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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위안부 재단, 20년전 ‘아시아여성기금’보다 되레 후퇴

등록 2016-07-28 22:22수정 2016-07-28 22:25

아시아기금, 일본 정부 주도로 설립
위안부 재단은 한국 정부 주도
국내 갈등 사안으로 변질시켜

재단 운영비는 한국 부담 ‘배보다 배꼽이…’
일, 소녀상 이전 압박 가능성 여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여성인권을 유린한 대표적 전시 국가범죄’로 국제사회에 공론화하는 데 앞장서온 피해 당사자들의 동의도 없이 정부가 출범을 강행한 ‘화해·치유 재단’은, 1995년 발족했다 실패한 일본 쪽의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보다 여러 모로 후퇴했다.

무엇보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한-일 사이 ‘미청산 과거사 갈등’에서 한국사회의 내부 갈등으로 퇴보한 게 가장 큰 문제다. 아시아여성기금은 가해자인 일본 정부 주도로 설립된 반면, 화해·치유 재단은 피해자 쪽인 한국 정부가 나서서 출범시켰다. 용서의 주체여야 할 피해 당사자들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가해자와 화해를 강요당하게 됐다. 아울러 박근혜 정부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더는 묻지 않기로 ‘외교적 약속’을 한 탓에 한국 내부 갈등으로 사안의 성격이 변질될 위기에 내몰렸다.

아시아여성기금은 위안부 문제를 역사에 남기는 자료 발굴 작업 등도 진행했다. 1993년 위안부 강제동원과 일본 정부의 직간접 관여를 인정·사죄한 ‘고노담화’에 따른 것이다. 반면 화해·치유 재단은 10억엔을 의료비·위로금 등 일시금으로 직접 나눠주는 ‘피해자 직접 수혜 사업’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 위안부 피해 사실을 신고한 238명(생존자 40명)한테 10억엔을 일괄분배하면 1인당 4277만원꼴이다. 정부가 ‘일시 특별지원금’으로 지급해온 1인당 4300만원보다 적다. 화해·치유 재단은 위안부 자료 발굴 사업은커녕, 12·28 합의 직후 정부가 피해자 할머니들한테 약속했던 기념관 건립 등을 추진할 자금도 없는 셈이다. 한국 정부가 부담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재단 운영 비용은 연간 4억~5억원으로 예상돼, 일본 쪽 출연금에 견줘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도 상당하다.

상당수의 피해자 할머니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시민사회는 12·28 합의는 물론 재단 출범에도 일관되게 반대해왔다. 피해자의 동의 없는 지원사업은 명분이 없다. 아시아여성기금도 피해자 대부분이 보상금 수령을 거부해 결국 실패했다.

그나마 한국 정부가 계획하는 재단의 사업 방향에도 일본 정부는 흔쾌히 동의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미래지향적’인 사업에 돈이 쓰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할머니들한테 지급되는 일시금은 최소화하고 위령비 건립 등 상징 사업에 돈이 사용되길 바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일시금의 성격이 ‘배상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명확한 조처를 취하라고 한국 쪽에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문제는 12·28 합의를 좌초시킬 수도 있는 ‘뜨거운 감자’다. 일본 정부는 일단 10억엔을 출연한 뒤 한국 정부가 소녀상을 이전하도록 거센 외교적 압박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소녀상을 이전하기 전에 자금을 출연하면 “도덕적으로 우위를 갖는 입장에 설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일본이 10억엔을 지급하고 나면, 12·28 합의를 이행하지 않는 쪽은 한국이라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소녀상 문제와 관련해) 정부로서는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해나가겠다”는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의 28일 정례브리핑 발언은 예사롭지 않다. 표현만 보면, 12·28 합의 내용을 재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12·28 합의 이후 소녀상 철거·이전 논란이 불거졌을 때마다 정부가 “소녀상 문제는 기본적으로 민간의 일로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거듭 밝혀온 사실을 고려할 때, 미묘한 ‘온도차’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김진철 이제훈 기자, 도쿄/길윤형 특파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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