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9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미국의 오하이오급 핵추진 탄도유도탄 잠수함(SSBN) 켄터키함(SSBN-737) 내부를 시찰하며 잠망경을 살펴보고 있다. 미 해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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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9일 부산 해군 작전사령부 기지에 입항한 미군 전략 핵잠수함 켄터키함(SSBN-737)을 시찰했다. 외국 정상 자격으로 미국 전략 핵잠수함에 승선한 것은 윤 대통령이 처음이다. 이를 두고 대통령실과 국내 언론들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한미 양국이 확장억제 의지와 대북 경고 메시지를 내보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은 왜 그동안 한번도 외국 정상들을 태운 적이 없는 전략 핵잠수함에 윤 대통령을 태웠을까.
이 질문에 앞서 미국 전략 핵잠수함의 임무를 살펴봐야 한다.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 환영사에서 “켄터키함은 미국의 핵전력 3각 체계중 아주 중요한 전략적 플랫폼”이라며 “가장 생존성 높은 3각 체계 자산 중 하나로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확장억제의 중요 구성 요소”라고 설명했다. 전략 핵잠수함은 핵탄도미사일을 장착한 원자력 추진기관 잠수함을 뜻한다.
미국의 핵전력 3각 체계는 전략폭격기·전략 핵잠수함·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말한다. 1945년 8월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폭격기 B-29처럼, 처음에는 전략폭격기가 핵무기의 운반수단이었다. 하지만 미사일, 제트 전투기가 등장해 폭격기의 생존을 위협했다. 이후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이 대안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이 미사일은 지상에서 발사하기에 준비 시간이 길고 발사 위치가 노출돼 적의 선제 공격에 취약했다.
원자력 잠수함은 3각 체계 중 가장 생존성이 높아 최고의 핵 미사일 운반수단이 됐다.
디젤엔진 잠수함은 물 위에서 빨아들인 공기로 디젤엔진을 가동해 축전지를 충전하는 방식으로 물 속에서 움직인다. 축전지가 다 닳으면 공기가 있는 수면 위로 올라와 디젤 엔진을 다시 작동해야 한다. 결국 디젤잠수함은 물 속에 오래 머물지 못해 위치가 노출된다.
그런데 원자로를 잠수함에 추진기관으로 탑재한다면, 공기가 필요없어 이론상으로 무한대로 잠수할 수 있다. 오래 바다에 숨은 전략 핵잠수함이 핵무기를 언제, 어떻게 발사할 지 탐지하거나 추적하기는 무척 어렵다.
전략 핵잠수함의 가장 큰 특성이 은밀성이고, 가장 큰 장점이 생존성이다. 이 때문에 핵 억제 전략인 제2격(second strike)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미국이 적대국의 선제 핵공격을 받더라도 바닷속 전략 핵잠수함은 살아남아 핵미사일로 보복해 상대방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상대가 1차 공격에서 궤멸되지 않은 채 2차 핵공격이 가능하다면, 나도 같이 파멸하기 때문에 어느 쪽도 선제공격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상호확증파괴 논리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9일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미국의 오하이오급 핵추진 탄도유도탄 잠수함(SSBN) 켄터키함(SSBN-737) 앞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미국 전략 핵잠수함이 소재인 영화 <크림슨 타이드>에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남자 3명은 미국과 러시아 대통령, 그리고 SSBN 함장이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미 전략 핵잠수함(SSBN)은 미국 대통령에게 받은 전략적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외국에 좀체로 공개하지 않는다. 전략 핵잠수함은 심해에 잠복해 적에게 위치를 노출하지 않아서 ‘침묵의 복무’를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지난 19일 부산에 온 전략 핵잠수함에는 트라이던트-Ⅱ 탄도미사일을 20여기가량 적재 가능하다.
트라이던트-Ⅱ는 사거리가 1만2000㎞이라 괌, 하와이, 미 본토 서해안에서 쏘아도 한반도에 다다른다. 이 미사일을 탑재한 전략 핵잠수함이 한반도 항구에 들어오면 위치가 노출돼 전략 핵잠수함의 최대 장점인 은밀성이 사라진다.
사거리가 긴 트라이던트-Ⅱ는 목표물과 최소 2500㎞가량 떨어져야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잠수함이 부산에 기항하면 오히려 북한을 타격하기 힘들어진다. 미 전략 핵잠수함이 부산에서 북한을 향해 트라이던트-Ⅱ를 발사하려 한다면 비행거리를 줄이기 위해 북한이 자주 하는 고각 발사를 해야 한다.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미국 전략 핵잠수함의 부산 기항은 할 필요가 없고 의미도 없다.
그런데도 미국은 전략 핵잠수함을 부산에 기항시킨 것일까. 또 이 사실을 왜 공개하고,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윤석열 대통령을 초청했을까. 미국은 왜 이런 이례적인 선택을 했을까.
지난 22일 ‘미국의 소리’(VOA)에 나온 크리스토퍼 존스톤 전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동아시아 국장은 한국 국민들의 공개적 핵무장 논의와 강력한 요구가 미국과 한국의 확장억제 강화를 이끌고 핵협의그룹(NCG) 결성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켄터키함 부산 기항과 핵협의그룹 창설은 확장억제력의 심리적 차원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19일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미국의 오하이오급 핵추진 탄도유도탄 잠수함(SSBN) 켄터키함(SSBN-737) 내부를 시찰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같은 방송에서 메리 베스 롱 전 미 국방부 국제안보 차관보는 ‘미국은 왜 윤 대통령에게 전략 핵잠수함 같은 기밀 시설을 공개하느냐’는 질문에 “무엇보다 한국인들이 압도적으로 핵 보유를 다음 단계로 여긴다는 걸 미국이 인지한 데 따른 것이라고 본다.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른 조처”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윤 대통령이 받고 있는 국내 정치적 압박을 잘 이해한다. 윤 대통령이 국민의 우려를 최우선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이 윤 대통령에게 기밀시설을 공개한 것에 대해 “윤 대통령뿐 아니라 한국 국민들에게 보내는 신호이기도 하다. 당신들의 의견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라 말했다. 앞서 캐서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도 지난 4월 한-미 정상이 채택한 ‘워싱턴 선언’을 한국 내 자체 핵무장 여론이 형성되는 가운데 한국 국민들을 안심시키려는 정치적 노력으로 풀이했다.
국내에선 북한 전역을 초토화할 수 있는 핵미사일로 무장한 미 전략 핵잠수함에 윤 대통령이 승함한 사실 자체가 “북한 정권 종말”을 경고하는 대북 메시지로 여겼는데, 전직 미국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미국을 믿고 한국이 독자 핵무장을 할 필요가 없다”는 대남 메시지에도 무게를 둔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확장억제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작동하는지 한국에 알려주지 않고 “미국을 믿으라”는 말만 반복하다 지난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워싱턴 선언’이란 문서로 이를 확인했다.
지난 18일 서울에서 한미 핵협의그룹(NCG) 첫 회의를 하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한국이 별도의 핵무장을 고려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충분하고도 확실한 한-미 확장억제가 가능할 것이란 확신이 오늘 들었다”고 말했다. 미국이 전략 핵잠수함이란 실물을 부산에 들고 와 “나를 믿고 독자 핵무장 하지 말라”고 다시 요구하자, 독자 핵무기 보유를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재확인한 셈이다.
한편, 지난 19일 윤 대통령의 미 전략 핵잠수함 방문 때 부인 김건희 여사도 동행해 눈길을 끌었다. 미국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김건희 여사가 전략 핵잠수함 안에 들어가 잠망경을 보고 군 관계자의 브리핑을 듣고 있다. 대통령이 민감하고 전략적 의미가 있는 외국 군사시설을 방문할 때 부인이 함께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는 일이다. 이는 미국이 김건희 여사를 전략 핵잠수함에 초청하고, 김 여사에게 내부를 공개하는데 동의해야 가능하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