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대선의 해. ‘발랄한 전복을 꿈꾸는 정치 놀이터’ 정치BAR에서 20대 청년들을 모아 청춘기자단을 꾸렸습니다. 청춘기자단은 젊은 세대의 고민을 담아 쉽고 재밌고 참신한 정치 콘텐츠를 여러분에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그 첫번째 프로젝트는 더불어민주당 지역위원회가 기획한 5주 연속 대선주자 초청강연 참관기입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잘생겼다. 적어도 내가 활동하는 인터넷 세상의 최근 여론에 따르면 그렇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던 사실도 대략 그 정도뿐이었다. 더 볼 것이 없었다. 만 51세의 나이, 현역 도지사, 거기에 외모까지 훈훈하다니. 유권자들이 표를 주기에 좋은 정치인이라는 점에는 틀림이 없는 것이다.
안희정 지사가 건치를 뽐내며 박수를 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대선에 출마”한다고 나서면 그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거기서부터는 그가 얼마나 대중들의 눈과 귀를 만족시켜 주느냐는 것보다는 더 봐야 할 게 있기 때문이다. 마침 기회가 있었다. 지난 18일 오후 7시부터 노원구청 2층 대강당에서 열린 ‘미래와의 대화!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초청 강연회’ 2회차가 바로 그의 순서였던 것이다.
그는 예정 시각 정확히 1분 전에 별다른 의전 없이 중앙현관으로 들어와 맨 앞 줄의 평범한 좌석에 앉았다. 기본적으로 ‘더불어민주당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회’인 만큼, 현장은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개괄적인, 그러면서도 화목한 분위기였다. 안 지사 특유의 활짝 열린 미소가 간간이 보이는 가운데 예정 시간보다 20여 분 더 길어진 강연회는, 내내 그의 ‘잘생김’이 돋보이는 자리였다.
이번 강연에서 안 지사는 차기 정권이 민주 정당에 의해 창출될 것이며, 그 정권은 ‘시대 교체’를 통해 세워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로부터 이명박-박근혜 정부까지의 흐름은 시대가 정치에 남긴 ‘숙제’를 푸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다음 차례는 민주정부가 될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이런 시기에 “새로운 젊은 도전과 패기가 대한민국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 정치 지도력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선언하고, 이것을 ‘아버님 세대’에 부탁하는 형식으로 그 포부를 밝혔다.
그가 바라보는 새로운 시대의 대한민국은 “박정희 시대의 종언(終焉)”으로 요약된다. “’박정희 리더십’으로 표현되어졌던 대한민국 과거 운영 시스템으로부터 확실하게 바뀌자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그 구체적 내용으로 ‘여-야를 뛰어넘는 국가 차원의 안보·외교 로드맵 작성 및 합의’와 “한양 중심의 600년 역사를 끝내는” 지방자치와 분권 시대로의 이행, 두 가지가 공개됐다. 나머지는 “오는 22일 대학로에서 소극장을 하나 빌려서” 진행할 출마 선언 때 참석자들과 함께 논의하겠다고 밝히면서 강연은 끝났다.
‘나의 생각을 저렇게 멋있게 읊어주는’ 후보
잘생김이라 함은 단지 외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선 그는 스피치 기술에서 호감을 샀다. 대본 없이 연단에 서서 진행한 약 33분의 연설, 그 직후 쉬는 시간 없이 약 55분 동안 긴밀하게 진행된 질답 시간 내내 그는 노련한 모습을 보여줬다. 억양에는 충청도 말씨가 약간 섞여 있었지만 어눌함이 없었고, 어려운 용어와 복잡한 구조의 문장도 문제없이 맺고 끊었다. 필요할 때는 표정으로만 말하는 기술도 간간이 구사했다.
안희정 지사가 유머감각을 뽐내며 정권교대론을 논하고 있다.
게다가 그런 기술을 동원해 전달하는 내용들도 하나같이 자유·민주 정치 노선 지지자들의 눈에 기특해 보일 만한 것들이었다. “경제성장으로 보나 뭘로 보나, 민주화 정부의 대한민국이 절대, 보수 집권 기간과 비교했을 때, 뒤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박정희 시대의 종언”을 꿈꾼다는 의견들이 또박또박 끝을 맺을 때면 그때마다 좌중은 박수갈채로 화답했다.
그는 그에게 찬성하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가장 ‘잘생긴’ 정치인임에 틀림없다. 만약 당신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경제 체제 개편을 ‘신자유주의적 개악’이라기보다는 ‘불가피한 전략적 변화’라고 생각하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국내 배치를 무조건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보며 0~5세 보육의 민주화가 급선무라고 믿는다면, 이날 안희정 지사의 강연은 당신의 바로 그 생각들을 ‘훈남’ 정치인이 대신 연설해 준 시간이 됐을 것이다.
'멋지기만 한 것’은 아닌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잘생김이 우려스럽고 위태해 보일 때도 있었는데, 그가 그 좋은 인상과 신사적인 어조를 이용해서 이도저도 아닌 의견이나 기계적인 신중론을 펼칠 때가 그랬다. 어쩌면 그는 이 자리에서만큼은 멋지고 훈훈한 모습만 가져가기로 작정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모두에게 보기 좋게 다가가는 게 불가능한 사안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런 것에 대해서는 다소 못나 보일 각오를 하고라도 분명한 입장을 취하는 게 보통이니까.
안희정 지사가 뒤태를 뽐내며 질의응답에 응하고 있다.
이를테면 질의응답 시간의 첫 질문, “법인세 인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관한 대답이 그랬다. 아까까지만 해도 시원하게 말 잘하던 그는 이 간단한 질문 앞에 쩔쩔매며 답변 시간 내내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우리가 그 세금을 더 걷어서 어디에 쓰려는 건지 생각해봐야 합니다”라는 요점만을 되풀이할 뿐, 정작 그래서 어떻게 생각한다는 건지는 들을 수 없었다. 이 대목에서는 박수가 나오지 않았다.
외교 문제에 관해서도 비슷했다. 그는 강연을 할 때 사용했던 동작과 눈빛과 억양을 똑같이 사용해서 ‘사드의 본질은 미군의 자기방어 수단’이라는 온건한 표현과 “분명한 것은 사드는 박근혜 정부의 무능의 극치입니다”라는 단호한 일갈을 함께 구사했다. 두 장면은 따로 떼어놓고 보면 똑똑하고 멋져 보이지만, 합쳐 놓으면 꽤 당혹스럽지 않은가? 그는 분명 ‘듣기 좋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 말의 내용까지 일관되게 좋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잘생긴 것 이상을 볼 수 있기를
강연회를 다녀와서 두 가지 확실하게 안 것이 있다. 하나, 안희정 지사는 실물을 보아도 확실히 한국 정치인들 중에서는 그 용모가 출중하다. 영어를 끌어와 쓰는 “핸섬(handsome)하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사람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 단지 잘생기고 멋지다고 해서 대선 후보로서의 설득력이 자동으로 완벽하게 갖춰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안희정 지사가 눈빛을 뽐내며 이쪽을 보고 있다.
모든 대선 주자는 자신의 관점을 유권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순간을 돌파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의문점을 정확히 알아차리고 구체적으로 설득시켜 끌어들이는 것, 그게 ‘대선 후보’의 중요한 자질일 것이다. 이번 강연회에서의 안 지사는 그 자질을 잘 보여주지 못했다는 느낌이 있다. 과연 앞으로는 변화가 생길지 궁금하다. 이렇게 훤칠한 사람이 묻는 말에 척척 답하며 정곡을 찔러 주면, 확실히 ‘팬’은 많이 생길 텐데.
글·사진 김어진 (20대 전문 인터넷 잡지 20timeline.com 에디터) eojin@20timel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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