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오른쪽 첫째)가 14일 서울 통의동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내각 발표 기자회견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왼쪽 첫째),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와 함께 서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조각이 개인적 친분을 앞세운 독단전 인선으로 마무리되면서 그가 공약했던 ‘책임총리제’도 빛이 바래고 있다. 14일까지 진행된 새 정부 내각 인선 과정에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오면서다.
인수위 대변인실은 이날도 한 후보자의 친필 서명이 담긴 ‘국무위원 후보자 추천서’를 공개했다. 지난 10일부터 내각 인선 발표 때마다 공개한 것으로 한 후보자는 각 부처 장관 후보자들의 이름을 친필로 적었다. 1차 장관 후보자 명단이 공개됐던 지난 10일 한 후보자는 “인수위 역사상 아마 처음일 것이다. 총리 후보자가 추천하는 형식으로 (국무위원 후보자 추천서에) 제가 이름을 쓰고 사인을 한 것이다. 총리의 제청권을 좀 더 대통령 당선자께서 인정을 하시겠다는 것”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원일희 부대변인도 “역대 인수위에서 장관을 지명할 때 처음 있는 일이다. 총리 후보자가 실질적인 장관 지명자 추천권을 행사하는 데부터 ‘책임총리제’를 실현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문서로 남긴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공개한 국무위원 후보자 추천서.
총리 후보자가 추천서에 장관 후보자의 이름을 적고 서명까지 남긴 것은 총리 후보자 본인이 이들을 대통령 당선자에게 제청했다는 의미이지만 이날 마무리된 조각 명단을 보면 한 후보자가 적극적으로 제청권을 행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검찰 내 ‘윤석열 사단’(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충암고-서울대 법학과 직속 후배(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 40년 지기(정호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 등 윤 당선자의 개인적 친분이 강하게 작용해 비판을 사고 있는 인선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총리 후보자는 추천서에 서명만 한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는 이유다. 안철수 인수위원장 패싱 논란에 공동정부 구상까지 휘청일 정도로 조각 과정에서 윤 당선자의 뜻을 절대적이었다. 인수위 관계자는 <한겨레>에 “내각 인선은 윤 당선자 최측근을 주축으로 정보가 공유되고 한 총리 후보자는 같이 협의하는 정도로 알고 있다”며 “책임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무게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 후보자는 이날도 윤 당선자의 ‘맘대로 인선’ 논란을 뒷수습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출근길에 ‘한동훈 후보자 지명이 부적절하지 않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국무위원 한 사람 임명이 시대정신이고 모든 정책을 펴나가는 데 핵심적인 기둥인 통합과 협치의 기본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답했다. 오후에는 윤 당선자가 3차 내각 인선을 발표한 뒤 ‘안철수 위원장이 인선 과정에서 소외됐다’는 지적에 “이해되지 않는다. 아무 문제가 없다”며 자리를 뜨자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를 거쳐서 실제로 부임하게 되면 경제를 살리고 통합과 협치를 바탕으로 한 협력적 국정 운영을 시작하는 그런 단계에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책임총리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해소하기 위한 개념으로, 대통령의 권한 일부를 총리에게 이양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그간 김대중 정부 때의 김종필 총리, 노무현 정부 때의 이해찬 총리 등이 책임 총리의 역할을 작게나마 실현한 사례로 꼽히지만, 대통령제 아래에서 ‘책임총리제’ 자체가 결국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무위론도 적지 않다. 특히 역대 정부에서 중용됐던 정통관료인 한 후보자가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하기보단 대통령을 보좌하는 ‘관리형’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겨레>에 “총리가 실권을 가지지 못한다면 ‘통합형’이든 ‘경제통’이든 의미가 없는 것 아니겠나”며 “책임총리제야말로 당선자의 의지 표명에서 시작된 것인데 의구심이 생기고 있다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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