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작년 10월 방미 때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 약속
위안부 합의에 오바마 축하…올 7월 사드 배치 전격 결정
미국의 중국 봉쇄전략 착착 진행, 정부의 균형외교 실종
위안부 합의에 오바마 축하…올 7월 사드 배치 전격 결정
미국의 중국 봉쇄전략 착착 진행, 정부의 균형외교 실종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한 (한국·일본 정부의 12·28) 합의를 이룬 것을 축하하고, 정의로운 결과를 얻어낸 박(근혜) 대통령의 용기와 비전을 높이 평가한다. 위안부 관련 합의 타결은 북 핵실험이라는 공동의 도전에 대한 한·미·일의 대응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 다음날인 1월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한 말이라고 청와대가 언론에 공개한 내용이다. 북 핵실험 대응 방안을 협의하는 전화 통화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12·28 합의를 “정의로운 결과”라며 “축하”한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얼핏 보기에 엉뚱하다. 하지만 이는, 박 대통령이 야당과 시민사회의 격한 반발에도 12·28 합의 이행을 강행하는 이유, 12·28 합의 이후 지금껏 동북아에서 벌어진 복잡다단한 일들의 외교·군사적 맥락을 이해할 열쇠다.
특히 12·28 합의가 “북 핵실험에 대한 한·미·일의 대응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미국 정부가 8일 발표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주한미군 배치 결정’이 12·28 합의의 연장선에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어서다.
12·28 합의는, 나라 안팎의 많은 전문가들이 거듭 지적하듯이, 한-일 양국의 ‘미청산 과거사 갈등’ 해소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직접적으론 사드 배치 논란, 더 넓게는 남중국해 분쟁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핵심은,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중국 견제를 강화하는 데 절실한 ‘한·미·일 3국 유사동맹’ 강화 전략이다. 12·28 합의는, 한·미·일 유사동맹 강화의 핵심 장애물인 한-일의 ‘역사인식 갈등’을 외교적 결탁으로 강제 해소하려는 것이다. 그 뒤에 ‘미국’이 있음을 오바마 대통령의 1월7일 전화 발언은 웅변한다.
실제 박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3년째 열리지 않던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개최를 ‘약속’했고, 11월2일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계기에 취임 이후 첫 한-일 정상회담을 열어 아베 신조 총리와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타결하기 위한 협의 가속화” 지시에 합의했다. 12·28 합의는 그렇게 이뤄졌다.
12·28 합의 직후, 때마침 이뤄진 북한의 4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연쇄 발사 등을 빌미로 미국은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을 재촉했다. 한-일 국방장관이 6월5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대화’(아시아안보대화) 계기에 만나 고위급 직통전화 개설 등 군사협력 강화에 뜻을 모았다. 6월28일엔 미 해군이 주관하는 ‘환태평양연합훈련’(림팩) 계기에 하와이 근해에서 한·미·일 3국이 미사일방어(MD) 훈련을 했다. 7월8일엔 전문가들이 동북아 미국 엠디망의 전진배치라 지적하는 ‘사드 주한미군 배치 결정’이 이뤄졌다. 7월12일엔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무력화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이 나왔다. 당연히 중국 정부는 사드와 남중국해 판결에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12·28 합의 전후의 이런 동북아 정세 변화는, 아베 정부가 ‘정부 차원의 위안부 강제동원 증거가 없다’는 답변서를 유엔에 제출하는 등 도발적 언행을 일삼는데도, 박근혜 정부가 이를 애써 외면하며 적극 대응하지 못한 이유를 알려준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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