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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아시아계 증오범죄는 오랜 역사…실제는 훨씬 많을 것”

등록 2021-04-01 18:43수정 2021-04-02 02:03

【짬】 한미연합회 사라 박 애틀랜타 지회장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청사 앞에서 열린 집회 현장에서 사라 박(왼쪽 두번째) 지회장이 애틀랜타 지역 정치인 및 여성 지도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박 지회장 제공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청사 앞에서 열린 집회 현장에서 사라 박(왼쪽 두번째) 지회장이 애틀랜타 지역 정치인 및 여성 지도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박 지회장 제공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범죄는 코로나 19 이전에도 많았어요. 코로나 19가 터지면서 통계로 잡힌 게 늘었을 뿐이죠. 아시아계 증오범죄는 드러난 수치보다 실제 훨씬 많을 겁니다. 아시아계를 향한 범죄가 단순 절도나 강도 사건으로 처리되는 일이 많아요.”

사라 박 지회장.            박 지회장 제공
사라 박 지회장. 박 지회장 제공
재미 한인의 정치적 권리 신장을 위한 비당파 단체인 한미연합회(KAC) 애틀랜타 지회장인 사라 박은 지난달 16일 한인 넷 등 아시아계 여성 6명이 희생당한 애틀랜타 총격 사건 이후 대외 활동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달 20일 조지아주 청사 앞에서 3천여 명이 참가해 열린 아시아계 증오범죄 규탄 집회에서 한인 시민단체 대표 자격으로 연설했고, 지난 26일 애틀랜타 한인회관에서 4천여 명이 접속한 가운데 열린 총격 피해자 온라인 추모식도 미 전역의 한인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이끌었다.

인구가 약 100만 명인 조지아주 귀넷카운티의 지역연계담당관으로 있는 박 지회장은 총격 사건 이후 아시아계 여론 동향을 지역 정치인과 행정 책임자들에게 전하며 카운티 차원의 대책 마련에도 힘을 쏟고 있다. 올해 초 지회장에 취임한 그는 13살 때인 1998년에 애틀랜타로 가족이민을 왔다. 지난 29일 전화로 박 지회장을 만났다.

그는 지난 20일 연설에서 “이민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 문제의 해법은 “대립이 아니라 연대”라고 강조했다. 온라인 추모식에서도 아시아계 증오범죄가 미국의 사회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함께 내자고 호소했다.

지난 26일(현지시간) 열린 온라인 추모제에서 사라 박 지회장이 연설하고 있다.                                                  사진 박 지회장 제공
지난 26일(현지시간) 열린 온라인 추모제에서 사라 박 지회장이 연설하고 있다. 사진 박 지회장 제공

지난달 20일 조지아주 청사 앞에서 열린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범죄 규탄 대회 모습.                                                                                 ⓒSun Kim
지난달 20일 조지아주 청사 앞에서 열린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범죄 규탄 대회 모습. ⓒSun Kim
“아시아계 이민 역사가 15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아시아계는 미국 사회에서 주체가 되지 못해요. 회사에서도 연봉은 올라가지만 대표나 중역 기회는 많지 않아요. 문화 예술계도 마찬가지죠. 결정권이 없어요. 피부색 때문에 제도적 차별을 받는 거죠.” 그가 인종과 종교를 초월한 연대를 강조한 이유는 이렇다. “폭력을 쓰거나 미워하는 것은 오로지 피부색이 달라서죠. 상대를 알지 못하는 만큼 미움이 커집니다. 연대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게 중요해요.”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깨기 위해선 아시아계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했다. “아시아계는 그동안 인종차별과 같은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서 헌신적으로 일만 하는 우수한 커뮤니티로 미국에서 평가를 받아 왔어요. 차별받으면서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묵묵히 일만 해왔죠. 그 사이에 사회나 정보 취약계층인 우리 이웃이 위험에 내몰렸어요. 이번에 사건이 난 곳은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 같은 도심 중심입니다. 한인들이 살고, 일하는 곳이죠. 이번에 한인들은 언제든 자신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죠.”

그는 이어 “한인 부모들은 그동안 자녀에게 ‘열심히 살아 미국 사회의 좁은 문을 뚫어라’라고 했지만, 이제는 ‘인종차별을 당했을 땐 바로 알려라’라고 가르쳐야 한다”는 말도 했다. “‘좁은 문’이라는 게 바로 피부색으로 차별당한다는 거죠. 동양인은 아무리 잘해도 1~2명 받으면 된다는 차별적 사고가 미국 사회 곳곳에 있어요. ‘좁은 문을 뚫어라’는 흑인 부모가 자녀에게 ‘경찰이 질문하면 목소리 낮추고 고개를 들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과 비슷해요.”

차별을 문제삼을 때 받을 불이익에 대한 우려가 크지 않겠냐고 하자 그는 이렇게 받았다. “알리지 않으면 이 세상에 그 일이 없었던 것으로 됩니다. 우리가 흑인 커뮤니티의 일을 잘 모르듯 세상은 우리한테 뭐가 필요한지 알 수 없어요. 알려야 문제를 풀 수 있어요. 그렇게 (차별) 데이터가 모여야 문제를 풀기 위한 정부 재원도 책정됩니다.”

아시아계 6명 사망 총격 사건 뒤
4천명 참여 온라인 추모제
이끌고
조지아주 청사 앞 규탄 집회 연설
카운티 공무원으로 대책 마련도

“증오범죄 현황 정확히 파악하고
아시아계 전담 연방기관 신설을”

이번 사건이 증오범죄인지를 두고 논란이 있는 것 같다고 하자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동양인 여성들을 성적인 대상으로 보고 저지른 명백한 증오범죄입니다. 아시아계가 일하고 운영하는 업소를 찾아가 총을 쐈어요. 인종차별의 미움에 기반을 둔 범죄이죠.” 이어 “증오범죄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면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힐 것”이라면서도 그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나 주 상·하원 의원들도 증오범죄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사건 사흘 뒤 대통령이 애틀랜타를 찾았고 연방 아시아태평양계 의원들도 직접 피해자 유족을 만났어요. 지금 국토안보부 등 미국 행정부나 정치권은 수사 당국의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어요. 해법을 위한 제도적 논의도 이뤄지고 있고요.”

그는 아시아계 차별을 막기 위한 제도의 변화를 특히 강조했다. “대통령 등 행정부 고위직이나 정치인들이 이번 사건을 심각한 문제로 보고 아시아계 분노에 공감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중요한 것은 제도 변화입니다. 우선 아시아계 증오범죄 데이터를 제대로 모아야 하고 이를 토대로 공권력을 집행하는 경찰 등에 대한 철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아시아계를 위한 정책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 기관도 신설해야 합니다. 여기서 아시아계를 둘러싼 여러 문제를 체계적으로 다뤄 제도 변화를 이끌어야죠.”

애틀랜타 지역 한인 청소년들이 ‘증오범죄를 멈춰라’는 내용의 벽화를 그리고 있다.                                                                        ⓒCrystal Jin Kim
애틀랜타 지역 한인 청소년들이 ‘증오범죄를 멈춰라’는 내용의 벽화를 그리고 있다. ⓒCrystal Jin Kim
그가 지난 10여년 동안 활동해온 한미연합회는 한인 1.5세대나 2세대가 주축인 차세대 조직으로, 한인들이 투표나 인구센서스, 정책 공청회 참여 등으로 시민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애틀랜타 지회 회원은 약 400여명이다. 그는 조지아주립대 정치학과를 나와 잠시 통역 일을 하다 귀넷카운티 관광청에서 5년간 일했고 3년 전부터 카운티 임명직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2013년에 결혼한 한인 2세 남편도 귀넷카운티 도시계획위원으로 있다.

“제가 교회나 어디를 가든 소외된 사람을 잘 보지 못해요. 모두가 함께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해서죠.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챙기다 보니 리더 노릇을 교회나 학교에서 많이 했어요.” 한인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계기가 뭐냐는 질문에 대한 박 지회장의 답이다.

이민 초기엔 “애국심이 넘쳐” 일본군 ‘위안부’나 남북통일 등 조국이 처한 현실에 더 관심을 가졌지만 고교를 다닐 때부터 차츰 미국 사회 문제로 눈길을 돌렸단다. “고등학생 때 친구에서 2002년 동계 올림픽에서 안톤 오노에게 금메달을 안긴 편파 판정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관심을 갖지 않더군요. 그때부터 미국에서 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게 효율적인지 의문이 들더군요.” ‘반듯한 미국인’으로 자란 2세 남편을 만난 것도 영향을 미쳤단다. “앞으로 한인 3세로 살아갈 제 아이(6살 딸)를 위해서라도 미국에서 한인의 정치·시민적 권익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계획을 묻자 그는 “공무원을 오래 하고 싶다”고 했다. “정치인도 좋지만 한인 중에 고위 공무원이 나오는 게 더 중요해요. 그들이 세금을 어떻게 쓸지 정하고 행정 서비스 책임도 맡고 있잖아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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