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5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최종 선출된 뒤 당 점퍼를 입고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명박 대 박근혜 후보가 맞붙던 2007년 경선 같았다.”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국민의힘 대선 경선이 지난 5일 윤석열 후보 선출로 막을 내렸다. 당 안팎에선 마지막까지 결과를 알 수 없던 판세를 두고 2007년 경선을 떠올렸다는 목소리가 많다. 17대 대선을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후보에 도전한 이명박·박근혜 후보. 국민참여선거인단(80%), 여론조사(20%) 결과를 합산해 나온 총 득표율은 이명박 후보가 49.56%, 박근혜 후보가 48.06%였다.
2021년 국민의힘 대선 경선 또한 보수정당사에 또 하나의 획을 그었다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역대 최다 ‘후보 풍년’이었던 이번 경선은 역대 최고 투표율, 20·30대 당원 급증 등 ‘역대급’ 장면들이 여럿 등장했다. 경선 마지막까지 결과를 알 수 없는 윤석열 대 홍준표 후보의 접전은 국민의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당 지지율은 수직상승했으며, 정권교체 여론도 증가세다. 2022년 3월9일까지 남은 시간은 4개월. 국민의힘은 14년 전의 ‘역사’를 다시 쓸까.
장면 1. 역대 최다 출마 선언에 미어터진 ‘경선 버스’…‘우량주’ 최재형의 몰락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경선 후보들이 지난 7월29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간담회를 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홍준표, 유승민, 박진, 김태호, 원희룡 후보, 이 대표, 최재형, 안상수, 윤희숙, 하태경, 장기표, 황교안 후보. 연합뉴스
국민의힘 경선 버스가 출발한 8월 말,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도전한 인물은 무려 15명이었다. ‘신입 당원’ 윤석열 후보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경선 흥행몰이 선두에 섰고, 현역 의원 중에서도 김태호·박진·윤희숙·하태경·홍준표 후보가 대선 경선에 참여하면서 ‘대선 주자 군단’을 이뤘다.
국민의힘 선관위는 1차 서류 전형을 통해 15명을 12명으로, 이후 1차, 2차 컷오프를 통해 각각 8명, 4명 후보로 좁혀가면서 경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끌어올렸다. 2차 컷오프에서는 감사원장에서 사퇴한 뒤 보름여 만에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해 호기롭게 대선에 출마했던 ‘우량주’ 최 전 원장이 예상 밖 탈락을 하기도 했다. 경선 초반인 지난 9월에만 해도 최 전 원장은 ‘대세론’을 탄 윤 후보의 대항마로 도덕성 면에서 우월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존재감이 적지 않았지만, 경선 내내 준비 부족을 지적받으며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경선 초반 당 내 유일한 여성 후보로 ‘깜짝’ 출마 선언을 했던 윤희숙 전 의원은 본격적인 ‘대선 버스’가 출발하기 전인 지난 8월26일 아버지의 땅 투기 의혹으로 출마를 포기했고, 의원직도 내려놨다. 컷오프된 후보들은 윤 후보, 홍 후보 쪽으로 잇달아 합류하며 경선 막판 ‘윤석열 대 홍준표’ 구도를 한층 공고화했다.
장면 2. 역대 최고치 투표율, 급증한 당원수로 막판까지 혼전세
국민의힘 한 당원이 지난 1일 국회 사무실에서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투표 당원 모바일 투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 경선 최종 투표율은 63.89%였다. 책임당원 56만9059명 중 36만3569명이 투표한 것이다. 이는 현행 선거인단 방식이 도입된 2011년 이래 최고 투표율이었다. ‘이준석 돌풍’을 일으켰던 지난 6·11 전당대회 투표율(45.36%)은 물론, 2차 예비경선 최종 당원 투표율이던 49.94%도 14%포인트 가까이 넘어선 것이었다.
역대 최고치 투표율은 막판 변수로 작용했다. 지난 9월부터 입당한 신규당원 19만명은 예비경선엔 참여하지 않았던 ‘예측 불가 표심’이었다. 이들 중 20~40대가 절반을 차지했기에 캠프별 유불리를 두고 전망이 엇갈렸다. 뚜껑을 열어보니 기존 당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 확인됐다. 윤 후보가 당심에서 홍 후보가 민심에서 앞선 가운데, 높은 당원 투표율은 결국 윤 후보 승리의 최대 요인이 됐다.
장면 3. ‘무야홍 드라마’…2030 남성 지지 업은 홍준표의 ‘역주’
국민의힘 경선의 최대 흥행 요소는 홍 후보가 써내려간 ‘무야홍(무조건 야당후보는 홍준표) 드라마’였다. 지난 6월24일 홍 후보가 국민의힘에 복당했을 때만 해도 그가 윤 후보의 ‘대항마’가 될 것으로 예견한 이는 많지 않았다. 6월 말 윤 후보의 정치 참여 선언이 이뤄지고 얼마 뒤 국민의힘에 입당하면서 ‘윤석열 독주체제’가 형성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윤석열 후보가 갈등을 빚을 때 이 대표 편에 서면서 2030세대의 관심을 끌었고, 그의 약점으로 지적됐던 ‘막말’은 오히려 2030세대에겐 ‘시원한 화법’으로 다가갔다. 홍 후보가 내놓는 사형제 부활, 사법시험 부활, 대학입학 수시전형 폐지 등이 2030세대에게 소구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9월 들어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석열-홍준표’ 양강 구도가 굳어졌다.
홍 후보의 맹추격을 놓고 윤석열 후보 쪽에선 민주당 지지자들이 ‘손쉬운’ 후보를 선택한다는 이른바 역선택 의혹을 제기했다. 경선 막바지까지 역선택 논란은 ‘윤-홍 신경전’의 주된 소재가 됐다. 윤석열 후보는 마지막 토론에서 홍 후보 지지층을 “(민주당이) 꿔준 표”라고 해 홍 후보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홍 후보는 국민의힘 대선경선 최종 결과가 발표된 뒤 “경선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한다”며 “이번 경선에서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국민적 관심을 끌어줬다는 게 제 역할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선 “26년 간 헌신한 당에서 헌신짝처럼 내팽개침을 당했다”며 서운함을 나타냈다.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2일 부산역에서 열린 부울경 기자회견을 마치고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장면 4. ‘이슈메이커’ 윤석열, 손바닥 ‘왕’, ‘전두환 망언’ ‘개 사과’…
지난달 1일 <엠비엔>(MBN) 주최로 열린 5차 토론회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손바닥 한가운데에 ‘왕(王)’자를 그려놓은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엠비엔> 유튜브 갈무리. 연합뉴스
윤 후보는 경선 과정 내내 ‘이슈 메이커’였다. 실언 후 해명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반복되며 그 스스로가 ‘리스크’였다는 비판도 속출했다.
그는 지난 7월 대구를 찾아 “사람들이 ‘코로나19 초기 확산이 다른 지역이었다면 민란부터 일어났을 것’이라고 한다”고 말해 지역감정 논란이 불거졌다. 주 52시간제를 비판하면서는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 비판 받았다. 경북 안동에서 대학생들과 만나서는 “지금 기업이 기술로 먹고살지, 손발로 노동을 해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그건 인도도 안 하고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9월23일 토론회에서는 주택 청약 관련 질문을 받던 중 “집이 없어 청약통장을 만들어보지 못했다”고 발언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10월1일 토론회 때는 손바닥에 쓰인 ‘왕(王)’자가 드러나면서 ‘무속 논란’에 휩싸였고 캠프 인사들의 오락가락 해명으로 일을 키웠다. 경선 마지막 토론회에서도 개 식용 정책과 관련해 “식용 개는 따로 키우지 않나”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윤 후보는 경선 막판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는 망언으로 경선 중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어진 에스엔에스(SNS) ‘개 사과 사진’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사과는 개나 주라는 것’이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는 애초 경선 직전 광주를 방문해 사과할 예정이었지만, 막판 ‘또 다른 설화’를 우려한 캠프 참모들의 반대로 경선 이후로 일정을 미뤘다. 윤 후보는 오는 10일 광주를 1박2일로 방문한다.
장면 5. ‘박근혜 마케팅’부터 성별 갈라치기까지…과열 경쟁에 ‘퇴행’ 비판도
경선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탄핵의 강’을 건넜다던 국민의힘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소환됐다. 본경선의 50%를 차지하는 당심(당원투표)가 경선 승리의 ‘승부처’로 지목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지지층을 끌어들이기 위한 윤석열-홍준표 캠프의 ‘박심 구애’ 경쟁은 치열해졌다. 서로 박 전 대통령 지지단체가 자신을 지지했다고 주장했고, 홍 후보 쪽은 급기야 박 전 대통령의 사촌형제의 지지를 얻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는 대구를 방문해 “(당 대표 시절) 박 전 대통령 출당 조치로 대구·경북 시도민 마음을 아프게 한 데 대해 거듭 용서를 구한다”고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새로 당에 유입된 20·30대 남성들을 의식한 ‘성별 갈라치기’도 문제가 됐다. 유승민 후보는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생각은 사라져야 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성범죄는 엄하게 처벌해야 하며, 똑같은 이유로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무고죄도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여성가족부 폐지론을 꺼내 들며 ‘남성 역차별’ 주장에 힘을 실었던 유 후보가 막판 ‘이대남’ 표심을 겨냥한 것이었다.
윤 후보도 청년 정책을 발표하며 ‘성폭력특별법’에 무고죄를 신설하겠다고 공약했다. 성폭력에 대한 “거짓말 범죄를 근절하겠다”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에 대한 증명을 끊임없이 요구받으며 2차 피해에 놓이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현실을 외면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제1야당의 경선이 통합의 메시지가 아닌 ‘혐오’와 ‘증오’를 양산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윤석열 후보가 제1야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되면서, 내년 대선 대진표의 마지막 퍼즐이 완성됐다. ‘0선 정치신인’을 대선 후보로 만들어낸 국민의힘의 ‘흥행’이 본선에서도 이어질 수 있을지, 정치인 5개월차 윤 후보가 대선후보로서 ‘제 몫’을 해낼 수 있을지가 본선의 또다른 관전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