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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여행?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지부터 봐야”

등록 2022-02-14 04:59수정 2022-03-30 11:38

유권자와 함께하는 대선 정책 ‘나의 선거, 나의 공약’
⑤돌봄이 필요한 사람들
장애인들의 ‘당연한 권리’
최중증 발달장애인인 이윤호씨와 어머니 김남연씨가 지난달 24일 서울 성동구 자택에서 도전적 행동을 줄이기 위해 공을 손에 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최중증 발달장애인인 이윤호씨와 어머니 김남연씨가 지난달 24일 서울 성동구 자택에서 도전적 행동을 줄이기 위해 공을 손에 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장애인에게 이동과 여행, 병원 진료는 일상이 아니라 도전이다. 그 도전은 사회적 돌봄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겨레>가 만난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 활동지원사 9명은 이 뒷받침이 여전히 소홀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른살 때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장애를 지니게 된 추경진(54)씨의 오랜 바람은 한국을 “한번 싹 돌아보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준비해야할 게 산더미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저상버스 도입률은 어느 정도인지, 장애인 콜택시는 있는지 확인부터 해야 한다. 서울은 전동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저상버스 도입률이 그나마 57.8%이지만, 서울을 뺀 전국은 도입률이 19.8%에 그친다. 단순 계산을 해도, 버스 4대를 보내야 저상버스를 탈 수 있는 셈이다. 장애인 콜택시는 지역에 따라 필요한 서류와 예약방법 등이 모두 다르다. 지자체별로 운영 주체가 달라 지역마다 가입도 따로 해야 하고, 경계에선 다른 지역 콜택시로 갈아타야 한다. “지자체마다 요구하는 서류도 조금씩 달라요. 장애인은 내가 가고 싶은 여행지를 고르는 게 아니라 여행이 가능한 지역을 갈 수밖에 없어요.”

장애인 부부를 돌보는 활동지원사 신경숙(53)씨는 부부와 함께 갔던 부산과 경주 여행 때 불편함을 겪었다. 부산에서 관광지 사이를 이동할 때마다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했는데, 장시간 기다리느라 시간을 다 허비했다. 2020년 한국장애인개발원이 펴낸 ‘장애인콜택시 전국 통합체계 마련을 위한 연구’를 보면, 장애인 콜택시 평균 대기 시간은 48.2분, 최대 대기 시간은 240분이었다. 그래서 경주에선 자차를 이용했는데, 이번에는 자갈이 깔린 관광지 환경이 문제였다. 경주에서 장애인용 전동스쿠터나 전동휠체어 대여가 안 되는 바람에 자갈돌이 깔린 관광지 등에서 휠체어를 미느라 온갖 고생을 다 한 것이다.

장애인인권단체가 지난해 12월6일부터 올해 2월8일까지 서울의 지하철역에서 ‘지하철 출근길 선전전’을 44번 진행한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와 함께 장애인 콜택시 같은 특별교통수단의 시외 운행에 필요한 예산 근거를 담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했는데, 원안에 의무조항(‘해야 한다’)으로 돼 있던 예산 지원을 임의조항(‘할 수 있다’)으로 바꿔 문제가 됐다.

☞추경진, 신경숙의 정책 요구: 저상버스 의무화, 장애인 콜택시 확충 및 전국 통합운영, 특별교통수단 운영비 예산 보장
왼쪽부터 장애인 활동지원사 김옥희씨, 장애인 활동지원사 신경숙씨, 전신마비 장애인 추경진씨
왼쪽부터 장애인 활동지원사 김옥희씨, 장애인 활동지원사 신경숙씨, 전신마비 장애인 추경진씨

신체 장애인들의 주요 요구가 이동권이라면, 정신 장애인들의 요구는 치료와 관련돼 있다. 최중증 발달장애인인 이윤호(24)씨는 신호등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혼자 두면 차도로 뛰어들기 일쑤다. 한 번은 사고가 날 뻔한 적이 있는데, 이씨는 그 상황이 재미있었는지 깔깔거리며 웃었다. 타인을 공격하거나 자해하는 ‘도전적 행동’도 심하다. 지난달 24일 서울 성동구 집에서 만난 어머니 김남연(55)씨는 아들의 도전적 행동을 말리다 긁힌 상처를 찍은 사진을 여러장 보여줬다. “올해 초에 이불을 개서 넣었는데, 윤호가 이불을 개지 말라는 거예요. 손님이 오시기로 해서 이불을 개야 한다고 말하고 나서 이불을 개는데, 확 달라들어서 뜯어버리더라고요.”

이런 행동은 이씨가 원하는 걸 스스로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뭔가를 원하는데 표현할 방법이 없잖아요. 그러면 가서 꼬집는 거예요. 유치원에서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걸 갖고 싶으면 달라고 해야 하는데 달라고 할 줄 모르니까 꼬집은 다음에 친구가 우는 사이에 가져오는 식이죠.”

다행히 최근 행동중재수업을 들으면서 이씨의 도전적 행동은 눈에 띄게 줄었다. 행동중재수업은 발달장애인이 도적전 행동 등을 하기 전에 환경을 바꿔서 도전적 행동의 기제를 사전에 차단한다. 예를 들어, 집에 오면 자꾸 자기 몸을 때리고 꼬집는 행동을 하는 발달장애인에게 집에 오자마자 고무공을 쥐여주면 공을 쥐고 있느라 그런 행동을 못 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김씨는 발달장애인은 물론이거니와 돌봄하는 부모도 이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김씨가 행동중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코로나19 자가격리 때문이었다. 아들과 함께 지난해 모두 3번의 자가격리를 경험했는데,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혼자 돌봄을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 김씨에게 너무 버거웠다. “첫 번째 자가격리 때 윤호가 자기를 막 때리면서 나가겠다고 난리를 피웠죠. 쟤랑 나랑 정말 죽을 것 같은 거예요. 이대로는 못 살겠다 싶어서 행동중재 공부를 시작했어요.”

문제는 부모와 자녀가 이 수업을 함께 받으면 회당 20만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김씨는 정부와 지자체에 행동중재지원센터 설립을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이거라도 한번 해봐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아니면 일반적인 가정은 못 해요. (국가)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있어요.”

왼쪽부터 발달장애인 엄마 최효숙씨, 발달장애인 엄마 이금순씨, 발달장애인 엄마 김남연씨, 중증장애인 안명훈씨
왼쪽부터 발달장애인 엄마 최효숙씨, 발달장애인 엄마 이금순씨, 발달장애인 엄마 김남연씨, 중증장애인 안명훈씨

또 다른 최중증 발달장애인인 아들 심우형(31)씨와 함께 사는 최효숙(55)씨에게 가장 큰 난관은 병원 진료다. 심씨는 한달에 한번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병원에만 가면 소리를 지르거나 난동을 부리고, 순서가 남아 있는데도 진료실에 들어가려고 떼를 쓴다. “아들이 덩치 큰 성인이어서 힘으로 제압이 안 되니까 병원 갈 때마다 활동지원사와 남편, 저 이렇게 셋이 달라붙어요. 처방받으러 가는 몇시간이 악몽입니다.”

정작 진료실에 들어가면 의사와 대화를 나누는 건 심씨가 아니라 최씨다. 이 때문에 최씨는 발달장애인 부모가 ‘대리처방’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대선 후보들에게 요구했다. 현행 의료법상 환자의 의식이 없거나 거동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만 의사 판단에 따라 대리처방이 가능하다. “아들이 언어로 표현을 못 하니까 제가 다 이야기해줘야 해요. 그런데도 기어이 아들을 데리고 오라고 하니 부모들은 피가 마르지요.”

전남 여수에 사는 이부심(58)씨는 발달장애인 아들 강법운(32)씨의 치과 치료를 하려면 차로 2시간 거리인 광주에 있는 광주전남 권역장애인구강진료센터까지 가야 한다. 심지어 지난해 2월 진료 예약을 하고 실제 치료가 시작된 건 6개월 뒤였다. 발달장애인은 충치를 치료하려고 해도 전신마취가 필수다. 치료 중 저항하거나 움직이면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그런데 전신마취가 가능한 장애인구강진료센터는 전국에 14곳밖에 없다. “지역에서도 장애인들이 부담 없이 치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전담병원을 지정해주는 게 소원입니다.”

뇌성마비 중증장애인 안명훈(44)씨는 2004년 아테네 패럴림픽 ‘보치아’ 경기에서 금메달을 땄다. 보치아는 뇌성마비 장애인과 보조인이 팀이 되어 표적구에 공을 가깝게 굴릴수록 높은 점수를 얻는 경기다. 안씨는 후배 중증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될 ‘운동 보조’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중증장애인을 위한 ‘운동 보조’ 제도가 있다면 장애인 후배들이 운동을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남연, 최효숙, 이부심의 정책 요구: 발달장애인 행동중재지원센터 설립, 발달장애인 자녀 대리처방 허용, 기초자치단체 단위 장애인 치과전담병원 지정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한겨레가 이(e)북으로 펴낸 ‘나의 선거, 나의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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