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공직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마다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요청한 자료가 오지 않았다” “자료를 너무 늦게 전달받아 제대로 분석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질타와 꾸지람 뒤엔 “오늘만 모면하기 위해 위증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예상대로 따라붙는다. 후보자를 향해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고, 일부 청문위원들이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파행되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가 병역기피, 탈세, 불법적 재산증식, 위장전입, 연구 부정행위, 음주운전, 성범죄 등 ‘7대 인사 배제기준’을 제시했지만, 후보자들의 낙마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인사청문회가 ‘아니면 말고 식’ 흠집 내기와 무분별한 정치공방의 장으로 변질됐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후보자들에 대해 청와대가 임명을 강행하는 사례마저 잇따르자 일각에선 이번 기회에 인사청문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20대 국회 들어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은 총 42건이 접수됐지만, 모두 상임위에서 잠자고 있다.
자료 제출 거부 시 해결책 없고 버티기 ‘보이콧’에 국민 공분
현행 인사청문회법을 보면 국회는 공직 후보자의 인사청문에 필요한 자료를 국가기관에 요구할 수 있고, 기관은 5일 이내에 자료를 제출하게 돼 있다. 자료 제출을 하지 않을 땐 경고할 수 있지만, 다른 법적 조처를 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후보자가 개인정보 등을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경우에 사실상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인사청문회법 제12조(자료제출요구) ①위원회는 그 의결 또는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로 공직 후보자의 인사청문과 직접 관련된 자료의 제출을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 기타 기관에 대하여 요구할 수 있다.
②제1항의 요구를 받은 때에는 기간을 따로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5일 이내에 자료를 제출하여야 한다.
③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자료의 제출을 요구받은 기관은 제2항의 규정에 의한 기간 이내에 자료를 제출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사유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이 경우 위원회는 제출된 사유서를 심사경과보고서 또는 인사청문경과보고서에 첨부하여야 한다.<신설 2003. 2. 4.>
④위원회는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자료의 제출을 요구받은 기관이 정당한 사유 없이 제2항의 규정에 의한 기간 이내에 자료를 제출하지 아니한 때에는 당해 기관에 이를 경고할 수 있다.<신설 2003. 2. 4.>
올해 들어 발의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 4건에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①청문기한 연장 ②자료 제출 시한 지정 또는 단축, 불응 시 징계 요구 ③금융 거래·진료 기록 등 추가적 세부 자료 요청 허용 ④위증 처벌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정용기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 8일 △상임위 청문기한을 20일로 국회 청문기한을 30일로 연장 △경과보고서 미 송부 시 10일 이후 20일 이내 정부의 송부 요청 가능 △후보자 위증 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 △자료 제출 지연·불응 시 기관에 경고 및 관계자 징계 요구 가능 △세금 납부 및 체납 실적 제출 기간을 5년 치에서 10년 치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같은 당 박대출 의원도 인사청문 관련 자료를 제출받지 못했을 경우 위원회가 10일 이내 범위에서 인사청문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달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 등 11명이 제출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에는 ‘공직 후보자의 금융 거래 내용 및 진료기록 등의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 등 11명은 “공직 후보자가 선서할 경우, 진술이나 서면답변에 거짓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을 담았다. 정부에는 후보 추천의 책임을 무겁게 지우고, 지명된 후보자의 역량을 면밀하게 검토해보자는 취지다.
지난해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이 제출한 개정안은 인사청문위원회를 윤리성 검증인사청문회와 업무능력검증 인사청문회로 이원화하고, 윤리성 검증인사청문회 회의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해 인격과 사생활을 보호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렇게 되면, 검증 역할을 맡은 상임위 위원들이 업무능력검증인사청문회에선 후보자의 업무능력과 자질에 대해 더 깊이 있는 검증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여기엔 인사청문회가 ‘사생활 들추기’로 전락하는 것에 대한 비판 의식이 담겨있다. 윤 의원은 당시 “공직 후보자의 가족 관계, 재산 등 사적 영역을 공개하게 돼 있어 공직 기피 현상을 낳는다”며 “과도한 신상털기에 치우쳐 인사청문의 본질인 업무능력과 자질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문제점을 낳는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임명권자가 사전에 후보자의 인적사항을 검토하고 문제사항이 있다면 그런데도 왜 추천했는지 의회에 제출하게 하는 안’(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 ‘임명권자 또는 지명권자가 해당 후보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로부터 어떻게 추천을 받았는지 제출하는 안’(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 대표발의), ‘청와대 인사검증 사전질문 답변서 등을 제출하도록 하는 안’(주호영 자유한국당 의원 대표발의), ‘업무 수행이 정상적으로 가능한 건강상태인지에 관한 의사의 소견서를 임명동의안 등에 첨부하는 안’(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 대표발의) 등이 제출된 상태다.
눈에 띄는 것은 어느 회기 때나 여당보단, 야당에서 청문회법 개정안 발의에 적극적이라는 사실이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 교양학부 교수는 12일 <한겨레>에 “의원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여당은 불편함을 이유로, 미래 정권을 잡을 것이라 믿는 야당에서도 쉽사리 개혁에 나서지 않는 것”이라며 “청문회 제도 등은 외부 전문가들에게 전권을 줘 그 방법을 따라가게 하는 게 개혁을 위한 방법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여야 공감대 형성
인사청문회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6월 이한동 국무총리 후보자를 대상으로 처음 실시됐다. 현 제도를 좀 더 현실성 있게 고칠 때가 됐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정치권과 학계 일부에선 미국식 청문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미국 백악관은 고위공직자를 임명하기 전 연방수사국(FBI)의 신원조사, 국세청 공직자윤리위원의 검증, 가족관계, 직무 윤리, 동료 평판, 학창시절 음주·마약 여부 등 230여개 항목을 미리 조사하며, 해명 자료를 의회에 제출한다. 대통령은 정당 지도부를 만나 사전 협의하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상임위는 청문회를 열기 전 미리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전 조사를 한다. 국내 전문가들도 청문 자료 제출의 기준과 범위를 한층 상세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치권에서도 ‘청문회를 고쳐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 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막무가내 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인사청문회 관련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며 “국회에서 명백하게 부적격 인사로 판명되고 채택이 거부된 경우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수 없도록 하는 관련 법 개정 추진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비효율적인 인사청문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양당이 극단적 대립과 정쟁을 유지하면서 각자의 기득권만 지키려 하고 있다”, “지금의 제도로는 어느 정권에서든 국회와 청와대, 여당과 야당의 대립을 피할 수 없다. 이번 기회에 올바른 방식으로 제대로 개선하고 정쟁으로 인한 국력 소모를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생중계 인사청문회에서 거의 죄인 취급을 하고 인간적 모멸감을 주는 방식이면 웬만한 사람은 하려고 하질 않는다”며 현 체제가 지속될 때 인재들의 공직 기피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김형준 교수는 “자료 제출에 관한 세부적 규정이 없다는 게 문제”라며 “자료 제출의 기준과 범위를 상세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 백악관이 검증 자료를 의회에 제출하는 것처럼 그것 하나만 돼도 청문회 파행은 막을 수 있다”고 제언했다. 19대 국회(2012~2016)에서 발의된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은 총 42건이었다.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0대 국회는 이제 약 1년이 남았다. 청문회마다 반복되는 장면들, 이번엔 좀 바꿀 수 있을까.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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