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12·28 합의 1년]
대선주자 10명 “재협상”
차기 정부 재협상 가능성 커져
일 정부 “수용 못해” 미리 쐐기
‘12·28합의’ 앞길 놓고
양국 여론 극명 대립도 변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를 이끌어낸 광화문 광장의 촛불 민심이 한국·일본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12·28 합의를 되돌려 놓을 듯한 형국이다. <한겨레>가 12·28 합의 1년을 계기로 주요 대선 주자들을 상대로 12·28 합의에 대한 견해를 물은 결과 ‘합의 계속 이행’이라고 답한 이가 한 명도 없는 게 그 강력한 증거다. <한겨레>의 조사에 응한 대선 주자 10명 가운데 야권 후보 7명이 ‘재협상·폐기(무효화)해야 한다’고 답했을 뿐더러 여권 성향의 후보 3명(남경필·오세훈·유승민)도 ‘재협상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여야를 불문한 주요 대선 주자들의 이런 재협상·무효화 견해는,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새 정부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12·28 합의 대체를 위한 재협상에 나서도록 압박하는 정치적 ‘힘’이 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흐름이다.
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 동력이 사실상 소진된 와중에 ‘12·28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거듭 다짐해온 한·일 양국 정부의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정부의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9일 국회의 박 대통령 탄핵소추로 12·28 합의의 운명이 위태워지자 “위안부 합의에 어떤 영향도 없을 것”이라고 방어선을 쳤다. 아베 총리의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 관방부장관도 11일 <후지텔레비전>에 나와 “(한국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한번 더 (협상을) 다시 하자’는 요구는 수용할 생각이 없다. 당연히 (합의를) 준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못박았다. ‘재협상은 없다’는 선언인데, 역설적으로 일본 정부의 ‘재협상 우려’가 그만큼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12·28 합의는 국제법적 구속력을 지니는 조약이나 협정은 아니다.
사실 12·28 합의 이후 한·일 양국 사회의 여론은 엇갈린다. 한국의 다수 여론이 ‘12·28 합의 반대와 재협상 촉구’ 쪽이라면 일본의 여론은 ‘합의 이행’이 다수다. 예컨대 7월 ‘일본 엔피오’가 진행한 한·일 공동 설문조사를 보면 12·28 합의와 관련해 일본 시민의 여론은 ‘평가한다’(47.9%)가 ‘평가하지 않는다’(28.1%)를 압도한다. 반면 12·28 합의 관련 한국갤럽의 9월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4%가 ‘일본이 사과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답했고, ‘재협상해야 한다’는 63%에 이른다. 이는 한국갤럽의 1월 조사 때 ‘재협상’ 의견(58%)보다 높아진 것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범여권까지 아우른 대선 주자들의 일치된 재협상·무효화 주장은, 박근혜 정부가 무시해온 민심에 따르려는 정치적 스탠스 조정의 측면이 강하다. 더구나 대선은 모든 정치세력이 생사를 건 전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선 주자들의 이런 견해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질 개연성이 높다.
예컨대 범여권 후보들은 “일본이 재협상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유승민)거나 “일본 정부가 요지부동이겠지만”(오세훈)이라면서도, “내가 결정할 위치에 있었다면 이런 합의는 안 했을 것”(유승민)이라며 “12·28 합의는 반드시 재협상돼야 한다”(남경필)는 견해를 밝혔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12·28 합의 직후 ‘합의 무효화 뒤 재협상’을 당론으로 정한 터라 야권 주자들의 재협상·무효화 견해는 놀랄 일이 아니다.
이제훈 기자, 도쿄/길윤형 특파원 nomad@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