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외교팀장 그날이다. 2015년 12월28일.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대한 “일본 정부의 우려”를 “인지”한다며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젊은이들이 ‘소녀상을 지키겠다’며 소녀상 옆에 비닐천막을 치고 ‘24시간 노숙 농성’(지금도 계속되고 있다)에 나섰다. 부산의 ‘미래세대’는 그곳에서 “소녀상을 영사관 앞에!” 세울 꿈을 키웠다. “12·28 합의가 엄청난 충격을 줬어요. 특히 소녀상 철거 부분이요. 지킬 소녀상도 없는 부산이 너무 부끄러웠어요.”(부산대학생겨레하나 김지희 대표, 2016년 5월16일 부산지역 청년잡지 <지잡> 인터뷰) ‘영사관 앞 소녀상’은 12·28 합의의 근간을 흔들 ‘상황 변화’라 한-일 정부 모두 받아들일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미래세대’들도 “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울 수 있을까 의심할 때가 많았다”.(유영현 부산대 총학생회장) “멍청한 사람의 우직함이 세상을 바꾼다”(개성고 3학년 김광표)며 한걸음씩 내디뎠다. “현실을 직시하라, 불가능을 꿈꾸라”던 체 게바라처럼, ‘불가능’을 꿈꿨다. 2016년 1월6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서 문화여고 2학년 전옥지부터 시작한 ‘인간 소녀상 1인시위’에 지금껏 700명 넘게 참여했다. 3·1절에 ‘미래세대가 세우는 소녀상 추진위원회’(미소추)가 발족했다. ‘평화의 저금통’이 부산의 각 가정·학교·가게·사무실에 뿌려졌다. 청년예술가들이 부산대 공연(4월2일)으로 22만7천원과 저금통 2개, 광안리 해변가 버스킹(4월30일)으로 31만7130원을 모았다. 5월20일엔 부산대에서 학산여고 댄스팀 그레이스 등이 참여한 ‘평화콘서트’를 열었다. 초등 2학년 임지윤은 “용돈을 아껴서 모으려고 했는데 자꾸 다른 것을 사게 된다”면서도, 평화콘서트장에서 받아온 저금통을 두번이나 꽉 채웠다. 지윤이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모금은 우리의 희망과 같다. 꼭 일본이 사과하기를 바래. 소녀상을 꼭 보러 갈 것이다.” 그렇게 부산의 168개 단체, 19개 학교, 5143명이 8500만원을 마련했다. 개성고 매점, 부경대 앞 분식집 ‘혜화동돌쇠아저씨’, 동의대 인문대 복사실, 미소추 소속인 신도고 봉사동아리 ‘다운’의 학생들의 저금통…, 그 저금통들에 마음을 보탠 이들까지 더하면 셀 수 없이 많다. 미소추는 12월28일 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웠다. 부산 동구청이 강제철거했다. 항의·비난이 빗발쳐 구청 업무가 마비됐다. 박삼석 동구청장은 “전부 욕을 해 더는 감당할 수 없다”며 “정부가 요구해도 철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우여곡절 끝에 12월31일 제막식을 한 부산 소녀상은 12·28 합의의 아킬레스건을 끊어 작동 불능 상태에 빠뜨렸다. 주목해야 한다. 소녀상을 세운 주체가 ‘미래세대’라는 사실을. 25년째 이어온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 참여 시민은 10명에 8~9명꼴로 10~30대라는 사실을. 수요시위 1000회에 맞춰 일본대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울 땐 3천명이었는데, 부산 소녀상 제막식엔 1만명이 모인 사실을. 정부 등록 피해자 할머니들(40명)이 모두 돌아가시면 이 문제가 영원히 잊히리라 헛꿈을 꿔온 한-일의 추한 영혼들한테는 재앙일 터.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서 ‘인간 소녀상 1인시위’를 한 초등 6학년 박가은은 소망한다. “할머니들한테 일본 사람들이 사과하는 모습을 제 눈으로 꼭 보면 좋겠습니다.”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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