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달 24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식당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생과 취업준비생들과 함께 치킨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누리집 갈무리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오는 5일 발표할 에세이집 <밤이 깊어 먼 길을 나섰습니다>는 20∼40대 ‘밀레니얼 세대’ 취향에 맞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표지엔 황 대표가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떠날 채비를 하는 모습이 그림으로 친근하게 담겨 있습니다. 136페이지짜리 소책자 형태입니다.
한국당은 지난 2일 보도자료를 내어 “황 대표가 18일간 4080.3km를 이동하며 32개 도시를 방문하는 민생투쟁 대장정 일정이 주 내용”이라며 “당직자 및 보좌진, 당원 10명의 내부자들 인터뷰를 통해 황교안 대표 취임 100일에 대한 평가와 바람을 담았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당은 책 제작 뒷얘기를 담은 동영상도 유튜브에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30대 힙합 뮤직비디오 감독이 제작을 맡았습니다. 강지연 한국당 콘텐츠티에프(TF) 팀장은 “한국당에서 나올 수 없는 책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며 “젊은 당원들의 바람을 반영해 새로운 디자인을 통해 자유한국당의 변화와 혁신을 알리고 싶었다”고 기획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황 대표는 오는 5일 저녁 국회 사랑재에서 수도권에 사는 20∼40대 젊은 층과의 토크 콘서트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번 행사의 제목은 ‘황교안x2040 미래찾기’입니다. 포스터에는 황 대표가 꽃다발을 들고 “우리 만날까요?”라고 말을 건네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시도는 다양해졌지만, 공감 능력은?
한국당은 최근 젊은 층과의 접점을 넓혀보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31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에서 황 대표는 “젊은 인재들을 배치해서 여성 친화적, 청년 친화적 문화를 확산시키려고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최근 청년과 여성 유권자층에 부쩍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 황 대표의 ‘민생 투쟁 대장정’에서도 드러납니다. 전국적으로 학부모 간담회, 대학 강연, 공무원 시험 준비생과의 만남 등을 마련했고, 중소기업 현장을 돌며 젊은 층과 많이 소통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행보를 들여다보면 물음표가 따라붙습니다. 지난 22일 경기 남양주 진건읍에 있는 한 중소 카시트 제작업체에서 황 대표가 한 발언의 일부입니다.
“다들 대기업 직원이 되려고 하고 공무원되려고 하니까 중소기업 지방은 안중에 없는 것입니다. 지방 중소기업도 굉장히 많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지방에 있는 명문 기업들 가보면 근무 여건도 좋고 후생복지도 잘되어있는 것 많은데 무조건 안간다 말이죠. 총리 시절에도 지방에도 문화가 있고 지방에도 생활이 있는 여건들이 만들어져야 가지 않겠느냐, 지방 중소기업이 있다하더라도 사내 카페를 멋지게 만들어가지고 회사 가는게 즐겁게 만들어주면 아무래도 지방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겠냐 얘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이런 발언은 지방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 격차, 장시간 노동과 일-가정 양립 등 청년 일자리의 핵심 쟁점을 비껴가면서 공감하기 어려운 제안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발표한 <밤이 깊어 먼 길을 나섰습니다> 또한 한국당의 변화와 혁신을 담겠다는 취지에 맞춰 중간중간 황 대표의 캐릭터를 끼워 넣었고, 젊은 당직자들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용을 샅샅이 보면 청년층 포섭보단 황 대표의 지난 100일을 다소 ‘영웅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자유한국당 당원들은 전통적인 보수적 가치를 기반으로 당을 안정시킬 수 있고, 분열된 보수진영을 통합할 수 있으며, 문재인 정권과 제대로 싸우는 동시에 나아가 중도층까지 포섭할 수 있는 리더를 원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황교안이었다.” (9페이지)
“조직원의 희생을 알아주는 리더가 있는 정당. 자유한국당이 드디어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21페이지)
“부산 시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듣는 부산의 민생경제 파탄 수준은 생각보다 더 처참했다. 이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도, 황교안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였다. 모인 사람들은 황교안 이름 석 자를 외쳤다. 황교안에 대한 부산 시민들의 기대를 느낄 수 있었다. (35페이지)
이런 내용은 한국당의 지지 청년층을 겨냥했다기보다 ‘대권 주자’로서의 황 대표 본인을 홍보하려는 ‘황비어천가’에 가깝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당은 이 에세이를 오는 8일부터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적은 내부에? ‘1인 1 유튜브’와 ‘꼰대 정당 탈출 프로젝트’에 ‘막말 뿌리기’
한국당은 젊은 누리꾼들의 취향을 맞춘 의원 개인 유튜브를 개설하도록 하고 콘테스트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말까지 의원 1인당 1편 이상의 영상을 제출하도록 했는데 의원 다수가 지금껏 출연한 라디오나 티브이(TV) 출연 영상을 편집해 올려 겨우 구색을 갖추었습니다. 물론 참신한 아이디어도 여럿 나왔습니다. ‘핵무장론’을 주장해 온 원유철 의원은 ‘핵유철의 인사이드’ 코너를 통해 악플을 직접 읽었습니다. 평소 체력단련을 즐긴다는 주광덕 의원은 ‘국민 행복 100% 챌린지’ 코너를 통해 제기차기 60번에 도전했고요. ‘당구장 금연법’을 통과시킨 김명연 의원은 직접 당구장에 가서 현장을 둘러보는 ‘현장탐방-국회의원 김명연, 당구장에 가다’를 제작해 게시했습니다.
지난달 7일 한국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장으로 임명된 김세연 의원(47)은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는 각종 행사를 기획하면서 ‘청년 보수층’에 접근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꼰대 정당 탈출 프로젝트’로 불립니다. 여의도연구원은 만 30살 박진호 김포시갑 당협위원장을 부위원장으로 앉히고 연구원 업무를 여의도 증권가에 있는 공유 오피스 ‘위 워크’(We Work)에서 일부 진행하면서 새 아이디어를 확충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엔 1980~90년대생 당직자와 지역위원장, 기자들 일부를 초청해 당의 변화 모색하는 모임도 진행했습니다. 기자들 사이에선 그 모임이 ‘한국당스럽지 않았다’는 칭찬이 쏟아졌습니다. 김 의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밀레니얼 세대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지금까지 당이 보지 못했던 것과 다른 세계가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내년 총선도 접근해보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김 의원의 ‘고군분투’를 도와야 할 당은 오히려 ‘경쟁적 막말’로 훼방을 놓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극우적 발언과 경쟁적 망언은 오히려 청년층의 마음을 떠나게 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김 의원은 “중도층을 포섭하기 어려운 발언들이 쏟아져 나와 그런 모습을 중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더 치열하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기존 보수 정당의 전통적 의제인 경제나 안보 정책 외에도 공감 일으킬 청년 정책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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