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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대통령’ 꿈꾸는 이재명표 ‘사이다’ 시음기

등록 2017-01-26 17:22수정 2017-01-26 18:18

정치BAR_청춘기자단 대선주자 강연 참관기 ③
2017 대선의 해. ‘발랄한 전복을 꿈꾸는 정치 놀이터’ 정치BAR에서 20대 청년들을 모아 청춘기자단을 꾸렸습니다. 청춘기자단은 젊은 세대의 고민을 담아 쉽고 재밌고 참신한 정치 콘텐츠를 여러분에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그 첫번째 프로젝트는 더불어민주당 지역위원회가 기획한 5주 연속 대선주자 초청강연 참관기입니다.

지난 25일 저녁 서울 노원·도봉·강북 더불어민주당 지역위원회가 개최한 대선주자 5인 강연회에서 이재명 시장.
지난 25일 저녁 서울 노원·도봉·강북 더불어민주당 지역위원회가 개최한 대선주자 5인 강연회에서 이재명 시장.

이재명 성남시장이 시계공장에서 대선출마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꽤 충격을 받았다. 오랫동안 ‘노동’이라는 단어는 현실 정치인에겐 금기였기 때문이다. 한국은 OECD 국가에서 가장 오래 일하고, 산업재해 발생 비율이 제일 높고, 헌법에 보장된 노조의 권리도 지켜지지 않는 나라지만 그럼에도 노동이라는 의제는 너무 가까이 하면 안 되는 그런 주제였다. 그런 나라에서 지지율 3위를 달리는 야당 대선후보가 ‘노동자’를 이야기하는 모습이 낯설게 다가왔다. 그 모습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지난 25일 저녁 서울 노원·도봉·강북 더불어민주당 지역위원회가 개최한 대선주자 5인 강연회에서 이재명 시장을 만났다.

빨갛게 덧칠된 ‘노동’이 두렵지 않은 정치인

“그래도 노동자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날 이재명 시장의 강연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강연이 이어지는 내내 노동 문제를 강조했다. 장시간 초과노동, 대기업의 사내 불법하청 등을 통계와 사례를 인용해가며 그 문제점을 지적했다. 분명 유의미한 지적이었지만 정치에 관심을 갖고 지켜본 사람 입장에서 보면 완전히 새로운 정책은 없었다. 새로운 부분은 노동 문제를 언급하는 그의 태도였다.

지금까지 민주당의 다른 정치인은 노동을 말하면서도 애써 자신의 발언이 ‘노동 문제’로 포장되길 꺼렸다. 노동시간 단축 문제도 애써 ‘저녁이 있는 삶’ 같은 표현으로 온화하게 포장했다. 누구나 ‘레드 콤플렉스’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노동자·노조라는 표현을 쓰는 순간 정치적 입장이 불리해질 수 있다는 계산을 염두에 둔 결과였다.

그래서 “노동자 이야기 하면 표 떨어진다”면서도 “그래도 노동자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이 시장의 소신은 신선했다. 이날 이 시장은 1시간 강연에서 노동·노동자·노동조합이라는 단어를 스무번 넘게 언급했다. 다른 정치인들과, 표현하는 방식에서 그의 차이는 분명했다.

노동을 강조한 그의 강연은 자연스레 경제 문제로 옮아갔다. 재벌 해체, 노조 권리 강화, 법인세 인상, 이재명표 기본소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사교육 문제의 해법’을 묻는 시민의 질문에도 “교육은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 고용 정책 문제가 원인”이라고 답한 부분에서도 그의 철학이 드러났다. 공정한 경쟁을 언급하며 대학 정시 확대와 수시 축소를 예로 들었지만 어디까지나 “미세한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의 주장과 비전이 대부분 경제 문제로 귀결되다 보니 그게 해결되면 다른 사회 문제들도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건지 궁금해졌다. 경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다른 사회 문제들은 해결이 어렵다는 건지, 그것도 묻고 싶었다.

철학은 명확했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는 아직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인상도 받았다. ‘구체적인 정책 제시가 언제 가능하냐’는 질문에그는 “지금 단계에선 모든 정책을 준비할 수 없고 할 필요도 없다.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 정책보다 철학과 의지가 중요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그의 사이다 같은 면모가 확실히 드러났다. 공시생으로 보이는 20대 여성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더불어민주당의 행시 폐지 방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최근 민주당 초재선 의원들의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가 내놓은 행시 폐지안에 충격으 받은 듯했다. 이 시장은 에두르지 않고 “공정한 사회,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는 행시를 존치시켜야 하고 오히려 특채를 없애야 한다”고 답했다. 이 시장은 “사시도 존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계층 이동의 가능성, 고위직 공무원의 특수성 등을 차례차례 근거로 제시했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쟁점이 충돌할 수 있는 문제에서 판단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명확한 답변을 하는 이재명 시장의 ‘사이다’ 스타일이 가장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자주적 균형외교, 노무현이 떠오르네

사드배치 문제에 대한 이재명 시장의 입장은 명확했다. 사드배치로 인해 한국이 한미일 군사동맹의 첨병이 되어 한반도에서의 충돌 위험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선 중국의 공조가 필요하나 미국의 봉쇄정책으로 중국이 소극적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현실적으로 사드 배치는 돌이키기 힘들다는 주장을 의식한 듯 트럼프도 대통령에 당선되고 TPP 탈퇴 선언을 했듯이 한국도 재협상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외교문제의 대안으로는 필리핀의 두테르테를 예로 들었다. 미국의 우방이던 필리핀이 최근 두테르테 집권 이후 중국과 가까워지자 미국이 필리핀에게 매달린다고 설명했다.

전반적으로 외교에 대한 그의 입장은 노무현 정권을 떠올리게 한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해법은 한미동맹에 거리를 두고, 중국의 영향력은 인정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가 사용한 ‘자주적 균형외교’라는 표현은 참여정부 시기의 ‘동북아 균형자론’과 비슷한 느낌이다. 다만 트럼프나 두테르테를 비교 대상으로 삼은 부분은 다소 찝찝했다.

처음 만난 이재명 시장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달변이자 다변가였다. 처음 연단에 오를 때 중간중간 대본을 읽어가며 이야기 할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강연을 시작하자마자 마이크를 빼서 무대 앞으로 나와 청중과의 거리를 좁혔고 그 자리에서 강연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중간중간 청중이 박수치는 시간을 제외하면 강연 내내 쉴 틈 없이 이야기 했다. 분당 700타를 넘는 타자 실력에도 그의 말을 모두 옮겨적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론의 관심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지상파 방송, 종편 가릴 것 없이 방송용 카메라 10여대가 객석 제일 뒤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객석 앞쪽은 스마트폰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차지했다. 서너명이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강연을 생중계했다. 디지털 공간에서 이 시장을 지지하는 ‘손가락혁명군’의 열의가 대단한 것 같았다.

글·사진 이상원 전 ‘고함20’ 편집장 sangwon072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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