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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형님과 드센 누님들의 ‘막장’ 드라마, 새누리 의원총회

등록 2016-10-05 05:01수정 2017-01-19 17:34

정치BAR_정치팀 초짜 기자의 새누리당 의총 참관기

“오늘부터 주어진 과업이 끝날 때까지 금주를 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사퇴하는) 마지막 그날은 ‘정의 수호의 날’로 정해 의미를 부여했으면 한다.”

홍철호 의원(재선·경기 김포을)이 단상에서 입을 열었다. 새누리당이 국정감사를 거부하며 정세균 의장 사퇴 요구를 시작하던 9월28일 열린 의원총회에서다.

때아닌 ‘금주령’ 이야기에 고개를 들어보니 홍 의원이 입고 있는 노란색 점퍼가 눈에 들어왔다. 고위 공무원, 정치인들이 민생 탐방에 나서거나 재난 현장을 찾을 때 늘 입는 그 점퍼다. 당 지도부가 국정감사를 보이콧하는 대신 10대 민생과제를 선정해 장외투쟁을 이어가겠다고 한 것에 대한 화답이었다. 앞서 그는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일하는 국회가 시작됐다”고 역설적으로 선언하기도 했다.

이날 의원총회에서는 큰 목소리로 구호 외치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투쟁 당위성을 알리는 홍보전사 되기 등 다양한 전략과 전술이 쏟아졌다. ‘정세균 사퇴’ 리본 달기 운동도 제안됐다. “과거에 유신 반대할 때 이렇게 투쟁해서 효과가 있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국회 파행 10일간 의총 10번…3번이나 소집된 날도

지난 추석을 앞두고 정치부로 발령받아 새누리당을 출입하게 됐을 때만 해도 의총이란 자리가 이렇게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강경한 발언이 난무하는 역동적인(?) 곳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첫인상은 강렬했다. 지난달 23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상정을 앞두고 벌어진 사상 초유의 ‘국무위원 식사권 요구’ 결의 장면이다.

해임건의안 상정·표결을 막기 위해 오전부터 의원총회를 열어 대정부질문 시작 시간을 늦추고, 대정부질문에서 국무위원들이 답변을 일부러 길게 하도록 해 유례없는 ‘국무위원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 장면을 연출한 새누리당은 이날 저녁 7시 다시 의원총회를 열었다.

입장하는 의원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대정부질문에서) 의사진행 발언을 7번이나 신청했는데 (국회의장이) 다 거절했다”, “사회권도 안 넘긴다”는 성토가 쏟아졌다. 시간 끌기 작전이 생각대로 먹히지 않으면서 나온 다급함이 목소리에 배어났다.

이완영 의원이 기름을 부었다. 그는 “(국무위원들에게) 저녁 시간도 안 주고 강행하는 이유에 대해서 우리는 묵과해서는 안 된다”고 엄숙하게 말했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나섰다. “내가 가서 어필해보겠다”고 말했다. 단호하게 자리를 박찼다. 비장함이 표정에 흘렀다.

뭔 일 터지겠다 싶은 분위기는 본회의장에서 행동으로 나타났다. 정진석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의원 10여명이 의장석을 향해 몰려들었다. “국무위원들이 저녁도 못 먹었다. 국무위원들은 저녁 먹을 권리도 없느냐”며 “의회 독재”라고 몰아붙였다. 헌정 사상 최초의 ‘필리밥스터’ 현장이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의원들이 27일 오전 국회 의장실 앞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정세균 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의원들이 27일 오전 국회 의장실 앞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정세균 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 의총은 그 뒤 거의 매일 열렸다. 지난달 23일부터 이정현 대표가 단식을 중단한 2일까지 10일 동안 의원총회는 모두 10차례 열렸다. 열린 날만 7일이었고 하루에 의총을 3번이나 한 날도 있었다. 장소도 국회 246호실과 예산결산위원회 회의장에서 시작해 중앙홀, 국회의장실 앞 복도로 외연을 넓혔다.

의총은 본래 원내 전략이나 주요 정책에 대한 논의를 위해 의원들의 의견을 두루 듣기 위한 자리다. 이번처럼 의총이 집중적으로 열린 적도 없었다. 지난 열흘간 열린 의총은 20대 국회 개원 이후 지난 석달 동안 열렸던 횟수와 맞먹는다. 새누리당은 20대 국회 개원 이후인 지난 5월 첫 의원총회를 열었고 6월에는 2번, 7월과 8월에 각각 3번씩 회의를 소집했다.

“정세균 척결” “야당의 짐승성” 의총 거듭될수록 말은 더욱 격해지고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이후 당 지도부가 정세균 의장 사퇴를 요구하며 강경한 태도를 취하면서 의총은 처음부터 격앙된 분위기였다. 태도가 뻣뻣해지자 입에 담는 언어도 거칠어졌다. 휴일인 지난달 25일 열린 새누리당의 확대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장우 최고위원은 정세균 의장을 “정세균 의원”이라 부르며 ‘의회 독재자’, ‘더불어민주당의 행동대장’이라고 표현했다. 이정현 대표 역시 해임건의안 통과를 ‘더러운 거래’로 규정한 뒤 국민의당에 대해서도 “더불어민주당의 2중대 역할을 했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지도부의 행보는 의총에도 영향을 줬다. ‘센 형님들과 드센 누님들’이 의원총회를 장악했다. 의총은 보통 비공개로 이뤄지는데, 그 내용은 공개발언 또는 원내대변인의 사후 브리핑을 듣거나 회의장을 드나드는 의원들을 따로 취재해서 알게 된다. 당연히 발언 일부만 알려진다. 그런데 그 발언들은 대부분 강성 의원들이 주도한다. 밖에서 보면 선명성이 더 짙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해임건의안 통과 이튿날 열린 의원총회에서는 아슬아슬할 정도로 발언 수위가 강해졌다. 대한약사회 부회장 시절 세월호 유족을 비방하는 원색적인 글을 에스엔에스에서 퍼 날랐던 김순례 의원(초선)은 “헌정 역사를 지켜온 족적에 궤변스런 행동과 말로 흠집을 내는 정세균 그들을 척결하고, 빈정거리는 야당, 우상호와 그 독재자를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 야당의 야만성, 짐승성, 독재성을 알려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어만 바꾸면 북한의 대남방송으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다.

정세균 의장을 향해 ‘야당과 작당’, ‘생사람 잡은 인격살인’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이 나오는 가운데 정점은 이정현 대표가 찍었다. “목숨 바칠 각오를 했다”고 한 그는 돌연 단식을 선언했다. 당 지도부와 친박근혜계 및 일부 초·재선 의원들이 드센 발언을 주고받으며 전선 맨 앞줄에서 강경 노선을 다져가는 와중에 당 대표가 최후의 카드까지 꺼내든 것이다.

공개 발언과 공식 브리핑만 접한 상태에서는 새누리당의 ‘단일대오’는 강철처럼 단단해 보였고, 이 투쟁은 기나긴 여정을 앞둔 것처럼 느껴졌다.

‘침묵의 나선’ 속 비주류는 부글부글

하지만 보이는 게 다는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균열은 있었다. 자신의 입장이 다수 의견과 같으면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나쁜 평가를 받거나 고립되는 것이 두려워 입을 열지 않는 ‘침묵의 나선 이론’ 효과는 의원총회에도 적용됐다.

휴일인 지난달 25일 밤 10시 의원총회에 참석한 새누리당 의원은 전체 122명 가운데 약 90명에 이르렀다.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의원 한 사람당 5분씩만 발언해도 7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러니 일부 강경파가 적극적으로 발언에 나서고 선명한 명분을 내건 이들이 지지하고 나서면 이 의견이 과도하게 대표될 수 있는 구조다. 게다가 공개 발언과 공식 브리핑도 이런 상황을 대변한다. 과정은 온데간데없고 ‘만장일치’와 ‘박수로’ 사안이 결정됐다는 결과만 의원총회 밖으로 나온다.

이런 사정 탓에 쉽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다른 의견은 곳곳에서 고개를 들고 있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게 국회 국방위원장인 김영우 의원이 국정감사 참여 뜻을 밝힌 뒤 위원장실에 사실상 감금된 ‘막장 드라마’다.

새누리당 김영우 국회 국방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감 보이콧 방침을 깨고 국정감사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이날 오후 김 위원장이 머무르던 국방위원장실을 찾은 새누리당 의원들이 위원장실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새누리당 김영우 국회 국방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감 보이콧 방침을 깨고 국정감사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이날 오후 김 위원장이 머무르던 국방위원장실을 찾은 새누리당 의원들이 위원장실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지도부가 징계를 거론하고 일부 의원들이 “롯데가의 형제간 난투처럼 벌어질까 걱정된다. 일사불란하게 지시를 따라야 한다”고 강조하며 갈등을 봉합해보려 했지만 물밑에서는 틈이 더 벌어졌다. 지도부의 국정감사 거부 방침에 비박근혜계인 김무성·강석호 의원 등이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다른 의견을 냈다.

단식 중이던 이정현 대표가 국감 복귀를 주문한 28일 비공개로 진행된 긴급 의원총회에서는 정진석 원내대표가 국감 참여 의사를 거수로 밝혀 달라고 요청한 뒤 정작 손을 든 나경원·하태경 의원 등에게 “그럼 내일 (국감에) 들어가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거수 표결을 두고 친박계 의원들과 비주류·중진 의원들 사이에서 고성이 오갔다고 한다.

의원총회에서 잠시 빠져나온 이들과 따로 만나서, 또는 회의가 끝난 뒤 전화 통화로 전해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당의 공식 발표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한 초선 의원은 “지금 상황이 교과서적이지는 않다”고 에둘러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의원총회를 장악한 강경 세력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급기야는 나경원·정병국·유승민·이혜훈 의원 등 비박계·비주류 의원 23명이 긴급회동을 열어 국감 복귀를 논의한 뒤 “의원총회에도 의사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강성 지도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일도 벌어졌다. 결국 지도부는 2일 ‘조건 없는 국감 복귀’를 선언했다. ‘단일대오’에는 생각보다 일찍 금이 가 있었던 셈이다.

야당의 과거, 여당의 오늘

목소리 큰 일부 강경파의 주장이 전체 의견처럼 포장되는 일은 기시감이 짙다. 가깝게는 19대 국회가 있다. 그땐 아예 강경한 의원들의 목소리에 밀려 여야 원내대표들의 합의가 뒤집히는 일이 여러번 있었다.

2014년 4월, 새누리당은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할수록 기초연금을 덜 받는 ‘국민연금·기초연금 연계’ 방안을 마련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즉각 반발했다. 이후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저소득층을 배려하는’ 내용을 추가한 절충안에 합의했지만 당내 ‘원칙론자’들의 반대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3차례에 걸친 의총에서 당 지도부와 국민연금-기초연금 연계안에 반대하는 의원들의 격전이 벌어졌다. 이 법안은 결국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이 과정에서 지도부는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당시 당 대표를 맡았던 안철수 의원은 이후 여러 인터뷰에서 “의원총회에서 ‘제가 책임지겠다. 정치적 결단이니 받아달라’고 했는데도 의원들의 반대가 계속돼 힘들었다”며 당 대표로 있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으로 이때를 꼽기도 했다.

2014년 세월호특별법 제정 과정도 난항을 겪었다. 그해 8월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합의안을 마련해 의총에 들고 왔지만 “유족과 국민의 여망을 담아내지 못했다”고 평가한 초·재선 의원들의 반대에 부닥쳤다.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의 사퇴 이후 비상대책위원장까지 겸임했던 박영선 원내대표는 세월호 협상 과정에서 다른 의원들과의 갈등을 풀지 못하고 당 내부에서 큰 상처를 입은 채 비대위원장에서 중도하차했으며 탈당까지 고민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의총에선 감정이 넘쳐 격한 말이 바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지난 8월 국민의당 의원총회에서는 박지원 원내대표 중심의 당 운영 방식을 둘러싸고 소동이 일었다. 손학규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등의 영입에 공을 들이는 박 원내대표에게 황주홍 의원이 “선배님의 낡은 정치 때문에 당이 이렇게 됐다. 원맨쇼 그만하라”고 공박하자 박 원내대표가 “정부·여당과 청와대에는 한마디도 못하면서 내부에 분란만 일으키고 총질한다”고 비판한 뒤 급기야 “야 인마, 그만해”라고 맞받아친 것이다. 의총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활발하게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의사결정 구조의 난맥상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당직 경험이 있는 더민주의 한 의원은 “의총에서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몇몇이 주도하면 다수는 침묵하는 상황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의회 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던 새누리당의 투쟁은 ‘당내 강경파들의 과대 대표→비주류의 반발→막말이 오가는 격전→지도부 상처와 내부 분열’ 등 의총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주며 일주일 만에 끝났다. 하지만 수습은 남아 있다. 친박계를 필두로 한 강성 지도부와 이를 따르는 초·재선들의 목소리가 커질 대로 커진 상황에서 당내 민주주의 확립을 통해 비주류를 포용하고 내부 분열과 불신을 메워야 하는 숙제가 새누리당 앞에 놓여 있다.

박승헌 기자 abc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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