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9일에 실시될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나설 예비 후보자 등록이 12일부터 시작된 가운데 지난 12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마련된 접수처에서 후보들이 대선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9일 오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는 대선 경선 후보 간담회가 열립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는 후보자는 11명. 아직 당 밖에 있는 야권 대선주자 1위 윤석열 전 검찰총장 등을 제외하고도 이미 열 손가락을 넘어선 숫자입니다. ‘쩐의 전쟁’이라고 불리는 대선판. 너도나도 출마를 선언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국민의힘은 이날 경선 후보 간담회 행사에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태호·박진·윤희숙·하태경·홍준표 의원, 원희룡 제주지사, 안상수·유승민 전 의원,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후보 등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면면을 놓고 보면 정치 경력도 적지 않고, 유명세도 있는 분들인데요. 현역, 중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온 이들이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 여론조사 지지율로 보면 1%대를 넘어서지 못한 후보들이 다수입니다. 지난 22일 전국지표조사 결과(조사 기간 19∼21일, 성인 1003명 대상,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이용한 전화면접조사 방식)를 보면 국민의힘 소속 대선주자 중 홍준표 의원이 4%로 가장 앞섰고, 최재형 전 원장(3%), 유승민 전 의원(2%), 황교안 전 대표(1%) 등이 조사 결과표에 이름을 올렸습니다(신뢰수준 95%, 표본오차±3.1% 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정치권에선 ‘마의 5% 벽을 넘어서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요.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아쉬운 지지율을 받아들고도 후보들은 공약을 발표하고, 캠프를 꾸리고, 대선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들뿐만이 아닙니다. 아예 예상도 못했던 ‘군소후보’들도 이번엔 여럿 대선 경선에 참여할 뜻을 보였습니다. 지난 27일에는 국회 전시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누드 풍자화를 파손한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심동보(67) 해군 예비역 준장이 출마를 선언했고요. 지난 5일에는 경남 김해을 당협위원장이기도 한 ‘노동운동가’ 출신 장기표(76) 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가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먼저 후보 등록을 마친 이도 있습니다. 20대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한 국민의힘 소속 인물 중에선 직업을 “시장 상인”이라고 소개한 강성현(56)씨, 정치리더십연구회 회장이라고 소개한 오승철(64)씨가 그 주인공입니다. 무소속으로는 윤석열 전 총장과 함께 최대집(49)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김기천(62) 닥터김 대표 등도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습니다.
대선후보 기탁금 선관위에만 3억원, 당에도 3억원인데…
공직선거법 제56조에는 선거 기탁금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습니다. 대선 기탁금 제도는 후보자 난립을 방지할 목적으로 1987년 처음 도입됐습니다. 처음엔 5천만원(무소속은 1억원)이던 기탁금이 1992년 3억원, 1997년 5억원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던 2008년 11월, 헌법재판소는 “5억원의 기탁금은 대통령 선거 입후보예정자가 조달하기에 매우 높은 액수임이 명백하다”며 “개인에게 현저하게 큰 부담을 초래하고, 재산의 다과에 따라 공무담임권 행사 기회를 차별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2011년 12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공직선거관계법심사소위에서 대통령 선거 기탁금을 3억원으로 내리기로 합의하면서 기탁금은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억’ 소리가 납니다. 이번 대선에 출마하고자 하는 이들이 중앙선관위에 예비후보로 등록할 때는 기탁금 3억원의 20%를 내야 합니다. 윤 전 총장, 최 전 원장은 이미 ‘대선 출마’ 입장료로 6000만원을 썼습니다.
기탁금은 당선된 경우, 후보자가 사망한 경우, 유효투표 총수의 15% 이상을 득표한 경우에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유효투표 총수의 10% 이상, 15% 미만을 득표할 경우에는 기탁금의 절반만 돌려받게 됩니다. 본선에 진출한 후보들이 10% 벽을 넘기 위해 사활을 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당에 소속돼 대선에 출마하려는 사람은 당 기탁금도 추가로 내야 합니다. 국민의힘 경우엔 지난 27일 경선준비위원회 회의에서 경선 기탁금을 총 3억 원으로 책정했는데요. 주자들은 컷오프 단계별로 1억 원씩 내게 됩니다. 한 번에 3억원을 내는 것보다 후보 입장에서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 것 같네요. 그래도 당 경선을 통해 대선에 출마하려면 기탁금만 6억원이 필요한 겁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예비경선 1억원, 본경선 3억원 등 총 4억원을 내야 했습니다. 컷오프 전 정세균 전 총리와의 단일화를 통해 스스로 물러난 이광재 민주당 의원은 국민 면접, 티브이(TV) 토론회에 참석하는 값을 1억원을 쓴 셈이죠.
정치는 ‘쩐의 전쟁’이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알 것 같습니다. 출마하겠다는 의사만으로 수억 원씩 들어가는 대통령 선거에 너도나도 출마하려는 이유, 무엇일까요. 특히 20대 대통령 선거를 7개월여 앞둔 현재, 여야 모두 어느 때보다 후보 ‘풍년 상태’입니다.
돈 없인 엄두도 못 낼 대선에 출마하는 이들 중엔, 실제 당선 말고도 다른 ‘기대감’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대선 경선에 출마하는 일은 이름을 알리고, 인지도도 쌓고, 주요 정치인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죠. 특히 내년 6월엔 전국동시지방선거도 예정돼 있습니다. 한 번이라도 이름을 더 알려야 하는 정치인들에게 대선은, 솔깃한 이벤트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군소후보를 돕는 한 관계자에게 출마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의제를 알리기에 대선만큼 좋은 선거는 없다. 언론에 언급되고, 토론회를 하면서 인지도가 오르는 것에 비하면 기탁금은 큰 부담은 아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특히 20대 대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후보가 넘쳐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를 두고 여야 모두 굳건한 ‘오너’가 없다는 점이 후보 숫자를 늘렸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춘추전국시대에 너도나도 출사표를 던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죠.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한겨레>에 “누구나 출마해 어느 정도의 리더십을 구축하면 당내 입지를 세울 수 있다는 생각이 출마를 독려한 것 아닌가 생각된다”며 “굵직한 ‘보스 정치인’보다 ‘스몰 리더십’이 주목받는 사회 분위기, 20·30세대 등 지지층의 분화와 변화, 다양한 요구들이 강하게 분출되면서 여러 주자가 도전하는 구도가 만들어졌다”고 짚었습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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