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BAR_야당 초선이 권하는 ‘완소도서’ 10권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키케로는 “책 없는 방은 영혼 없는 육체와 같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혼’을 강조하는 정치인이다. 2015년 11월 박 대통령은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혼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의 서재는 어떨까?
2012년 1월 전여옥 전 의원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박근혜 의원의 서재는 날 감동시키지 못했다. 서재라고 부르기도 좀 그랬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건 전여옥 개인의 평가일 뿐, 박 대통령은 자신의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엄청난 독서량을 강조했다. 1979년 청와대에서 나와 1997년 정치를 시작하기 전까지 18년 동안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부모를 모두 흉탄에 잃은 정신적 충격을 독서로 다스렸다는 것이다. “법구경과 금강경 등 불교 경전과 성경을 두루 찾아 읽었다. 동양철학과 관련한 책들과 정관정요, 명심보감 등은 머리맡에 두고 수시로 보았다. 선인들의 뜻깊은 말 중 마음에 남는 것이 있으면 공책에 메모해두고 생각이 어지러운 날 다시 펼쳐보곤 했다.” 2010년에는 트위터에서 <열국지>와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를 추천하며 팔로어들과 교류한 흔적도 있다. 박 대통령은 독서를 즐기는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준비했다. 박 대통령이 격무에서 벗어나 여름휴가 기간에 읽을 수 있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추천인은 정치권에 진입한 지 얼마 안 된 야3당의 초선 의원 10명이다.(여당 초선들은 재미없을 것 같아 뺐다.) 책깨나 읽는다는, 또는 읽을 것 같은 의원들을 모았다. 마침 박 대통령이 7월25일부터 5일 동안 ‘관저’에서 휴가를 보낸다고 하니 ‘독서 분위기’도 딱이다. 초선 의원이 추천한 책은 묵직한 고전에서 가벼운 수필까지 다양했지만 1년 남짓 임기를 남긴 박 대통령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았다.
20년 동안 언론개혁 운동에 투신했던 추혜선 정의당 의원이 추천한 책은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소나무)이다. 조선시대 역대급 사단칠정 논쟁을 벌였던 이황과 기대승. 팽팽한 논쟁 속에서 꽃핀 두 사람의 연서에 가까운 편지글을 모은 책이다. 당대 최고의 석학 퇴계는 자기보다 26살 어린 소장학자 고봉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추 의원은 “이들의 편지에서는 소통하고 싶다는 열망이 느껴진다”며 “지난 임기 동안 국민들에게 소통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묻게 했던 박근혜 대통령께 이 책을 헌사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시대를 뛰어넘은 퇴계와 고봉의 소통이 대통령의 하안거를 값진 시간으로 만들 것이라 확신하면서.”
국가정보원 인사처장 출신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 대통령이 동양의 지혜인 고전을 읽으셨으면 좋겠다. 그 지혜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닌, 같이하고 소통하는 얘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동양의 고전 중 한 권을 꼽아달라”고 하자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있는데 너무 두꺼워서…”라며 약간 주저하다 추천한 책이 <관자>(소나무)이다. 무려 900쪽에 이른다. 관자는 ‘관포지교’(관중과 포숙아의 돈독한 우정)의 주인공인 관중의 다른 이름이다. 경제를 중시하고 외교에도 능숙했던 관중은 춘추전국시대를 대표하는 경세가로, 공자와 제갈공명 같은 이들도 흠모했던 인물이다. <관자>는 도덕과 철학을 바탕으로 경제·정치·법학·외교·행정·군사·교육 등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김 의원은 “다스림에 있어서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게 겸양”이라며 “왕이 아니라 재상의 입장에서 나라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가 잘 나와 있는 책이다. 박 대통령이 머리말이라도 읽으시고 퇴임할 때까지 틈틈이 읽으시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금태섭 더민주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책 한 권 추천 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인간은 필요 없다>(한스미디어)요”라고 답했다. ‘인공지능 시대의 부와 노동의 미래’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에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 것인가를 점치는 게 아니라, 다가올 미래를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가 담겼다. 금 의원은 “4차 산업혁명 뒤 답을 찾으려면 인공지능을 뛰어넘는 집단지성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어떤 곳인지 ‘소통’이 필요하다”며 “인공지능이라고 해서 알파고와 바둑 두는 생각만 하시면 안 된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간절한 마음’만으로는 헤쳐나갈 수 없는 곳이라는 걸 대통령이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대비하자는 제언은 계속 이어졌다. 수학교수 출신인 박경미 더민주 의원은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다산에듀)를 추천했다. ‘교수님 말씀’을 받아적기에 급급한 서울대 학생들의 모습을 심층 인터뷰 형태로 고발한 책이다. 박 의원은 “초·중등·대학교육의 개선을 도모하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하고 ‘창조경제’와 같이 구호만 난무하는 조급한 전시행정에 대한 일침을 가하는 책”이라며 “알파고 시대를 대비하는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이 화두로 떠오른 시점에 우리의 대학 교육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본다는 면에서 강추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 책에 인용된 ‘매일매일을 얼마나 수확했는가로 판단하지 말라, 얼마나 씨를 뿌렸는지로 판단하라’는 말을 대통령이 깊게 새기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무겁지 않고 술술 읽히기에 휴가와 함께하기에 무리가 없다”는 배려의 말도 잊지 않았다.
한학자인 김종회 국민의당 의원은 자신의 저서 <수(水)의 시대, 대한민국이 미래다>(김&정)를 권했다. 이 책은 성리학, 풍수학, 한의학 등 우리의 전통 문화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시시대 토(土)의 시대에서 농경의 목(木)의 시대, 쇠를 이용해 무기를 발달시킨 금(金)의 시대, 전기를 이용해 산업혁명을 이룩한 화(火)의 시대를 거쳐 현재는 수(水)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지은이 나름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는 “미래학자로서 수십년간 발로 뛰어 얻어낸 지식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이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쓴 책”이라며 “여성 중심의 시대로 나아가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정독하시고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대한민국이 세계 일류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국정운영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추천한다”고 밝혔다. 본인의 저서가 아닌 다른 책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김 의원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걱정하는 충정으로 쓴 책이기 때문에 꼭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고 답했다.
대통령의 감성을 깨우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재벌개혁 운동을 해온 회계사 출신의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한국 청년들의 감성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며 요즘 ‘핫한’ 소설가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민음사)를 권했다.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이 지루한 일상을 버티지 못하고 행복을 찾아 오스트레일리아(호주)로 이민 간 얘기를 대화 형식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채 의원은 “한국 사회의 경쟁이 부당하고 불공정해서 버티기가 힘들 것 같다는 좌절감에 이민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이 책은 그런 내용을 잘 설명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채 의원은 “기성세대인 50대 이상은 ‘더 노력해야 한다,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 세대간에 인식의 격차가 크다”며 “대통령은 한국 경제의 불공정과 양극화를 서류나 수치로 보고 있을 수는 있으나 감성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중동 가서 일자리 찾으라는 대통령의 말이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는 건 감성적인 접근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며 “이 책이 잠자고 있는 대통령의 감성을 깨웠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인 이재정 더민주 의원은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모멘토)라는 책을 꼽았다. 저자인 찰스 부코스키는 미국의 유명한 시인이자 수필가다. 1991년 73살에 백혈병으로 사망한 부카우스키가 생의 마지막 3년 동안 쓴 이 책은 그의 ‘말년일기’다. 이재정 의원은 “비뚤비뚤한 시선으로 경쾌하게 쏟아내는 일상이 부카우스키의 거친 단어와 표현으로 이뤄져 있는데 그의 욕설이 외려 따스하다. 삶과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통찰이 감동적”이라며 “대통령의 흐트러지지 않는 복장 안의 절제된 시각에 자유로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이 의원은 또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이라는, 노래 ‘청계천 8가’의 한 구절도 대통령에게 들려주고 싶다고도 했다. 이 노래에 담긴 “파란불도 없는 삶, 칠흑 같은 밤, 무거운 혹은 빈 리어카, 비참한 오늘을 위대하게 하는 서러운 민초들의 끈질긴 삶”을 되새겨보시라는 것이다.
‘진박 최경환’ 아닌 ‘디제이(DJ) 비서관’ 최경환 국민의당 의원도 추천 대열에 동참했다. 그가 권한 책은 <강대국의 흥망>(한경BP). 미국 예일대 교수인 폴 케네디가 명나라부터 시작해 미국·중국에 이르기까지 강대국의 흥망성쇠 패턴을 책에 담았다. 폴 케네디는 “(한국은) 네 마리 코끼리(미·일·중·러)에 둘러싸인 작은 개미이고 밟히지 않으려면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는 인터뷰로 강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최 의원은 “한-미 동맹도 중요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너무 한쪽으로 경도돼 있다. 네 마리 코끼리 사이에서 지혜를 발휘하려면 북한을 통해 한반도의 주체적 역량을 키워야 하는데 지금은 그걸 포기한 상황”이라며 “10위권 경제대국인 큰 나라를 경영하는 지도자로서 넓은 안목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비전을 찾길 바라는 마음에 이 책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 김경수 더민주 의원이 박 대통령에게 추천한 책은 <헌법의 풍경>(교양인)이다. 김두식 경북대 교수가 쓴 이 책은 우리나라의 왜곡된 법조 문화와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시민의 기본권 문제를 다루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지은이는 “국가를 사랑하는 것을 강조한 나라보다는 국가를 통제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 나라가 그나마 덜 나쁜 나라가 될 수 있었다”며 법학의 출발점이 ‘국가를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김 의원은 “저자는 잃어버린 헌법을 되찾고, 길거리에서 이리저리 발길에 차이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며 “지금의 대한민국, 특히 청와대에서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어, 꼭 한 번 읽어보시라고 추천해드린다”고 말했다.
<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쌤앤파커스). 제목 자체에서 박 대통령에게 변화를 강하게 촉구하고 있는 듯하다. 20년간 당직자로 활동하다 국회의원이 된 송옥주 더민주 의원이 추천한 책이다. 만연한 권위주의, 형식에 집착하는 보여주기, 전관예우, 패자부활전 없는 서열 매기기 등 우리 사회 고질적 병폐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현직 기자, 박에스더의 에세이집이다. 송 의원은 “급변하는 세상의 환경과 의식을 따라가려면 스스로 변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행복을 책임지는 리더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일러스트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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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고봉 논쟁에서 소통을 읽고이들이 책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로는 ‘소통’이 두드러졌다.
경쾌한 문장에서 자유를 느끼길
인공지능 넘는 집단지성의 시대
창조 빠진 ‘창조경제’도 성찰을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46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성경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젊은이들이 왜 한국을 떠나는지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폐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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