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이 개최한 12.28 한일합의 강행 규탄 및 정의로운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끝난 뒤 김복동(왼쪽 둘째), 길원옥 할머니(맨 오른쪽)가 대학생들의 손을 잡고 이동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12·28 합의 이행을 강행하려는 한국·일본 정부와 이를 저지하고 ‘정의로운 문제 해결’을 추구하는 한국 시민사회의 힘겨루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31일 12·28 합의에 따라 한국 정부 주도로 발족한 ‘화해·치유재단’에 10억엔(108억원)을 송금했고, 위안부 피해 당사자인 김복동 할머니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시민사회 주도로 발족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정의기억재단)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촉구하며 “피해자들의 인권·명예 회복, 전시 성폭력 피해 재발 방지”를 위한 지속적 실천을 다짐했다. 12·28 합의 이행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하려는 한·일 정부와 이를 저지하려는 한국 시민사회의 ‘역사전쟁 2막’이 오른 셈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오후 “일본 정부가 10억엔을 화해·치유재단에 송금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24일 각의를 열어 화해·치유재단에 10억엔을 출연하기로 결정한 지 일주일 만이다. 일본 정부는 10억엔을, ‘국제기관 등 거출금’ 명목으로 예비비에서 조달했다. 일본 예산 항목에서 ‘거출금’은 배상금·보상금과 법적 성격이 다른, 정부개발원조(ODA) 등 주로 인도적 성격의 사업에 쓰인다.
일본 정부가 10억엔을 송금함에 따라, 정부는 화해·치유재단을 중심으로 피해 할머니들의 ‘수요’를 파악해 지원 사업에 나설 예정이다. 한·일 정부는 생존 피해자(46명)한테는 각 1억원, 사망 피해자(199명)한테는 각 2천만원 규모의 현금을 분할 지급하는 방식의 지원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그러나 정의기억재단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12·28 한·일 합의 강행 규탄 및 정의로운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선언문’을 통해 12·28 합의를 “역사를 지워버리려는 담합”으로 규정했다. 정의기억재단은 “명확한 범죄사실 인정, 공식 사죄, 법적 배상, 진상규명, 역사교육, 위령, 책임자 처벌이 포함된 법적 책임을 일본 정부가 완벽하게 이행해 ‘정의로운 해결’이 이뤄지는 그날까지 마땅히 해야 할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지은희 정의기억재단 이사장은 “21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재단 설립을 인가했다”며 “이제 본격적으로 할머니들을 지키며, 할머니들과 함께 싸우겠다”고 말했다. 지 이사장은 “화해·치유재단의 김태현 이사장은 지난 25년간 이 문제에 한번도 관심을 갖지 않은 사람”이라고 짚었다. 김복동(90) 할머니는 “1천억원을 줘도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며 “우리 뒤에는 국민이 있고 자라나는 젊은이들이 있으니 이들을 믿고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정의기억재단은 ‘선언문’을 통해 한국 정부엔 12·28 합의 무효화와 화해·치유재단 즉각 해산 등을, 일본 정부엔 법적 책임 인정 등을, 한·일 양국 정부엔 평화비(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를 훼손하려는 일체의 기도 즉각 중단 등을 촉구했다.
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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