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한겨레> 자료사진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한 지난 8일 법원의 판결을 둘러싸고 지난 주말 한-일 정부가 ‘담화 설전’을 벌였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23일 ‘외무대신 담화’를 내어 “국가는 국제법상 주권을 가진 서로 대등한 존재이므로 원칙적으로 외국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는다. 이 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한국 재판권에 복종할 수 없다. 이 판결은 국제법과 일-한 양국 합의에 명백히 위반하는 것으로 지극히 유감이며 받아들일 수 없다. 한국에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다시금 강력히 요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 정부는 1심 판결 이후 한국의 재판권을 부정한다는 뜻에서 항소를 포기해 이날 판결이 확정됐다. 판결에 따르지 않겠으니, 한국 정부가 ‘적절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오후 ‘입장문’을 내어 반박했다. 외교부는 지난 2015년 말 ‘위안부’ 합의를 존중해 “일본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는 어떤 추가적인 청구도 하지 않을 방침”이지만, 일본도 지난 합의 때 밝힌 “책임 통감과 사죄·반성의 정신에 입각해 피해자들의 명예·존엄 회복과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진정한 노력”을 하고, 이 문제가 “세계에서 유례없는 전시 여성의 인권 유린이자 보편적 인권침해의 문제로서, 국제 인권규범을 비롯한 국제법을 위반한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며 일침을 가했다.
지난 강제동원 피해자 판결 때처럼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양국의 노력을 강조하는 한국과 ‘65년 체제’ 등을 거론하며 모든 책임을 한국에 떠넘기려는 일본 사이의 논전이 거듭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에 ‘진정한 사과’를 요구할 뿐 일본 정부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 절차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져 있어, 지난 대법원 판결 때와 달리 한-일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으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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