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15개 역사학 연구단체들이 30일 도쿄 중의원 제1의원회관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구보 도루 역사학연구회 위원장(오른쪽)이 성명을 낭독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피해 할머니 반대 무시한 채
설립 밀어붙이기 나서
사업계획에 동의 않는 일본
7월 참의원 선거 뒤로 미루려는 듯
소녀상 이전 다시 거론 가능성
일 15개 연구단체, 12·28합의 비판
설립 밀어붙이기 나서
사업계획에 동의 않는 일본
7월 참의원 선거 뒤로 미루려는 듯
소녀상 이전 다시 거론 가능성
일 15개 연구단체, 12·28합의 비판
박근혜 정부가 한국-일본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12·28 합의 이행의 핵심 축인 위안부 지원재단 설립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31일 발족시키기로 해, 12·28 합의를 둘러싼 국내 및 한-일 간 논란이 다시 격해질 전망이다.
우선 12·28 합의 무효화·재협상을 요구해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의 반발과 20대 국회 의석의 과반을 차지한 야권의 비판·견제에 따른 갈등이 불가피하다. 한-일 간엔 재단의 사업 내용을 두고 갈등이 내연할 소지가 크고, 무엇보다 재단 설립 전후로 일본 쪽에서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소녀상) 철거 문제를 다시 들고나올 가능성이 크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최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 관방부장관은 4월27일 정례브리핑에서 ‘소녀상 철거도 12·28 합의에 포함된다’고 밝힌 바 있다.
12·28 합의 이행을 뒤흔들 균열선은 도처에 널려 있다. 우선 양국 정부조차 재단의 구체적 사업 내용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일단 일본 정부가 출연하는 10억엔만으로 위안부 피해자 개별 지원을 포함한 재단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일본 정부 예산으로 책임을 이행한다는 합의의 취지를 살리려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의 이런 사업계획안에 대한 동의를 미루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7월에 일본 참의원 선거가 예정돼 있는데 아베 정부가 그걸 의식해 일부러 미루는 것 같다”고 짚었다. 한-일 정부가 10억엔의 용처에 합의하지 않으면 집행이 사실상 불가능해, 일본 정부의 이런 태도는 12·28 합의 이행 여부의 중대한 변수다.
박근혜 정부가 ‘일본 정부 예산 10억엔’을 강조하는 것을 두고도 ‘형식논리적 말장난’이라는 비판이 많다. 1995년 처음 조성됐으나 위안부 피해 당사자들의 거센 반발로 2002년 중단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과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어서다. 실제 아시아여성기금 집행액의 70%(전체 17억8600만엔 중 12억3000만엔) 남짓이 일본 정부 예산에서 나왔다.
‘오월동주’ 관계인 한-일 정부의 이견보다 근본적인 균열선은 한·일 시민사회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거센 반발이다. 위안부 피해 당사자인 김복동·길원옥·이용수 할머니 등과 정대협을 비롯한 한국 시민사회 쪽은 한-일 정부 주도의 재단 설립에 반대하며, ‘정의로운 피해자 명예·인권 회복’을 목적으로 한 ‘정의와 기억재단’ 설립에 필요한 ‘100억원 민간 모금’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8~20일 서울에서 열린 ‘제14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는 “12·28 합의는 지난 25년간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피해자들과 시민사회의 열망을 짓밟는 중대한 도전으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일본 역사학계를 대표하는 15개 연구단체가 오랜 논의 끝에 12·28 합의를 정면 비판하는 ‘연대 성명’을 30일 발표한 사실도 일본 사회의 여론 향배와 관련해 주목할 대목이다. 이들은 성명에서 “당사자 방치”, “논의 봉쇄 수법”, “위안부 제도의 본질은 ‘성노예’” 등 강도 높은 표현을 써서 비판하며 “교육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전하라고 다시 한번 요구한다”고 일본 정부에 요구했다.
이제훈 기자, 도쿄/길윤형 특파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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