략으로 보이는 구시대적 접근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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