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새 한국은행 총재 후보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담당 국장(사진)을 지명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로 이창용(62)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을 지명했다. 오는 31일 퇴임하는 이주열 총재의 후임 인사로, 청와대는 ‘윤석열 당선자 쪽의 의견을 들어 인선했다’고 밝혔지만 윤 당선자 쪽은 “협의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놓고 정면충돌한 양쪽이 이번엔 한은 총재 인선을 놓고 진실 공방까지 벌이면서, 신구 권력의 극한 대치가 수습은커녕 한층 격렬해지는 모양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낮 12시10분 긴급 브리핑을 통해 이 후보자 지명 사실을 알렸다. 박 수석은 “이 후보자는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와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 등을 거친 경제·금융 전문가로 국내·국제 경제 및 금융통화 분야에 대한 이론과 정책, 실무를 겸비하고 있다”며 “경제·재정 및 금융 전반에 대한 풍부한 식견과 경험, 글로벌 네트워크와 감각을 바탕으로 국내외 경제·금융 상황에 대응하는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통화신용정책을 통해 물가와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 후보자 지명 배경과 관련해 “(한은 총재)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당선인 측의 의견을 들어 내정자를 발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윤 당선자가 이 후보자 인선에 동의했기 때문에 국회 인사청문 등의 추후 일정까지 고려해 이날 발표하게 됐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윤 당선자 쪽은 한은 총재 후임 인선이 발표된 직후 기자들에게 “청와대와 협의하거나 추천한 바 없다”고 공지했다. 청와대와 소통 창구 역할을 하는 장제원 당선자 비서실장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철희 정무수석이) ‘이창용씨 어때요?’라고 물어 ‘괜찮은 분이죠’(라고 답했다)”라며 “당선인께 답변받은 것도 없다. 그런 것도 없이 당선인 쪽과 합의했다(고 발표했다)”고 반박했다. 인선 협의와 관련해 청와대와 윤 당선자 쪽의 주장이 180도 다른 셈이다.
20대 대선이 끝난 지 2주일이 지났지만 이번 인선 과정을 둘러싼 대립으로 문 대통령과 윤 당선자 사이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 당선자의 집무실 이전 계획을 둘러싼 이견이 해소되지 않아 회동 일정조차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번엔 예민한 인사 문제로 충돌한 탓이다. 곧 후임자를 찾아야 하는 감사원 감사위원 2명 인선도 신구 권력 갈등 폭발의 또 다른 뇌관으로 꼽힌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 임기가 끝나는 감사위원 후보로 문재인 정부에 우호적인 인사가 내정돼 있다고 주장했다. 윤 당선자 쪽 관계자는 이날 “(문재인 대통령과) 며칠 일하지도 않을 사람에 대해서 임명하고 떠나겠다는 건 알박기”라며 “이 정권에서 하는 모든 일이 (감사위원 임명) 여기에 방점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