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면접’에 나온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양세형의 숏터뷰’에 출연한 안희정 충남지사. ‘국민면접’ 인터뷰 중인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말하는 대로’에서 출연진과 웃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 ‘썰전’에 등장한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강적들’에서 대화하는 남경필 경기지사. 방송화면 갈무리
지지율에 울고 웃는 정치인과 시청률에 목매는 방송사들이 찰떡궁합이 됐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하면서, 유권자들과 가능한 접촉면을 늘리려는 대선주자들과 이들을 최대한 활용해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려는 언론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졌다. 대선주자들은 정치토크쇼 ‘썰전’(<제이티비시>)은 물론 ‘말하는 대로’(<제이티비시>), ‘양세형의 숏터뷰’(<에스비에스>)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에스비에스>는 예능 형식을 일부 차용한 패널 집단 인터뷰 ‘국민면접’도 실험했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단연 정통 인터뷰 방송보다 높은 시청률을 자랑한다. 시청자들은 빨간 스웨터를 입은 문재인을 보려고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며, 개그맨 양세형을 안고 땀을 뻘뻘 흘리는 안희정을 보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한다. 전원책 변호사와 싸우는 이재명의 모습을 만나길 원하며, 유승민의 ‘예쁜’ 딸을 다시 한번 보길 고대한다. 5년 전과 다른 안철수의 변신을 기대하며 시선을 고정한다.
과연 이런 폴리테인먼트(정치와 엔터테인먼트의 결합) 프로그램들은 ‘정치’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예능은 정치인들의 진면목을 얼마나 보여줄 수 있을까? 정치를 혐오하는 이들에게 긍정적 반응을 끌어낼 수 있을까? 아니면 정치의 부박함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걸까? 대중문화 평론가 황진미씨, 드라마 평론가인 충남대 윤석진 교수, <한겨레>에서 방송·연예 분야를 취재하는 남지은 기자, ‘정치바텐더’ 김태규 기자가 20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예능에서 본 대선주자 인물 비평
‘황희정승’ 문재인
황진미 문재인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황희 정승’ 같더라. 종교가 뭐냐 했더니 “불교를 좋아하는데 나는 천주교고 사돈은 목사” 이렇게 답하더라고. 확실히 ‘부자 몸조심’하는 느낌을 받았다. 근데 황희는 영의정이잖아. 우리는 영의정 뽑는 게 아니라 대통령 뽑는 건데. 문재인이 계속 어느 누구랑도 척을 지지 않으려는 노선을 취하다간 사달 난다. 그러다 보니 한기총 같은 데 가서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같은 이야길 하게 되지 않나.
남지은 문재인은 지난 대선 때 같았으면 ‘노잼’이었을 거다. 그런데 요즘 예능 프로그램들은 나랑 비슷한 사람에게 공감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문재인은 ‘노잼 캐릭터’로 대중에게 먹힌다. ‘쌍시옷’ 발음 안 되는 것도 패널들이 놀리니까 그런대로 재미. 또 답답하다가도 간간이 받아칠 땐 ‘어? 문재인이 저럴 줄도 아네?’ 했다. 역시 재수하면 느나 보다.
윤석진 맞다. 진짜 노멀한 느낌이었는데 노잼에게서도 매력을 발견하게 됐다.
김태규 재수생이다 보니 확실히 공부 많이 한 건 알겠는데 그다지 파괴력은 없었다. 실점도 득점도 없었다.
왼쪽부터 대중문화 평론가 황진미씨, 윤석진 충남대 교수, 남지은·김태규 기자.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문재인, ‘노잼’인데 재밌다
안희정, 매력 폭발 ‘이미지 승부사’
안철수, 콘텐츠는 참 좋던데…
이재명, 논리적인 싸움닭
유승민, 실력있는데 짠하다
남경필, 재능의 재발견
유권자와 즐겁게 만나는
폴리테인먼트 쏟아져
‘이미지 정치’ 우려되지만
정치인 알면 알수록
오판 가능성도 낮춘다
‘교회오빠’ 안희정
황진미 안희정은 이번 방송 콘셉트의 최대 수혜자. 생긴 건 ‘차도남’인데 어투는 충남과 전북의 어눌한 짬뽕 사투리. 여기에 엔엘(NL) 운동권의 품성론 플러스. 한마디로 ‘교회 오빠’ 같은 느낌. 그런데 답답한 건, 운동권 그리 오래 했으면 노래를 잘해야지 그게 뭐냐, 하하. (안희정은 ‘말하는 대로’에서 ‘걱정 말아요 그대’를 곡조 무시하고 읊었다.) 그렇지만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더라. 나는 노선 때문에 싫어하지만, 이른바 ‘중도 보수층’이 본다면 ‘엇? 괜찮네’ 할 것 같았다. 사람 혹하게 하더라니깐.
김태규 이번에 안희정은 호감 이미지 급상승시켰다. 프로그램 성격, 자신의 장점을 정확히 안다. ‘말하는 대로’의 버스킹은 딱 사랑방 좌담회 하는 거다. 안희정이 버스킹 하는 거 보면, 젊은 사람들 모여 있는데 “‘인서울’ 하느라, 스펙 쌓느라 얼마나 힘드냐. 나랑 함께 지방분권·균형 이루지 않겠냐”며 조곤조곤 말하더라. 그에 반하면 이재명은 광화문광장에서 하던 사이다 발언을 그대로 옮겨온 식이었다.
윤석진 내가 만나는 대전·충남 사람들에게 안희정은 말 그대로 ‘우리 희정이’다. 여성운동·시민운동 하는 사람들도 안희정과 노선이 다른 경우가 많은데, 그들도 안희정 만나면 일단 사진 찍고 싶어한다. 그러나 난 개인적으론 방송 보고 호감도가 별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미지 정치에 갇혀 있는 모습이었다.
남지은 처음에는 그동안 우리가 알던 정치인과 다른, 권위를 벗어던진 모습이라 좋았다. 그런데 자꾸 여러 프로그램에서 ‘안깨비’(드라마 ‘도깨비’ 패러디), ‘빅시’(빅토리아 시크릿 모델들이 자주 날리는 손키스) 같은 게 반복되는 게 ‘전략적’으로 느껴지면서 오히려 호감도가 반감됐다.
강의 잘하는 안철수
황진미 안철수의 장점은 스테이블(안정적). 스테이블은 정치인의 덕목이긴 한데, 그 또박또박 말투에선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엔터테인먼트에선 어쨌든 연예인 기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콘텐츠는 탄탄하더라. 그 점을 더 파고들었더라면 지지자들이 박수쳤을 거다.
윤석진 너무 모범생의 모습만 보여줘서 아쉬웠다.
남지은 강의 들으면 딱~이겠다 싶었다. 교수님 스타일? 2009년 안철수가 출연해 확 떴던 ‘무릎팍 도사’는 사실 게스트의 매력이 100% 발산되도록 채워주는 프로그램이다. 그렇지만 이젠 예능의 트렌드가 변했다. 예전처럼 게스트에 집중해주고 그러지 않는다. 요즘 예능과 안철수가 안 맞았다.
김태규 솔직히 ‘국민면접’에선 안철수가 점수를 잃었다고 본다. 본인은 이력서에 ‘아재개그’를 특기로 꼽을 정도로 자부심이 있던데, 가장 폭력적인 동물은 ‘팬다’, 가장 폭력적인 스포츠 선수는 ‘펠레’ 등등. 하지만 이런 건 진짜 도리도리. 아재개그는 시대에 뒤처진 코드로 통용된다. 캐릭터 잘못 설정했다.
이재명의 돌직구는 여전
윤석진 이재명 이미지 많이 바뀌었다. 한마디로, 싸움닭에도 논리가 있다! 이재명은 굉장히 과격한 싸움닭 이미지였는데 굉장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란 걸 알았다. 기존의 정치인들은 두루뭉수리, 애매모호한 화법을 쓰는데 이재명은 그것마저도 적폐로 보이게 할 정도로 자기 생각을 명확히 밝히더라.
황진미 이재명은 진짜 흥행사다. 고스톱 한판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내가 패 꺼내서 내가 먹는 식이다. 지지율 떨어져도, 지지자들은 흩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지은 예능 피디가 보자면 제일 좋아하는 건 이재명일 거다. 뭘 물어보면 확확 얘기하고 빵빵 터진다. ‘숏터뷰’에서 김부선 얘기 나오니까 깔깔 웃더라고.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노동부 장관 시키겠다는 얘기도 그렇고, 모든 질문에 두루뭉술 넘어가지 않고 소신 있게 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는 이재명이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하면 딱 맞겠단 생각도 했다.
김태규 아무래도 정치 기사로 정치인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익숙해져서 그런지 모르겠다. 예능 나온 이재명은 내가 알던 이재명 그대로였다.
스마트한 유승민
윤석진 ‘막다른 골목에 갇힌 보수’라고 할까? 안타까운 느낌이었다.
김태규 사실 난 사드 문제 등 대북·안보 문제만 빼놓고선, 사회·경제적 분야에서 나와 생각이 같은 점이 많았다. 탈핵 주장도 신선했다. 나는 유승민에게 ‘플러스’ 점수 주고 싶다.
남지은 ‘국민면접’에서 유승민이 딸한테 ‘어떻게 면접 잘 볼 수 있냐’고 조언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딸은 면접 한 번도 안 본 애인데 뭘 물어보나? 딸이 인기 좋으니까 제작진이 억지로 불러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황진미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비슷. 지지율도 낮고, 박근혜 참모 과거사 털어내기도 어렵고. 게다가 ‘국민면접’에선 한때 같이 박근혜 모셨던 전여옥이 눈앞에 있었으니 참 답하기 어렵겠다 싶었다. 그래도 ‘썰전’에선 본인의 콘텐츠, 실력 조목조목 잘 얘기했다.
잠재력 보여준 남경필
황진미 한마디만 더. ‘강적들’ 보니깐, 난 이전엔 남경필 손에 꼽지도 않았는데, 잠재력 있더라. 합리적이고 친화력 있고 재치 있고 말도 세련됐고. 발음도 좋아요!
■ 예능은 위험하다?
윤석진 정치가 예능 프로그램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단순히 웃고 떠드는 게 아니라 촌철살인의 비판이 전제돼야 제 기능을 발휘하는 거다. 미디어 환경이 재편되면서 정치가 연성화되는 건 막을 수 없지만, 이미지의 정치로만 일관하는 건 폐해가 크다. 예능 프로그램 문제는 아니지만 이미지 정치 때문에 정치인들은 득 보고, 국민들은 손해 본 사례가 많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방송되면서 ‘그래, 여성도 대통령할 수 있어’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나. 이미지 정치는 위험하다.
황진미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은 진화의 산물로 봐야 한다. ‘국민면접’도 초반부엔 실없지만 ‘압박면접’ 하면 검증 수위가 꽤 높더라.
김태규 이미지 정치라고 꼭 비난할 일은 아니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가 “인혁당 사건에는 두 개의 판결이 있다”는 등 역사관도 없고 상식도 없는 발언을 했는데, <한겨레>가 다 보도했지만 대중들은 그냥 넘겼다. 요즘 정치 방송 프로그램들이 부작용은 있지만, 아무리 짜증나는 내용이라도 사람들에게 ‘떠먹여주는’ 콘텐츠가 필요하다. 지상파에서도 종편 스타일 따라 하는 것은 그런 방식들이 인물을 날것 그대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박근혜가 5년 전에 요즘 같은 예능 프로그램 나왔다면 박살 났을 거다.
남지은 예능은 사실 편집의 힘이다. 편집자가 누구냐가 중요하고, 제작진이 아무리 중립적이라고 해도 편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출연자의 이미지가 확확 달라진다. 예능은 근본적으로 위험한 게임.
김태규 ‘국민면접’에서도 문재인한테 삼성과 참여정부의 유착관계를 묻는 게 있었는데 “참여정부 때만 해도 삼성과…” 하는데 그냥 잘렸다. 민감한 건 그냥 편집했던 거 같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록 박근혜를 뽑긴 했지만 그런 실수를 다시 저지를 정도로 국민들이 우매하지 않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선주자들을 접할수록 오판의 확률은 낮아진다.
황진미 앞으로 난 사회자 없이 대선주자들만 나오는 ‘썰전’이 보고 싶다. 방청객 100명 불러다놓고 후보들끼리 ‘이빨 대 이빨’로 붙어보자는 거다. 그게 ‘아고라 정치’의 본질 아니겠나. 그리고 난 개인적으론 심상정도 예능에서 보고 싶다. ‘국민면접’ 정도면 넣어줘야 했다.
윤석진 나도 정치인의 날것을 보고 싶다. 필리버스터 때 감동을 다시 한번~. 그때 <국회방송> 시청률도 엄청 올라갔잖나.
진행·정리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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