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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열강 다툼에 휩쓸리지 않을 ‘외교 백년대계’ 세울 때

등록 2015-08-16 21:30수정 2015-08-17 10:09

⑥ ‘광복100돌 국가비전’ 준비하자
다양한 다자협의체 구성해 동아시아 공존 틀 짜기 나서야
동아시아와 태평양이 국제정치의 거대한 체스판이 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열강은 패권과 국익을 걸고 저마다 수십년을 내다보는 장기적 구상 아래 강대국 외교의 포석을 두고 있다. 하지만 돌고래 강중국으로 부상했다는 한국의 백년대계는 찾아볼 길 없다. 이대로면 동아시아 지정학의 판짜기는 대형 고래들의 전유물로 남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임기응변을 넘어 돌고래 한국의 담대하고도 명민한 활로 모색이 절실한 시점이다.

미국과 중국은 동아시아 패권을 놓고 수성과 공성의 국가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신흥 강국 중국은 시진핑 주석 체제 출범과 함께 중화민족의 부흥 실현을 목표로 하는 ‘중국몽’을 국가비전으로 제시했다. 이를 통해 “중국은 ‘전면적 소강(샤오캉)사회 건설’ 시한인 2020년까지 동아시아 지역강국의 입지를 구축한다는 전략 목표를 설정”(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하고 있다. 나아가 중국은 건국 100주년인 2049년을 대동사회 건설과 중화부흥의 원년으로 만든다는 장기계획을 세우고 있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 재균형’을 동아시아 지역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부상하는 중국 견제가 목적이다. 일본 역시 중국 견제 목표를 미국과 공유한 위에서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화’라는 장기 국가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도 ‘신동방 정책’을 내걸고 동아시아의 한 축으로 서려는 야심을 번뜩이고 있다.

주변 열강이 상호 각축과 협력을 씨줄, 날줄로 엮어 장기적 외교 책략을 구사하는 사이, 한국 외교의 대전략은 존재감을 잃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신뢰프로세스→동북아평화협력구상→유라시아 이니셔티브로 이어지는 외교 전략을 제시했다. 그러나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5·24 대북제재에 집착해 남북관계를 풀지 못했고,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은 남북, 한-일 관계 냉각으로 제자리걸음이며,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중국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구상, 일대일로 건설에 자리를 내줬다”(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남북관계 실패와 한-미 동맹에 대한 일방적 의존, 원리주의적 태도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층 없는 2층집은 지을 수 없듯이, 북한의 동의와 참여가 없으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애당초 추진할 수가 없다”고 짚었다.


열강 다툼에 휩쓸리지 않을 ‘외교 백년대계’ 세울 때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핵심이 한반도 종단 철도와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연계해 대륙과 해양의 연결로를 만든다는 것인데, 북한을 끌어들이지 않고서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 눈치를 보느라 중국 승전 70돌 열병식 참석을 저울질하면서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의 진전을 바라는 것 또한 ‘나무에서 물고기 찾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2005년 북핵 6자회담 이끌어
‘안보협의체 합의’ 이룬 경험 중요
다자 협력틀 조성해
캐스팅보트 쥐어야

결국 한국의 선택은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주변 열강 중심의 강대국 외교를 극복 대상으로 삼아 새롭게 추구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북관계를 중심으로 동북아와 유라시아로 협력의 동심원을 넓혀가는 동시에, 강대국 간 대립 구도를 넘어서는 공존의 틀을 짜자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외교 전략의 토대를 이룬다. 북한이 가장 거부감을 느끼는 현안들에 대해, 더 큰 능력과 자원을 가진 한국이 과감하게 북의 우려를 풀고 신뢰를 쌓는 돌파 전략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전단 살포 중단에서 시작해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 경제협력의 접점들을 되살려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에 기반해 철도·해운 연결이 다시 성공적으로 추진될 경우, 이는 러시아와 중국, 몽골, 카자흐스탄 등을 포괄하는 유라시아 차원의 협력 구도 구축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

북핵 6자회담의 재개는 핵 문제 해결과 동북아 집단안보협력 구상의 연계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10년 전인 2005년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선 ‘6자는 동북아시아에서의 안보협력 증진을 위한 방안과 수단을 모색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6월22일 제주평화포럼 기조연설에서 “6자회담은 북핵 문제 해결 이후에도 동북아 평화안보협력을 위한 다자간 협의체로 발전시켜 가야 한다”며 “이 협의체는 동북아에서 군비를 통제하고 분쟁을 중재하는 항구적인 다자안보협력체로 기능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 바 있다. 물론 비핵화를 둘러싼 상황과 조건들이 크게 변했기 때문에 북핵 해결을 위해서는 또 다른 지난한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한국이 6자회담을 주도해 비핵화의 틀거리를 짜고, 미·중·일·러 등 강대국들을 포괄하는 지역 다자안보협의체로 발전시킨다는 합의를 이끌어낸 경험은 소중하게 반추될 필요가 있다.

이런 경험은 동북아를 넘어 동아시아 전역의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미-중-일 복합 대립 구도에서 한국이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외교적 궁지에 몰리지 않으려면, 다종다양한 다자협의체의 구성과 활성화를 한국이 주도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중-일 영토·과거사 갈등으로 중단 상태인 한-중-일 정상회의의 재개를 한국이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충돌하는 중-일 사이에서 한국이 주도적 조정자로 나서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재성 서울대 교수는 “다양한 다자협력 틀을 통해 미·일·중이 대결 대신 공통의 이익을 찾을 수 있게 되면, 열강이 서로 대립하면서 한국에 선택을 강요할 이유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다자협력 틀이 가동될 때 강대국의 일방적 영향력이 관철될 소지도 양자관계에서보다 줄어들 수 있다. 다자협력 틀이 열릴 경우 강대국들 사이에서 작은 나라들이 일종의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가능성이 커지는데다, 작은 나라들이 연대를 통해 더 큰 주도권을 쥐게 될 기회 또한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자협의 틀은 동아시아를 조금은 더 평평한 곳으로 만들 가능성을 높인다. 또 이를 통해 거대한 고래들 사이에서 돌고래 한국 외교의 위상과 주도권을 키울 수 있게 된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장은 “장기 전략을 갖고 움직이는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의 대응책은 보이지 않는다”며 “2045년 광복 100주년에는 어떤 국가가 돼 있을지에 관한 뚜렷한 비전과 그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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