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7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을 방문해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왼쪽)과 대화를 나누는 도중 창밖에서 한 북한군이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파주/사진공동취재단
17일 오후 4시45분께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공동기자회견이 열릴 예정이었던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별관 2층 브리핑룸은 오후 1시부터 내외신 기자들로 북적였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경호도 한층 강화됐다. 회견장에 출입하는 모든 이는 신원조회를 거쳐 검색대를 통과하게 했다. 청사에서 평소에 볼 수 없던 정찰견도 경계를 섰다.
예정보다 15분가량 늦은 오후 5시께 회견장에 들어선 틸러슨 장관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미소를 띤 윤 장관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두 장관의 간략한 모두 발언에 이어 한국 기자단과 외신 기자단이 각각 2개씩 질문을 던졌다. 틸러슨 장관은 질문한 기자를 바라보며 차근차근 답변을 했으나, 목소리에 힘을 뺀 조용한 어조로 말해 회견 중간에 마이크의 볼륨을 올려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목소리 크기와는 별개로 틸러슨 장관은 단호하게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회담이 끝난 뒤 한 외교부 당국자는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와 달리 말하는 게 시원시원하다”고 말했다.
앞서 이날 오전 10시10분께 경기도 평택 오산공군기지에 전용기를 타고 도착한 틸러슨 장관은 대기 중이던 블랙호크 헬기(UH-60)를 타고 곧바로 비무장지대(DMZ)로 이동했다. 앞서 비무장지대를 방문했던 미 고위급 인사들과 달리, 취재 기자들의 동행을 거부한 틸러슨 장관은 미국에서와 같이 ‘조용한 행보’를 이어갔다.
틸러슨 장관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대대인 캠프 보니파스를 찾아 장병들과 점심식사를 하는 것으로 방한 일정을 시작했다. 캠프 보니파스는 1976년 8월18일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틸러슨 장관은 이어 판문점에서 브리핑을 받고, 군사분계선(MDL) 인근에서는 기념사진도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T2)까지 둘러본 틸러슨 장관은 별다른 메시지를 내놓지는 않았다.
틸러슨 장관은 한국에 머무는 24시간 동안 공식 회담 외에는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접촉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앞서 방문한 일본에서는 16일 오후 5시40분부터 약 1시간 정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업무 만찬을 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윤 장관과의 회담이 저녁 무렵 끝났는데도 만찬을 함께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파면되고 곧 새 정부가 들어설 한국의 정치 상황을 고려해, 미국 쪽에서 만찬 일정 등을 잡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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