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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털기’와 ‘검증’ 사이…도마에 오르는 ‘자녀’라는 이름

등록 2019-09-09 07:59수정 2019-09-09 16:17

정치BAR_김미나의 정치적 참견시점
국회 인사청문회 단골손님
자녀의 입시·병역 면탈·취업 부정 의혹
조국 청문회에서도 자녀 문제에 맹공
청문회 이원화 등 대안도 제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자리에 앉아 있다. 공동취재사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자리에 앉아 있다. 공동취재사진
“앞으로는 정치인에게 출산의 의무를 다했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어.”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이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신생아 수)이 0.98명으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최하위라는 기사를 읽고 국회 한 보좌진이 한 말입니다. 출산이 국방과 납세 등 헌법상 국민의 의무와 같이 미래 정치인의 본분처럼 취급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지난 2일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도 출산 문제가 논란이 됐습니다.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은 미혼인 조 후보자에게 “본인 출세도 좋지만, 국가 발전에도 기여해 달라. (낮은) 출산율이 결국 우리나라를 말아먹는다”고 했습니다. 아이를 낳아 국가 발전에 기여하라는 ‘막말’을 결혼하지 않은 조 후보자에게 내뱉은 것입니다. 조 후보자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을 뿐 별다른 답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이에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 도덕성을 검증하는 자리에서 이와 무관한 후보자 개인의 특성을 거론하거나 사회적 합의가 없는 결혼, 출산 같은 부분을 공직자에게 적용하는 듯한 발언에 대해 유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외신도 정 의원의 발언을 주목했습니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해당 발언을 소개하며 “한국 사회에서는 경제 발전에도 불구하고 가부장 문화가 유지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정반대의 얘기를 들은 날도 있습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자녀의 입시 의혹이 막 불거졌을 때입니다.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없는 한 정치인이 중학생 자녀를 둔 친구에게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넌 아이가 없으니 오히려 좋을 수도 있겠다”는 질투인지, 분노인지 분간하기 힘든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며 그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고위공직자와 정치인의 자녀 문제가 연일 입방아에 오르고 있습니다. 입시 비리, 병역 면탈, 취업 부정 등 의혹은 국회 인사청문회의 단골손님입니다. 하지만 조 후보자 지명 이후 지난 한 달 동안은 분명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 모습입니다. 논문과 표창장, 봉사활동 증명서, 신청 없이 지급된 장학금까지…. 조 후보자 딸의 고등학교·대학교·의학전문대학원 입시와 관련한 대외활동 실적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생년월일과 출신 학교, 주거 지역, 온·오프라인상 사생활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공개됐습니다. 조 후보자 딸은 위협을 느끼고 있다며 경찰에 신변 보호 요청까지 했다고 합니다.

지난 6일 조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 또한 딸의 입시 관련 의혹으로 채워졌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입시 관련 의혹 △사모펀드 의혹 △웅동학원과 부동산 의혹 중 자녀의 입시 관련 의혹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조 후보자는 딸 관련 의혹을 꼬치꼬치 캐묻는 야당 의원들의 질의가 나올 때마다 거듭 “사실과 다르다”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지난 3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선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중 ‘제가’를 잘못했다는 부분을 인정한다”고도 했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한다는 말입니다. 조 후보자는 이 중에서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지 못했다고 자책한 것입니다. 언제나 위풍당당하던 조 후보자도 자녀 문제 앞에선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조 후보자 청문회에서 날이 선 질문을 퍼붓던 장제원 한국당 의원도 자녀 문제 앞에서 난처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래퍼 아들의 음주운전 사고가 대서특필된 겁니다. 국회의원인 아버지를 내세워 피해자를 회유하려 하고, 운전자를 ‘바꿔치기’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습니다. 장 의원은 “아들은 성인으로서, 자신의 잘못에 대한 모든 법적 책임을 달게 받아야 할 것”이라며 사과했습니다. 정의당은 “경찰 조사에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논평을 내놨습니다.

무분별한 ‘가족 신상털기’와 필요한 ‘후보자 검증’ 사이에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청문회마다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여당일 때는 “후보자의 정책과 능력을 먼저 검증하라”고, 야당일 때는 “공직 운운하기 전에 집안부터 챙기라’고 맞붙습니다. 고위공직자와 정치인이 자녀 문제로 공직에서 물러나거나, 후보자 자리에서 자진해서 사퇴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집니다. 여아 모두 문제점을 인식해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여럿 발의해 놓은 상태입니다. 국회 회기마다 가장 자주 언급되는 대안 중 하나는 업무 능력을 점검하는 인사청문회와 도덕성을 검증하는 인사청문회를 이원화하고, 도덕성 부분에 대해선 비공개회의를 원칙으로 하자는 내용입니다. 필요성에는 여야가 모두 공감하지만, 논의는 멈춰있습니다.

‘자녀 문제’는 앞으로도 청문회의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될 겁니다. 부의 대물림, 기회의 불평등, 크게는 ‘정의’와 ‘공정’이라는 가치에 대한 후보자의 ‘언행일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잣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싸움에는 룰이 있습니다. 부모의 잘못은 부모가 책임져야 합니다. 자녀의 잘못은 자녀가 책임져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저지른 잘못은 함께 책임지는 게 맞습니다. 다만 부모가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자녀가 특혜를 받아서는 안 되는 것처럼, 부모가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자녀가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도 안 될 겁니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자조가 정치권에서 오르내리는 것이 썩 바람직한 일은 아닐 테니 말입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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