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6번째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장외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9일간 이끌어온 ‘민생투쟁 대장정-국민 속으로’가 25일 서울 광화문 규탄집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이번 6차 규탄집회는 장외집회의 ‘피날레’인만큼 한국당이 어떤 주장으로 끝을 마무리 지을 지 많은 관심이 쏠렸습니다. 한국당은 지금까지 광화문에서 3번, 대구·경북 그리고 대전에서 한번씩 장외집회를 열었습니다.
19일 장외집회 결론은… 한국당의 총선 승리?
마지막 집회의 결론은 현 정부가 “무능 정권, 무책임 정권, 나아가 대책이 없는 무대책 정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황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는 입을 모아 민생투쟁의 결과 민심을 알게 되었다며 다음과 같이 전했습니다.
<황교안 대표 연설>
“지난 18일 동안 전국 4,000km를 달리면서 ‘국민 속으로-민생투쟁대장정’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면서 어렵고 힘든 우리 국민들의 삶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가 전국을 돌아보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 첫 번째로 무능정권이고, 두 번째는 무책임 정권이라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이 정부에는 대책이 없는, 무대책 정권입니다. 이런 무대책 정권 믿어도 되겠습니까.”
<나경원 원내대표 연설>
“문재인 대통령은 ‘독재자의 후예’라고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런 말할 자격 있습니까. 3대 세습 독재와 북한 인권 나몰라라 하는 문재인 대통령, 그런 말할 자격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 좌파독재를 곳곳에서 펼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야말로 ‘좌파독재의 화신’ 아니겠습니까.”
한국당 지도부가 내놓은 대안은,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한 보수층 결집”이었습니다.
황 대표는 “국민의 주머니 쥐어짜서 내년 선거 표 얻겠다고 하는 이 정권, 우리가 그냥 놔둬도 되겠냐. 우리가 막아내야 된다. 싸워야 된다. 이겨야 한다”며 “우리가 나뉘어지면 되겠나. 우리끼리 싸우지 말고 똘똘 뭉쳐야 한다”고 보수층 결집을 호소했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를 중심으로 우리가 똘똘 뭉쳐 대한민국을 지켜야 한다. 그것은 바로 총선이다”며 “총선에서 잘못해서 정권에게 더 많은 힘을 실어주다가 내년에 우리는 영영 좌파의 길로 가게 된다. 좌파 독재 국가를 막아내는데 함께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흡사 조기 선거 유세전을 방불케하는 현장이었습니다.
장외투쟁 과정서 청년·안보·부동산 황당 대안
황교안 대표는 현 정부를 “대책이 없는 무대책 정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민생투쟁 대장정 중 만난 황 대표는 수차례 한국당은 ‘대안 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혀왔습니다. 경기·강원도 지역 버스대장정을 떠나던 22일 오후 만난 황 대표는 “많은 분들을 만나 말씀을 잘 들으면서 대안을 생각하고 마련해, 대장정을 마친 뒤에는 국민들께 앞으로 이 나라를 어떻게 살려낼 것인지 약속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민생투쟁 대장정 과정에서 황 대표가 일부 보여줬던 ‘대안’을 놓고 뒷말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황 대표는 22일 경기도 남양주의 한 중소 카시트 제작업체에서 열린 지방 중소기업인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자리에서 한 지역 중소기업 대표가 “지역에서 직원을 구하기 힘들다”며 지방의 교통 인프라 확충을 부탁하자,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젊은이들의 인식 문제도 중요하다. 다들 대기업 가려고 하고 공무원이 되려고 하니까 지방 또는 중소기업은 안중에도 없다”며 “실제로 지방 명문 기업들을 가보면 근무 여건도 좋고, 후생복지도 잘 되어 있는 곳이 많은데, (젊은이들이) 무조건 안간다”고 청년들의 ‘인식’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이어 “총리 시절에도 지방에 중소기업이라 하더라도 사내카페를 멋지게 만들어서 회사 가는 것이 즐겁도록 만들어주면 아무래도 그런 것들이 지방에 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겠느냐 이야기도 했었는데, 제안해 주신 문제(교통 인프라)에 더해 근로 여건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해 논란이 됐습니다. 정작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여기고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격차, 장시간 노동, 소위 ‘갑질’ 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 문제에 대한 언급은 빠진 채, 청년들의 인식을 문제삼으며 ‘사내카페’가 대안으로 제시된 까닭입니다. 정의당 청년본부는 “황당한 대안”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3일 강원도 철원군에 있는 육군 3사단을 방문, GP(감시초소) 철거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전투모를 착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 대표의 황당한 대안은 ‘안보’ 분야에서도 등장했습니다. 지난 23일 황 대표는 강원도 철원 GP철거 현장을 방문해 “정부의 안보 의식이 약해져 시스템을 망가뜨려서는 안된다”며 “남북군사합의를 조속히 폐기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황 대표는 “군에서 양보하는 입장을 가지면 안 된다. 정치권에서 평화를 이야기해도 군은 먼저 (GP를) 없애자고 하면 안 된다”면서 “군은 정부, 국방부의 입장과도 달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군이 정부 지침이나 지시를 거슬러도 된다’는 취지로 읽힐 수 있는 위험한 발언입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9·19 군사합의의 충실한 이행과 빈틈없는 군사대비태세에 만전을 기하면서 정부 정책을 강력한 힘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우리 장병들의 사기를 저하시킬 수 있는 무분별한 발언은 국가안보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여야 정치권에서도 “군이 문민통제를 벗어나 항명하라는 얘기냐”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부동산 분야에서도 쌩뚱맞은 지적이 나왔습니다. 황교안 대표는 지난 24일 ‘수도권 부동산 대책 점검’을 위한 ‘광교 아파트 주민간담회’에 참석해 “지금 여러분께서 속상해하시고 힘들어하시는 문제들도 결국은 정부가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데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며 “최근에 정부가 공시지가를 급격하게 올리면 주민들의 부동산 관련 세금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아마 6월 되면 고지서가 나올 텐데 생각보다 굉장히 무거운 중과세가 될 것으로 걱정이 된다. 여기 계신 분 모두가 올해 세금이 얼마나 오를지, 세금폭탄 맞는 것은 아닌지 많이 걱정들 되실 것이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이 아파트 주민들의 현재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간담회에 참여한 주민들은 공공임대주택 분양 전환을 앞두고 있는 ‘무주택 세입자’들이었습니다. 10년동안 임대주택에 살다 우선 분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생겼지만, 시세가 많이 오르면서 분양받기 힘든 처지에 놓여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무주택자에게 부동산 세금폭탄을 염려한다고 말한 셈입니다.
지난 23일 산불 피해 현장인 강원도 고성을 찾아 현장 최고위원회를 여는 자리에서 황 대표는 피해 주민들에게 대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며 혼쭐이 나기도 했습니다. 황 대표가 “북한 눈치 살피느라 (정부가) 우리 군을 뇌사상태로 만들고 있다. 이런 정부를 믿고 잠이나 편히 잘 수 있겠나. 참 안타까운 상황”이라며 “함께 국정을 이끌어야 할 야당은 줄기차게 공격하면서 우리 국민 위협하는 북한 독재정권은 앞장서서 감싸고 있다”고 산불과 관련없는 사안으로 정권을 비판하자 회의에 참석한 한 주민이 “대표님, 여기서 홍보하듯이 말씀하지 마시고 어떻게 할지 말씀해달라. 홍보하러 오셨냐”고 외쳤습니다. 황 대표가 “최고위원회의 진행 중이다”고 답하자, 주민은 다시 “국회 가서 홍보하면 되지 왜 여기 와서 난리냐”고 반발했습니다. 산불 피해와 관련한 대책 논의를 기대했던 주민들의 절박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정책적 대안’ 한국당 장외투쟁 시험대 될 것
한국당은 장외투쟁 이후 계획에 대해 아직까지 명확히는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우선 전국 방방곡곡을 도는 장외투쟁은 당분간 휴식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현안별로 현장을 찾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의 ‘민생투쟁 대장정 시즌2’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안없는 비판’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시즌1에서 문제점을 알리는데에만 주력했다면, 앞으로 국회에서 한국당이 어떤 정책적 대안을 내놓는지가 지난 3주의 장외투쟁을 평가할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