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 그래픽 장은영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선거 결과를 놓고 지인들과 ‘술내기’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는 당선자, 국회의원 선거는 각 정당 의석수나 1당 맞히기가 내기의 대상입니다.
지방선거는 좀 복잡합니다. 아무래도 서울시장 등 광역단체장을 놓고 내기를 하게 됩니다. 서울에서는 2010년 오세훈-한명숙, 2011년 나경원-박원순, 2014년 정몽준-박원순을 놓고 내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서는 당선자 맞히기 내기가 벌어지지 않습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가 워낙 많이 앞서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김문수와 안철수 후보 중에서 누가 2등을 하는지를 놓고 내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로스쿨 교수는 “아무리 그래도 서울시민이 김문수보다는 안철수를 더 많이 찍을 것”이라며 안철수 후보 쪽에 걸었는데, 최근 안철수 후보가 3등으로 밀리는 여론조사가 나오는 것을 보고 “술값 내게 생겼다”고 불평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한국방송>(KBS)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5월25~26일 조사해서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원순 후보 54.2%, 김문수 후보 15.3%, 안철수 후보 13.1%, 정의당 김종민 후보 1.1% 순이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이른바 보수 논객 중에는 김문수-안철수 무조건 단일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이 힙을 합쳐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김문수-안철수 후보 단일화론은 선거일 직전까지 가라앉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두 후보가 단일화를 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서로를 우습게 보기 때문입니다.
제가 서울시장 후보 인터뷰를 할 때 김문수 후보에게 ‘왜 안철수가 아니라 김문수를 찍어야 하는지 설명해보라’고 주문했습니다. 김문수 후보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안철수 후보는 자유민주주의, 자유기업에 대한 소위 보수라고 하는 데 대해서 본인의 확고한 생각이 없는 미숙한 상태라고 봅니다. 저는 민중민주주의 좌파적 부분에서부터 지금은 자유민주주의자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를 제외하고, 안철수 후보는 저하고 비슷한 게 아니라 오히려 박원순 시장과 상당히 비슷하지요. 산모하고 산파가 안철수 후보와 박원순 시장 두 분 아니냐. 두 분이 비슷하죠. 저는 오히려 전혀 다르기 때문에, 제가 당연히 자유민주주의의 유일 후보자로 지지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안철수 후보에게 김문수 후보의 경쟁력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습니다. 답변은 짧지만 강렬했습니다.
“왜 나오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명분이 없습니다. 서울 시민들께 그 부분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문수·안철수 후보 단일화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제로섬 게임’을 벌이고 있는 6·13 선거구도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지지도가 유례없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상태에서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둘 다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두기는 어렵습니다. 두 정당 가운데 한 곳은 참혹한 패배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선거 결과는 지방선거 이후 야당발 정계 개편의 주도권과 직결될 수 있습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사람들도 이번 선거에서 ‘2등’과 ‘3등’이 각각 정치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 정당의 선거 캠페인이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을 공격하는 데 머물지 않고 야권의 경쟁자인 상대 당을 향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31일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하며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자유한국당에 표를 몰아주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지금 문재인 정권은 자기들만의 지지를 받는 허황된 지지율에 취해 폭주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 폭주의 끝은 국민들의 절망과 좌절, 대한민국의 몰락일 것입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에게 견제할 힘을 주셔야만 이 정권의 망국적 폭주를 막아낼 수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탄핵 사태 이후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으로 환골탈태하기 위해 당의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낡은 인물들을 청산했고, 낡은 제도와 조직을 개혁했고, 낡은 정책들도 모두 혁신했습니다.
기득권은 모두 내려놓았고,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책들로 그 자리를 채워 놓았습니다.
무너져가는 경제를 다시 일으키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자유한국당에게 힘을 모아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다시 한 번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문재인 정권을 견제할 강한 야당은 오로지 자유 한국당 뿐입니다.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일으킬 정당도 오로지 자유한국당 뿐입니다. 자유한국당에 힘을 모아주시고 표를 모아주십시오.”
‘문재인 정권을 견제할 강한 야당은 오로지 자유한국당 뿐’이라는 대목이 회견의 핵심입니다.
바른미래당의 1차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가 5월29일 국회 215호실에서 열렸습니다. 유승민 선거대책위원장은 자유한국당이 제대로 된 보수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선대위 첫 회의를 하게 됐다. D-15일이다. 이 보름의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후보들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대표로서 제일 앞장서서 뛰겠다. 그동안 서울?인천?경기?영남의 5개 시도?대전?충북을 다니며 많은 시민들을 만났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가장 많이 하신 말씀 중 하나가, 지금 자유한국당이 제대로 된 보수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보수정치를 제대로 바꿔달라는 말씀이었다.
개혁보수에 대한 주문이 분명히 있었다. 저는 저에게 그러한 기대를 했던 많은 유권자들께 바른미래당이 자유한국당을 대체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보수, 개혁보수를 한다는 신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남의 대구·경북·부산·울산·경남 여기는 국회의원이 저와 하태경 최고위원 둘밖에 없다. 저는 오늘부터 영남지역 선거에 앞장서서 우리 후보들을 열심히 돕도록 하겠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당선자를 많이 낼까요? 물론 자유한국당입니다. 무려 113석의 의석을 가진 자유한국당, 30석에 불과한 바른미래당을 수평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일입니다. 모든 면에서 자유한국당이 앞서 있습니다.
한국갤럽의 정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3월 이후 정당 지지도는 더불어민주당이 47%~53%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자유한국당은 11%~14%, 바른미래당은 5%~8%로, 자유한국당이 두 배 정도 높습니다.
최근 쏟아지는 광역단체장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봐도 서울에서만 안철수 후보가 의미 있는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을 뿐 다른 지역 바른미래당 후보들의 지지도는 형편없는 수준입니다. 심지어 바른미래당은 강원도, 충청남도, 전라북도에서 아예 후보를 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당선자 숫자를 단순 비교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정치적 함의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두 가지 관찰 지점이 있습니다.
첫째, 대구·경북에서 바른미래당 후보들이 과연 어떤 성적을 올리느냐입니다.
바른미래당은 대구시장 후보로 김형기 경북대 교수, 경북지사 후보로 권오을 전 의원이 나섰습니다. 유명 인사들입니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당선되면 이번 지방선거 최대의 정치적 이변이 될 것입니다.
낙선하더라도 얼마나 의미 있는 득표율을 올릴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기초단체장 몇 곳이라도 당선자를 낼 수 있을지도 중요합니다. 티케이(TK,대구·경북)에서 바른미래당의 약진은 곧바로 티케이에서 자유한국당의 몰락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서울시장 선거 2등 싸움입니다.
어느 쪽이든 3등으로 밀려나면 치명상을 입게 됩니다. 김문수 후보가 3등을 하면 정치를 계속하기 어렵게 됩니다. 홍준표 대표도 대표직에서 버티기 힘들 것입니다. 안철수 후보가 3등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차기 대선 경쟁에서 사실상 탈락할 수 있습니다.
두 곳의 선거 결과는 지방선거 이후 정국의 변화에 직접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첫째, 바른미래당이 대구·경북에서 당선자를 내고 서울시장 선거에서 2등을 차지하면 지방선거 이후 보수 재편의 주도권을 쥘 수 있습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크게 동요할 것입니다.
둘째, 반대로 자유한국당이 대구·경북을 지켜내고 서울시장 선거에서 안철수 후보를 3등으로 밀어낸다면 지방선거 이후 보수 세력은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다시 결집할 것입니다. 바른미래당은 소멸의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정국의 이런 흐름은 자연스럽게 2020년 총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바른미래당이 주도권을 쥐게 되면 2020년 총선에서 바른미래당이 보수의 새로운 중심으로 자유한국당을 흡수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자유한국당이 주도권을 쥐면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양당체제로 회귀하게 될 것입니다. 김문수와 안철수의 서울시장 2등 싸움, 그리고 대구·경북에서 벌어질 ‘티케이 목장의 결투’를 눈여겨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치열한 2등 싸움 덕분에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를 손쉽게 치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부지리(漁父之利), 또는 방휼지쟁(蚌鷸之爭)이라고 합니다. 조개와 새가 싸우는 바람에 어부가 조개와 새를 모두 잡게 된다는 뜻입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