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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점령군 이어 동맹군에 짓눌린 ‘식민지 1번지’ 용산

등록 2015-08-04 21:42수정 2015-08-05 15:07

[광복·분단 70년 - 다시 쓰는 징비]
용산·평택 통해 본 한-미 동맹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광복·분단 70년, 한국의 운명은 미국과 미군, 곧 ‘한-미 동맹’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전개돼왔다. 한국의 선택과 진로를 규정해온 힘으로서의 ‘한-미 동맹’의 의미를 세가지 질문을 통해 들여다본다.

첫째, 이곳은 어디일까? 임진왜란 때 왜군이, 병자호란과 임오군란 때 청군이 머물렀다. 일제강점기 때 다시 일본군 조선사령부가 자리를 잡았고, 광복 이래 현재는 미군이 주둔한다.

서울 한복판 용산이 답이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1905년 이래 광복·분단 70돌인 지금껏 용산은 외국군 주둔지의 운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나라를 빼앗은 점령군(일본군), 공동의 안보 위협에 맞선 동맹군(미군)이라는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 하지만 각반 찬 일본 헌병대의 총칼 때문이건, 동맹에 바친 자발적인 대가건 철조망 둘러쳐진 용산기지 차단벽 앞에서 한국의 주권은 지속적으로 전부 또는 일부 정지해왔다. 리처드 스틸웰 전 주한미군사령관이 “지구상에서 가장 경이로운 주권의 양도”라고 표현한 미군으로의 작전통제권 이양이 대표적이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소파)의 주한미군에 대한 특수 지위 인정도 동일한 맥락이다. ‘내 고향 식민지 1번지’(김응교 ‘도쿄 타워’)라는 시인의 과감한 ‘용산’ 호명은 이 때문일 것이다.

둘째, 한국이 주권의 제약을 무릅쓰고 미군 주둔으로 표상되는 한-미 동맹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 용산 외국군 주둔지 점철
평택기지는 ‘중국 견제’ 뚜렷해져
미-중 대결 편입땐 한국 국익 훼손

북 막으려 방위조약 맺었지만
미, 북핵 겨냥 ‘북폭’ 추진해 갈등
소파 불평등 등 종속성도 논란

리처드 스틸웰 전 주한미군사령관
“가장 경이로운 주권 양도”
작전통제권 미군 이양 성격 꼬집어

먼저, 미군 주둔과 한-미 동맹의 역사엔 8년여의 시간 차가 있다. 미군은 1945년 9월9일 서울을 ‘점령’(미군 포고령 1호) 진주했다. 미군은 이때 용산의 일본군 조선사령부 기지를 접수해 사용했다. 미군은 38선 이남 지역에 3년여 군정을 실시한 뒤, 1948년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된 이듬해 6월 500여명의 군사고문단을 남기고 철군한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군은 유엔군의 이름을 달고 다시 한반도에 상륙했다. 전쟁 막바지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 추진에 반대했으나, 미국은 아랑곳없이 휴전 회담을 강행했다. 결국 한국은 휴전 조건으로 북한의 재침에 대비한 강력한 군사동맹을 요구했고, 우여곡절 끝에 미국은 한국에 방위조약 체결을 약속했다.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된 뒤 10월1일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정식 체결됐다.(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은 분단시대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억지력 확보 차원에서, 한국 방위에 대한 조약상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미국의 팔을 잡아끌어 조약을 체결했던 셈이다. 미국은 ‘육·해·공군을 한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 조약 4조에 따라 미군의 한국 주둔권을 보장받았다.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의 미군 이양이 상호방위조약 체결에 훨씬 앞서 이뤄졌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14일 이미 이승만 대통령은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서한을 보내 작전지휘의 일원화를 위해 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이양한다고 밝혔다. 이후 상호방위조약에 따른 ‘한-미 합의의사록’도 유엔군사령관이 계속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한다고 재확인했다.

셋째, 한-미 동맹은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나?

가장 논쟁적인 물음이다. 한-미 동맹의 상태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동맹을 지금대로 유지하느냐, 바꿔서 유지하느냐, 폐기하느냐의 선택지가 갈리기 때문이다.

보수층에서는 한-미 동맹이 한국의 안보와 번영을 지켜주는 보루라는 인식이 강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최근 미국을 방문해 한국전 참전 용사들에게 큰절을 하고 “미국은 대체 불가능한 동맹”, “중국보다 미국”이라고 한-미 동맹을 직설 찬양한 데서 이런 인식이 잘 드러난다. 보수적 전문가들도 대체로 한-미 동맹이 성공적으로 작동해왔다고 본다.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은 “한마디로 한-미 동맹은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한국의 안보를 절대적으로 담보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 보장 체제였다”(‘한-미 동맹의 변화와 한국 안보 과제’)고 잘라 말했다.

한-미 동맹이 대체 불가능한 안전보장 체제라는 판단의 준거로는 한·미 양국이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는 체제라는 점과, 다른 주변국들과 달리 미국은 동아시아에 영토적 야심이 없기에 국가 이해의 충돌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 등이 꼽힌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일본만 해도 국수주의적 면모가 있고, 중국은 체제 자체가 다르지만, 한국과 미국은 자유시장체제의 가치를 공유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미 동맹의 역사적 성과나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시대 변화에 따른 동맹의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미 동맹이 북한의 위협을 억제함으로써 전쟁 방지와 경제 성장 등에 기여했다는 총론적 평가에는 동의를 보내면서도, 최근 한-미 동맹의 작동 과정에서 양국 간 국가이익의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에도 주목하는 입장이다. 작전통제권을 쥔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저지를 목적으로 일방적 ‘북폭’을 추진하면서 빚어진 갈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은 대량파괴무기(WMD) 확산 차단에 방점을 찍는 반면, 실제 전쟁터가 될 수 있는 한국은 전쟁 방지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기에 이런 갈등은 언제든지 현실화할 수 있다. 주한미군의 탄저균 무단 반입 실험으로 드러난 소파 불공정 조항 등의 종속적 성격 또한 풀어야 할 과제로 제기된다.

한-미 동맹과 관련해 가장 뜨거운 쟁점은 동맹의 성격 변화와 관련된 것이다. 조지 부시 행정부 들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추진하면서 불붙은 논란이다.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을 대북 방어용 ‘붙박이’ 군대에서 중동과 동아시아 분쟁 등에 자유롭게 옮겨다닐 수 있는 신속기동군으로 전환함을 의미했다. 이를 위해 미국은 휴전선 인근의 주한 미2사단과 용산기지의 미군 지휘부 전체를 경기도 평택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했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은 “당시 미국은 이라크전으로의 주한미군 투입과, 떠오르는 중국 견제를 위한 동아시아 지역으로의 전력 투사가 모두 용이하다고 봐 평택 이전을 추진했다”고 분석했다. 당시 참여정부는 “서울 한복판에 자리잡은 용산기지를 환수한다는 상징성에 큰 의미를 두고 기지 이전에 합의했다”(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는 평가가 나온다. 장 선임연구원은 기지 이전 추진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회의(NSC) 사무처 행정관을 지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분명히 하면서 주한미군 또한 중국 견제용의 성격을 점점 뚜렷이 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에 따라 한-미 동맹이 미-중 대결 구도에 편입될 경우, 유일 동맹국인 미국과 최대 교역국인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평택은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대규모 미군기지”라며 “사드 배치 논란에서 보듯 주한미군의 운용도 갈수록 대북 억지보다는 중국 견제 쪽으로 맞춰지고 있다”고 봤다. 이를 두고는 “오키나와나 괌 등에 중국 견제용 미군기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평택기지 이전을 꼭 중국을 겨냥한 조처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반론도 나온다. 그러나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중국이 적대세력으로 돌아섰을 때를 대비해 한국과 일본 등을 이를 막아낼 전쟁기지로 삼는다는 것이 미국의 ‘플랜B 전략’임은 분명해 보인다”며 “일본은 이미 여기에 편승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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