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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안철수, 이기지 못할 ‘단일화’ 왜 하는 걸까요

등록 2018-06-07 11:18수정 2018-06-07 15:46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11
서울시장 후보 지지도 너무 낮아 단일화 의미 없어
“단일화 최선 다했다” 주장하려는 득표 전술인 듯
지방선거 이후 정계개편 대비 주도권 싸움 성격도
그래픽 정희영 디자이너.
그래픽 정희영 디자이너.
선거는 표를 많이 받는 후보가 당선됩니다. 세력이 약한 후보들은 연대를 통해 한 후보에게 표를 결집해야 세력이 강한 후보를 이길 수 있습니다. 후보 단일화는 본질에서 약자들의 전술입니다.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가장 유명한 후보 단일화 논의는 1987년 김영삼-김대중 후보 단일화였습니다. 후보 단일화는 시대의 화두였습니다. 전두환 정권이 6월항쟁에 항복해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였고 최초의 정권교체 기회가 눈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양 김 씨 단일화’, ‘야권 후보 단일화’가 연일 신문 제목을 장식했습니다. 그러나 김영삼, 김대중 두 사람은 끝내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키지 못했습니다. 재야는 ‘후단’(후보 단일화)과 ‘비지’(비판적 지지)로 분열했습니다.

양 김 씨가 서로 승리를 장담했지만 선거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 득표율은 노태우 36.64%, 김영삼 28.03%, 김대중 27.04%, 김종필 8.06%였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7년 6월항쟁으로 대통령직선제를 받아들인 과정을 회고록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런 대목이 눈에 띕니다.

“나는 이날 밤 박철언 특보를 집으로 불렀다. 그리고 그에게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다. 결심을 했다. 직선제로 하는 수밖에 없겠다. 그에 관한 모든 준비를 해 달라’며 초안을 만들라고 했다. 그때 준 지침은 두 가지였다. 직선제를 한다는 것과 김대중 씨를 사면 복권한다는 것이었다. 나머지는 박 특보가 몇 명의 참모들과 함께 초안을 잡으면서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김대중 고문의 입장에서는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고 사면 복권된 상태였으므로 자신이 잃었던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셈이었다. 따라서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모든 영광을 김영삼 총재에게 돌릴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 역시 김대중 고문이 포기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대통령직선제를 받아들이면서 김대중 고문을 사면 복권해주면 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김영삼-김대중 두 사람이 모두 출마해서 표가 갈릴 테니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될 것으로 예상했다는 뜻입니다. 정권교체를 열망하던 국민의 간절함이 집권세력의 책략과 양 김 씨의 욕망에 가로막힌 한국 현대 정치사 최대의 비극이었습니다.

1987년 후보 단일화 실패의 후유증은 1990년 3당 합당과 지역갈등 격화로 이어지며 우리나라 역사를 매우 심하게 왜곡시켰습니다. 그러나 이후 선거에서 교훈으로 작용했습니다.

1997년 대선에서 야당은 디제이피(김대중-김종필) 연대로 집권에 성공했습니다. 2002년 대선에서 새천년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는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시도로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2012년 대선에서는 안철수 후보의 전격 양보로 문재인 후보가 야권의 유력한 대표로 나섰습니다. 그러나 후보 단일화가 꼭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2012년 대선의 승자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였습니다.

옛날 얘기를 장황하게 한 이유는 6·13 지방선거의 막판 변수로 떠오른 김문수-안철수 후보 단일화를 전망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두 사람의 단일화가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렇게 전망하는 근거는 간단합니다. 후보 단일화는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김문수, 안철수 두 사람이 단일화해도 박원순 후보를 이길 수 없습니다.

<한겨레>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6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원순 55.5%, 김문수 11.6%, 안철수 14.4%입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김문수 안철수 후보 두 사람의 지지도를 합쳐도 박원순 후보와 무려 29.5%포인트 차이가 납니다. 후보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를 고려하더라도 후보 단일화에 의한 역전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김문수 안철수 후보의 측근들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사람들은 후보 단일화를 계속 추진하고 있습니다. 6월8일과 9일 사전투표를 마친 뒤에도 후보 단일화 협상을 계속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들이 후보 단일화를 계속 추진하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득표 전술입니다. 반문재인 성향 유권자와 논객들이 무조건 단일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문수 후보나 안철수 후보 모두 자신이 야당의 유력 후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끝까지 단일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인상을 줘야 반문재인 표를 조금이라도 더 긁어모을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둘째, 지방선거 이후 보수 재편에 대비한 주도권 싸움입니다. 지방선거 이후 정계개편에서 보수 세력의 주도권을 잡으려면 지금부터 보수 통합이나 보수 후보 단일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를 남겨 놓을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결국 최근 김문수 안철수 후보 단일화 논의의 목적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3등으로 밀어내고 2등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진정성 없는 후보 단일화가 성공할 수 있을까요?

1987년 김영삼 김대중 두 사람은 자신이 후보가 돼야 확실히 정권교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나중에는 후보 단일화가 안 돼도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여론조사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후보 단일화의 진정성을 기준으로 보면 김문수 안철수 두 후보가 김영삼 김대중 양 김 씨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가 5일 페이스북에 재미있는 글을 띄웠습니다.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를 서울시민과 야권에서는 절실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박원순 후보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야권이 분열되어 선거를 치르면 지난 탄핵 대선의 재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조직과 정책 면에서 우세에 있는 김문수 후보가 사퇴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높은 25개 구청장, 광역·기초 의원, 국회의원 보선이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안철수 후보의 인물 평가에 대해서는 높이 사지만 현실적으로 선거는 조직의 열세로는 치를 수가 없습니다. 안철수 후보님이 대승적 결단으로 양보해 주시면 지방선거 후 양당이 대동단결하여 문 정권의 폭주를 막고 야권 대통합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안 후보님의 구국적 결단을 앙망합니다.”

홍준표 대표의 요구를 받아들여 안철수 후보가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안철수 후보는 2011년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한 ‘첫 번째 철수’, 2012년 대선 후보를 양보한 ‘두 번째 철수’, 2014년 새정치연합 창당을 중단하고 민주당과 통합한 ‘세 번째 철수’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인생에서 더 이상의 철수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설사 서울시장 선거에서 3등을 차지하는 한이 있어도 후보직을 사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홍준표 대표가 안철수 후보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이유가 뭘까요? 지난해 12월26일 홍준표 대표를 인터뷰할 때 이런 대화를 주고받은 일이 있습니다. 남경필 원희룡 지사가 바른정당 소속이었던 시기입니다.

-지방선거에서 남경필 원희룡 지사와 어떻게 할 생각인지요? 선거연대를 합니까? 그 전에 아예 통합할 가능성도 있나요?

“선거연대라는 것은 과거 진보 좌파진영에서 하던 선거 방식이죠. 우리는 선거연대 방식보다는 당당하게 자유한국당의 이름으로 국민들 심판을 받겠습니다. 남경필 원희룡 특정인에 대해서는 본인들이 선택할 문제지 저희들이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닙니다.”

-정치인으로서 안철수 대표를 어떻게 보십니까?

“순진한 분이죠.”

-왜 그렇게 보십니까?

“(살짝 웃음) 지난 대선 때 토론해 보니까 ‘이 분 참 순진한 분이다’ 그렇게 봤습니다.”

저는 당시 인터뷰에서 홍준표 대표가 자기 생각을 솔직히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홍준표 대표가 지금 안철수 후보에게 ‘구국적 결단’이라는 명분으로 서울시장 후보직 양보를 요구하는 것도 안철수 후보를 순진하게 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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