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BAR_붕당정치로 본 ‘친박의 분화’
강성 친박 무협활극의 끝은? 새누리당 주류인 강성 친박은 ‘노론’, 온건 친박은 ‘소론’이다. 노론은 환국으로 판을 뒤엎는 게 주특기다. 사문난적으로 몰린 소론은 다시 반전을 꾀하는데…. 친박노론의 21세기형 활극은 ‘영남 자민련’으로 이어질 것인가, 역사 속 그때처럼 세도정치와 망국으로 끝을 맺을까.
친박, 당권 노리고 또 판 뒤엎기? “성범죄나 뇌물수수, 당내 파벌을 조장하는 당 발전 저해자에 대한 범죄 기준을 당헌·당규에 명문화하겠다.”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4일 결국 계파주의적 행동과 발언을 파렴치 범죄와 동급으로 간주하겠다는 극단적 대책까지 내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치 대명률에 따라 ‘붕당을 이뤄 정치를 문란하게 하면 목을 베겠다’던 조선시대를 보는 듯하다. 앞서 이학재 비대위원은 “지난 19대 국회에서는 당 주도권을 잡기 위한 계파 간 싸움과 설전의 연속이었다. 당과 정권의 에너지가 모두 계파 문제로 소진됐다. 특히 당직자가 특정 계파 모임에 참석하거나 특정 계파 이익을 앞세우는 발언을 할 경우 즉시 당직에서 사퇴시키는 강력한 조처가 필요하다”고 했다. 당내에서는 지난해 유승민 원내대표 파동 이후 계파적 시각을 강하게 드러낸 조원진 당시 원내수석부대표와 이장우 원내대변인, 그리고 지난달 제1사무부총장 신분으로 혁신비대위의 유 의원 복당 결정에 “쿠데타”라며 강력 반발했던 김태흠 의원 등을 지목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모두 강성 친박의 대표적 인물들이다. “사안마다 여론과 반대로 가는 친박의 행보를 이해하기 어렵다.” 한 정치권 인사는 4·13 총선 이후 당의 주요한 결정마다 일관되게 어깃장을 놓는 강성 친박의 행태에 혀를 내둘렀다. 당장 6일 열리는 새누리당 의원총회가 또 다시 계파 간 전쟁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이 때문이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당내 권력지형 재편과 정권 재창출의 기틀을 마련하는 전당대회(8월9일) 룰을 두고 강성 친박의 ‘반격’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23일 최경환·유기준·정우택·한선교·홍문종 의원 등 친박계 중진 5명과 친박계 핵심인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이 저녁자리를 함께 했다. 이날 회동 이후 친박계 내부에서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 선출한다’는 혁신비대위 논의를 의총에서 뒤집자는 목소리가 공공연하게 표출됐다. ‘봉숭아학당’이라고 스스로 깎아내렸던 현행 ‘집단지도체제’ 룰로 다시 전당대회를 치르자는 것이다. 앞서 친박·비박계 모두 전당대회 득표에 따라 1등 당 대표, 2~5등 최고위원으로 줄만 세웠을 뿐 권한에는 별 차이가 없는 집단지도체제가 계파 갈등을 극대화하며 총선 참패를 불렀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에 지난 5월24일 친박 최경환, 비박 김무성, 낀박을 자처한 정진석 3인 회동에서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하나의 투표함에서 섞어 뽑는 현행 당헌·당규를 바꿔 당 대표 1명에게 권한을 몰아주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로 바꾸자는데 공감을 이뤘다. 당내 최대 지분을 가진 이들의 사전 합의에, 혁신비대위도 지난달 14일 당 대표-최고위원 분리선출 쪽으로 의견을 모았었다. 그런데 일부 친박들이 전당대회를 불과 한 달여 남겨두고, 이미 친박계 대주주의 의중까지 반영된 당 지도체제 구상을 다시 뒤집자고 나선 것이다. 갑작스런 기류 변화에는 당 대표에 출마하는 친박 후보들의 교통정리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강성 친박 최경환·이정현·홍문종 의원, 온건 친박 이주영 의원, 범친박 한선교 의원까지 모두 당권 도전 의사를 밝히거나 검토하고 있다. 바뀐 룰로 전당대회를 치렀다가는 표가 갈리며 당권을 상대 계파에 헌납할 수도 있으니 여러 친박 후보가 나와도 당권 접수 가능성이 큰 기존 룰로 다시 전당대회를 치르자는 주장이다. 손바닥 뒤집기식 요구에 비박계는 물론 온건 친박들도 “너무 무리한 발상으로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할 정도로, 철저한 ‘친박 패권의식’이 작동하지 않고는 내놓기 어려운 주장인 셈이다. 당 관계자는 “친박계는 매번 기준이 바뀐다”고 했다. “자기 편의적이고 임의적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를 자기들 편이라고 했다가 곧바로 밀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친박은 총선 참패 책임론이 거세게 일자 한 달여 셀프 자숙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물밑 지원으로 선출된 정진석 원내대표가 유승민계인 이혜훈·김세연 의원을 임시 지도부인 비상대책위원에, 강성 비박계인 김용태 의원을 당 혁신위원장에 앉히려하자 인계철선을 건드렸다는 듯 일제히 궐기했다. 비대위·혁신위 구상을 추인할 당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 개최 전날인 5월16일, 친박 초·재선 20명이 “인선이 특정 계파(비박계)에 치우쳤다”며, 이를 바꾸지 않으면 집단행동에 나서겠다고 반발한 것이다. 이튿날 친박은 정말로 ‘친위 쿠데타’를 벌여 전국위를 뒤엎는 힘을 과시한다. 친박계는 전국위에 조직적으로 불참해 비대위·혁신위 출범을 좌초시킨다. 홍문표 당시 사무총장 대행은 “전국위 당일 여의도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한 전국위원들이 ‘친박계 전화를 받았다. 입장이 난처하니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겠다’고 하더라. 이런 일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라며 한탄했다.
‘계파 청산’ 선언 뒤 무력시위 지난달 10일, 새누리당은 20대 국회 첫 의원 연찬회에서 “지금 이 순간부터 계파라는 용어를 쓰지 않을 것”이라며 거창한 계파 청산 선언식을 가졌다. 공염불이었음은 금세 드러났다. 일주일 뒤인 16일 혁신비상대책위원회가 당내 가장 뜨거운 현안인 유승민·윤상현 의원 등 탈당 무소속 당선자 7명을 일괄 복당시켰다. 비박계도 깜짝 놀랄 정도로 전격적이긴 했지만 당 안팎에서는 “언젠가는 결정했어야 할 사안을 일찌감치 잘 정리했다”는 여론이 우세했다. 강성 친박들의 생각은 달랐다. 김태흠 의원은 “일부 비대위원들이 비밀리에 작정하고 쿠데타 하듯 복당을 밀어붙였다”며 반발했다. 청와대와 서청원·최경환 의원 등 친박 대주주들이 ‘일괄 복당 결정을 되돌리는 것은 무리’라는 결론을 내리며 반발 수위는 잦아들었지만, 이튿날 조원진·김태흠·이장우·이완영·김진태·이우현 의원이 모여 비박계 비대위원인 권성동 사무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뒤끝을 부렸다. ‘못 해먹겠다’며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이 잠적 소동까지 벌이자, “당 진로를 걱정하는 의원” 친박계 의원 26명이 다시 집결해 권 사무총장의 사퇴를 거듭 주장했다. 3선 조원진 의원, 재선 김태흠, 이장우, 이완영, 박대출, 김진태, 이우현 의원 등 12명에 영남·충청지역과 비례 초선 13명이 호응했다. 결국 지난달 27일 권 사무총장은 “소신이나 철학이 아닌 누구와 가깝다, 친하다는 것만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건 당에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을 남기고 사퇴했다. 이 여파로 제1사무부총장인 김태흠 의원도 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당내 여론이 커졌다. 김 의원은 “계파적 시각에만 함몰된 이들이 친박 음모론을 조장하고 당내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 당 혁신을 위해 ‘일모도원’의 상황에 놓여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자진 사퇴했다. 일모도원.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인데, 이 말을 남겼던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자서는 “그래서 ‘도행역시’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말도 함께 남겼었다. ‘급한 마음에 순리를 따르지 않고 도리를 어겼다’는 것이다.
티케이·충청, 아직도 ‘친박’이 먹히니… “강성은 합리성이나 여론보다 권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기득권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소수화할 수밖에 없다. 상식적인 정치를 원하는 다수를 비주류로 쳐내버린다.” 당 관계자는 친박의 분화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는 주요 사안마다 여론을 거스르는 강성 친박의 역주행의 동력을 분석하는 시선이 다양하다. 당내 다수는 이런 역주행이 박 대통령의 지역 맹주론과 연관이 있다고 본다. 박 대통령 아버지의 고향인 대구·경북 지역, 어머니의 고향인 충청 일부 지역에서 박 대통령의 지지세가 강고한 탓에 그가 대통령직을 마친 뒤에도 정치적 영향력이 여전할 것이란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티케이 지역과 일부 충청권 친박 의원들에게는 당이 정권을 재창출하는지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끝까지 박 대통령을 옹호하고 확실한 충성파로 자리 매김하는 것이 다음 총선에서 공천 등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는 데 훨씬 중요하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퇴임 뒤에도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지원 유세라도 와주면 자신들이 당선될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강성 친박 가운데 다수가 티케이 지역구(조원진·이완영 의원 등)이거나 충청권(김태흠·이장우 의원)이라는 이런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또 다른 새누리당 인사는 “전국적으로는 손가락질 받지만 의원 개개인이 자기 지역에서 표를 받는데는 확실한 친박 성향을 보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라고 했다. 친박계 한 재선 의원도 “생각 없이 시킨다고 그렇게 (역주행)할 수는 없다. (강성 친박들이) 모두 재선에 성공하지 않았나. 지역구에서 이런게 통한다고 생각하니 계속 강성 친박으로 남으려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친박계 의원의 한 보좌진은 “그들이 원하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닌 자기들을 지켜줄 보스”라고 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강성 친박이 아예 정권 재창출보다는 자신들만의 정치 세력화에 더욱 몰두해 있는 것 같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지금 친박들이 하는 것을 보면 정권 재창출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대신 여론에 대고 ‘제발 우리 야당하게 해주세요’라고 외치는 것 같다. 차라리 야당이 되더라도 자신들끼리 똘똘 뭉쳐 단일 정치세력화 하는 것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했다. 스스로를 소수화한 강성 친박 탓에 박 대통령 역시 대한민국 대통령에서 소수 강경파의 대주주로 전락했을까? 반대로 강성 친박 역주행을 되짚어보면 결국 청와대의 역주행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친박의 역주행은 곧 이들이 행동의 주파수를 맞추는 청와대가 역주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승민 복당 문제나 비대위원 교체 문제를 봐도 친박들이 자생적으로 알아서 움직인다기 보다는 청와대의 의중에 따라 움직이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근혜여왕’의
우주기운론 신봉하며
민주공화론 유승민
‘사문난적’으로 몰아
청와대와 호흡 맞춰
‘역주행’ 불사
정권재창출보다
자리보전 급급
주류에서 밀린 초조함이 무리수로 이어져 일부에서는 주류지만 당 비주류에 밀렸던 위기감의 발로라는 분석도 있다. 친박계는 비교 우위가 분명했던 당내 주요 선거에서 비주류인 비박계에 번번이 밀렸다. 2014년 5월 국회의장 선거에서 비박 정의화 의원이 친박 황우여 의원을 따돌리고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그해 7월엔 전당대회에서 비박 김무성 의원이 친박 맏형인 서청원 의원을 크게 이기고 당 대표에 당선됐다. 이어 지난해 2월엔 비박 유승민 의원이 친박 이주영 의원을 꺾고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이전엔 잇단 당내 선거 패배에도 친박들이 그렇게 무리하지 않았다. 유승민 찍어내기에서 보듯 청와대가 힘이 있었고, 말 한마디면 정국을 뒤집을 지지율을 대통령이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나 총선 뒤 사태가 급변했다. 청와대 힘은 급속히 빠지고 있고 친박들은 정권의 힘이 더 빠지기 전에 무리수를 두어서라도 당권을 확보해 기득권을 구축해 두려는 것 같다. 더 늦으면 모든 것을 잃고 말 것이라는 초조감이 친박계에 있다”라고 했다. 친박 특유의 배타성도 이들이 민심과 다른 목소리를 내도 세를 잃지 않는 비결이다. 유승민 의원 복당 결정 뒤 친박 재선급들이 돌린 긴급 사발통문에 초선 13명이 화답했다. 이를 두고 한 새누리당 의원은 “다들 지역구에서는 힘들게 당선된 선량이지만 국회에 오면 개개 의원에 불과하다. 특히 공천 과정에서 친박의 테두리에 든 초선들은 핵심 친박들이 연락을 하고 모임을 열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의리 없고 배신자라는 이미지가 찍히면 괴롭다”라고 했다. 사발통문 모임을 주도한 김태흠 의원은 강성 친박이라는 지적에 “나는 강성 친박이 아닌 소신 친박이다. 나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고 발언한다”고 했다. 도전에 대한 집단 응전이 필요한 사안에만 뜻이 통하는 의원들과 단체 행동에 나선다는 것이다.
‘노론 시대’ 결말은 세도정치와 망국 딱 300년 전인 1716년(숙종 42년) 병신년에도 소론을 쳐내고 노론이 다시 실권을 잡은 병신처분(병신지화 또는 병신환국)이 있었다. 그 뒤로 5번째 병신년인 올해, 또 다시 병신환국이라 부를 만한 정국 혼란이 몇 차례나 벌어졌다. 친박 노론은 환국을 먹고 산다. 앞으로도 잦은 환국을 일으킬 것이다. 썰물 위 막걸리통처럼 언제 다시 쓸려나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정치의 상식을 배반하게 만든다. 최근 2년 간 친박 노론은 당내에서 뺏긴 약간의 권력마저 회수하거나, 자신들의 실권을 막기 위한 환국을 끊임없이 시도했고 일부는 대성공을 거뒀다. 당내에서는 권력 레이스가 불붙는 내년 대선까지 이런 환국이 여러 차례 더 이어질 것이라며 몸서리친다. 하지만 이런 강성 친박, 친박 노론의 역주행은 역풍을 맞게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친박 자체가 이미 새누리당 차기 대선 주자들에게는 넘어야할 기득권이자 걸림돌로 굳어진 때문이다. 새누리당 안에서는 “비박계 주자들로서는 친박 청선을 하지 않으면 대권에 다가설 길이 요원하다. 이 때문에 향후 친박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분당을 각오하고 친박 청산을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친박 내에서도 강성 친박 피로감이 쌓이는 분위기다. 친박 중진이 한 강성 친박 의원에게 ‘오더’를 내렸는데, 이 의원이 평소와 달리 “내가 꼭 이런 걸 해야 하느냐”며 싫은 티를 냈다는 것이다. 중진은 “그럼 누가 하겠느냐”며 달랬다는 후문이다. “온건파를 위하여!” 최근 새누리당 의원들이 모인 자리에 ‘온건 친박을 위하여’라는 건배사가 나왔다고 한다. 이 자리에 함께 했던 한 의원은 “최근 당 상황을 겪으며 다들 이심전심이었던 것같다”고 했다. 조선 붕당정치 끝판왕인 노론정치 이후는 세도정치와 망국이었다.
용어설명
고변(告變) 반역행위를 고발함
군약신강(君弱臣强) 임금은 약하고 신하는 강함
남인 1591년 서인인 정철의 처벌문제로 인해 동인 그룹 안에서 강경과 온건이 대립하며 류성룡을 중심으로 한 온건파인 남인과 조식·서경덕이 이끄는 급진파 북인으로 분화했다. 남인은 인조반정을 계기로 서인과 연합정권을 이뤘으나 숙종대에 이르러 세차례의 환국을 거치며 서로를 숙청하기에 이른다.
노론·소론 숙종 때 인현왕후 폐비사건을 계기로 서인이 실각하는 과정에서 서인은 송시열이 주도하는 노론과 윤증·박세채를 중심으로 한 소론으로 나뉘었다. 남인이 지지했던 장희빈이 사약을 받고 인현왕후가 복귀하며 남인은 정계에서 완전히 제거됐고 이후 탕평책을 쓴 영조 때까지 노론과 소론의 당쟁이 이어졌다.
대명률(大明律) 중국 명나라의 형법전. 조선의 <경국대전>, <경제육전>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복벽(復?) 물러났던 임금이 다시 왕위에 오름
붕당(朋黨) 조선 중기(선조)인 16세기 무렵 특정한 학문적 유대와 정치적 입장에 따라 형성된 정치집단. 최초의 붕당은 영남 유림인 이황·조식의 문하생을 중심으로 한 동인과 이이·기대승의 영향을 깊이 받은 서인이었다.
비망기(備忘記) 임금이 명령을 적어서 승지에게 전하던 문서
사문난적(斯文亂賊) 성리학의 이념에 반대하는 사람 또는 사상을 가리키는 말. 성리학이 교조화된 조선 시대 후기에 이르면 사문난적은 상대 붕당을 공격하기 위한 용어로 사용됐다.
압슬형(壓膝刑) 조선시대 죄인을 자백시키기 위해 행하던 고문
친국(親鞠) 임금이 친히 중죄인을 신문하는 일
환국(換局) 시국이 바뀜
고변(告變) 반역행위를 고발함
군약신강(君弱臣强) 임금은 약하고 신하는 강함
남인 1591년 서인인 정철의 처벌문제로 인해 동인 그룹 안에서 강경과 온건이 대립하며 류성룡을 중심으로 한 온건파인 남인과 조식·서경덕이 이끄는 급진파 북인으로 분화했다. 남인은 인조반정을 계기로 서인과 연합정권을 이뤘으나 숙종대에 이르러 세차례의 환국을 거치며 서로를 숙청하기에 이른다.
노론·소론 숙종 때 인현왕후 폐비사건을 계기로 서인이 실각하는 과정에서 서인은 송시열이 주도하는 노론과 윤증·박세채를 중심으로 한 소론으로 나뉘었다. 남인이 지지했던 장희빈이 사약을 받고 인현왕후가 복귀하며 남인은 정계에서 완전히 제거됐고 이후 탕평책을 쓴 영조 때까지 노론과 소론의 당쟁이 이어졌다.
대명률(大明律) 중국 명나라의 형법전. 조선의 <경국대전>, <경제육전>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복벽(復?) 물러났던 임금이 다시 왕위에 오름
붕당(朋黨) 조선 중기(선조)인 16세기 무렵 특정한 학문적 유대와 정치적 입장에 따라 형성된 정치집단. 최초의 붕당은 영남 유림인 이황·조식의 문하생을 중심으로 한 동인과 이이·기대승의 영향을 깊이 받은 서인이었다.
비망기(備忘記) 임금이 명령을 적어서 승지에게 전하던 문서
사문난적(斯文亂賊) 성리학의 이념에 반대하는 사람 또는 사상을 가리키는 말. 성리학이 교조화된 조선 시대 후기에 이르면 사문난적은 상대 붕당을 공격하기 위한 용어로 사용됐다.
압슬형(壓膝刑) 조선시대 죄인을 자백시키기 위해 행하던 고문
친국(親鞠) 임금이 친히 중죄인을 신문하는 일
환국(換局) 시국이 바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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