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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북-미 친서’ 27편 공개…김정은은 초조했고 트럼프는 느긋했다

등록 2022-10-01 21:23수정 2022-10-02 10:11

[한겨레S] 정욱식의 찐 안보
‘김정은-트럼프 친서’ 27편 공개 (상)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AP 연합뉴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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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향후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각하와 직접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길 희망하며, 지금 문 대통령이 우리의 문제에 대해 표출하고 있는 과도한 관심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현직 주미 특파원의 모임인 한미클럽이 지난 25일 <한미저널>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4월부터 2019년 8월까지 교환한 27통의 친서 전문을 공개했다. 인용한 부분은 2018년 9월21일자 김정은의 친서 가운데 일부이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평양 남북정상회담(9월18~20일) 종료 하루 뒤 나온 내용이라 더 주목을 끈다. 당시 북한은 문재인 정부 방북단에 “최대의 환대”를 베풀었다. 또 9월19일 채택된 평양공동선언에는 “남과 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함께 긴밀히 협력해나가기로 하였다”는 내용도 담겼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왜 트럼프에게 문 전 대통령을 배제하자고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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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진짜 속내 궁금했던 김 위원장

결론부터 말하면 김 위원장은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와 나눈 대화와 그 이후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을 비롯한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료들의 발언, 그리고 북-미 대화 중재를 자처한 문재인 정부의 말이 너무 다르다고 인식했을 공산이 매우 크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트럼프와 다시 만나 그의 의중을 직접 확인하고 담판을 짓고 싶었던 것이다. 이는 김 위원장이 트럼프의 최측근이자 북-미 회담 실무총책이었던 폼페이오도 배제하려고 했던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폼페이오의 방북이 취소된 직후인 2018년 9월6일자 친서에서 “각하의 의중을 충실히 대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어려운 폼페이오 장관과 우리 양측을 갈라놓는 사안에 대해 설전을 벌이기보다는, 탁월한 정치적 감각을 타고난 각하를 직접 만나 비핵화를 포함한 중요 현안들에 관해 심층적으로 의견을 교환함이 더 건설적일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헷갈려했던 문제들은 뭐였을까? 먼저 종전선언이다. 종전선언은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에도 담겼고 트럼프도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바였다. 그래서 북한은 ‘디데이’를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27일로 잡고 7월6일 방북한 폼페이오와 이를 논의하려고 했었다. 북한은 미국인 억류자 송환과 미군 유해 발굴 협조가 이를 위한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런데 폼페이오는 종전선언은 뒷전으로 미루고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되는 비핵화’(FFVD)부터 먼저 논의하자고 북한을 압박했다. 실망한 북한은 “순진했다”고 자책하면서도 기대를 완전히 접지는 않았다. 김정은이 7월30일자 친서에서 “기대했던 종전선언이 없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이른 시일 내에 분명 빛을 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적은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종전선언을 둘러싼 한-미 간의 엇박자는 8월부터 수면 위로 드러났다. 미국의 외교안보 고위 관료들은 종전선언의 선행 조건으로 핵신고를 비롯한 북핵 문제의 상당한 진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종전선언이 유엔사와 주한미군의 지위, 그리고 한미연합방위태세에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트럼프가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발표하고 주한미군 철수도 시사하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에 대해 문 전 대통령은 9월20일 귀국 보고에서 종전선언은 비핵화에 추동력을 부여하기 위한 정치적 선언일 뿐, 주한미군은 물론이고 유엔사의 지위에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혼란을 느꼈을 법한 김 위원장은 트럼프의 의중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셈이다.

다음으론 대북 제재 문제이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북한이 미국에 가장 기대했던 것은 단계적 비핵화 조치에 부응하는 제재 완화였다. 북한은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과 트럼프 행정부가 말한 “동시적·병행적 이행”에 당연히 제재 완화도 포함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7월6일 방북한 폼페이오가 제재 해결은 비핵화가 완료될 때 고려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동시적·병행적 이행의 예외”라고 못박은 것이다.

낙담한 김 위원장은 공개적으로 “강도적인”, “악랄한” 등의 수식어를 붙여 대북 제재를 맹비난하면서 미국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문재인 정부도 한편으로는 단계적 비핵화에 상응하는 제재 완화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에 과감한 비핵화 조치도 권고했다. 이에 김정은은 9월6일자 친서에서 회심의 제안을 내놓았다. 이에 앞서 트럼프는 7월3일자 친서에서 “미사일 엔진 시험장에 기술 전문가들의 방문을 허용하는 데 동의해줄 것을 희망한다”며, “이게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고 썼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친서를 통해 이를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몇가지 “유의미한” 입장도 제시했다. “핵무기 연구소의 전면 가동과 핵물질 생산시설의 불가역적인 폐쇄”에도 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우리가 기울이는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줄 우리 주변 환경의 변화를, 약간만이라도, 느낄 필요가 있다”며 미국의 상응조치를 간절히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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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한 트럼프, 쫓기는 김정은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냉담했다. 폼페이오 등 고위 관료들은 ‘선 비핵화, 후 제재 해결’이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수시로 친서를 보냈던 트럼프는 4개월 가까이 답장마저 보내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제재 완화를 간절히 원할수록 트럼프는 이를 약점으로 간주한 셈이다. 문재인 정부의 중재도 이렇다 할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북한은 남한으로부터는 유의미한 비핵화 조치가 제재 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조언을 들었지만, 정작 열쇠를 쥐고 있던 미국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북한은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이 달라 혼란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김정은은 문재인 정부의 중재에 의구심을 품고 트럼프의 의중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간절함은 9월21일자 친서의 다른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김정은은 9월6일자 친서에서 폼페이오를 믿을 수 없다며 배제를 요청했다. 하지만 답장을 받지 못한 김정은은 보름 후 다시 보낸 편지에서 “이른 시일 내에 폼페이오를 평양으로 다시 보내주시길 바란다”고 적었다. 김정은은 8월 폼페이오의 방북 무산과 그를 배제하자는 요청이 트럼프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여긴 것이다. 느긋해진 트럼프와 초조해진 김정은의 ‘케미’는 이렇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정욱식 _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를 전공했다. 조지워싱턴대 방문학자로 한-미 동맹과 북핵 문제를 연구했다.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핵과 인간>,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등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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