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2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하기에 앞서 악수를 하려고 서로 손을 내밀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아시아여성기금·고노담화와 다른 점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 뒤 발표된 양국 정부의 합의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힌 부분이다. 일본 쪽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실관계와 정부의 책임을 어떤 방식으로 인정할지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초미의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이날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의 책임을 통감한다”며 “아베 내각 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아시아여성기금(1995~2007)을 통한 ‘보상 사업’에서 진행한 일본 총리의 편지 속 문장과 비교했을 때, 우선 주목되는 것은 ‘위안부 문제’라고 적시한 대목이다. 일본 언론 보도나 정치인들 발언에선 ‘이른바 종군위안부’라는 표현으로 군 위안부의 실재성을 모호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아시아여성기금 당시 편지나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도 마찬가지였다.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 8월 종전 70주년 기념 담화에서 ‘위안부’라는 단어를 아예 쓰지 않고, “전시하에 많은 여성들의 존엄과 명예가 깊은 상처를 입은 과거”라고만 표현한 바 있다.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는 표현은 그동안 ‘도의적 책임’이라고 해왔던 일본의 입장과 ‘법적 책임’을 누차 언급했던 한국의 요구가 절충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입장 변화에 초점을 둔다면 진일보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한국으로서는 결과적으로 한발 물러섰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11년 3월 일본 쪽은 △총리 사죄 △정부 예산으로 피해자들에게 인도적 조치(의료·간병비 지급) △주한 일본대사의 편지 전달 등을 뼈대로 한 ‘사사에 안’(사사에 겐이치로 당시 외무차관 이름을 딴 것)을 제안했다가 한국 정부에 거절당했다. 같은 해 10월 인도적 조치를 ‘사죄금’으로 명시하는 등 모호하게나마 책임을 시사하는 쪽으로 조정됐던 ‘사이토 안’(사이토 쓰요시 한일평화의원회의 당시 일본 쪽 대표 이름을 딴 것)은 일본 정부의 반대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일본 쪽이 고노 담화 때부터 인정한 ‘군의 관여’를 재확인하고,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대한 상처’를 언급하면서 ‘일본 총리로서의 사죄’를 밝히는 등 많은 부분은 기존 입장과 다르지 않다.
피해자 지원 사업을 진행할 재단을 한국 정부가 설립하고 일본 예산으로 운영한다는 방식은 기존에 나온 바 없는 새로운 방안이다. 일본 쪽은 10억엔을 출자하겠다고 밝혔지만, 재단 운영 비용을 고려한다면 온전한 피해자 지원금은 줄어들 수도 있다. 재단 운영은 한국 정부가 하되 예산 편성과 결산 권한을 일본 정부가 갖는다면, 갈등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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