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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남북-북미관계, ‘2018년 판문점 선언’ 이전으로 돌아가나

등록 2022-05-22 17:49수정 2022-05-23 02:45

21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판문점 선언 등 언급 빠지고
대북 군사대응 방안만 강조
북 대화 나설 이유 사라져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 오후 경기 오산 미 공군기지의 항공우주작전본부(KAOC) 내 작전조정실을 함께 방문해 임무 수행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 오후 경기 오산 미 공군기지의 항공우주작전본부(KAOC) 내 작전조정실을 함께 방문해 임무 수행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1일 발표된 한·미 정상 공동성명은 꼭 1년 전인 지난해 5월21일 워싱턴에서 발표된 한·미 정상 공동성명과 몇가지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지난해 성명에 포함됐던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대한 언급이 이번엔 빠진 게 대표적이다. 대신 확장억제·연합방위태세 강화, 전략자산 전개와 같이 그동안 북쪽이 강력 반발해온 사안이 도드라지게 강조됐다. 대화 국면이 조성된 2018년 이전으로 한반도 정세가 빠르게 되돌아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5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공동성명에서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의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는 공동의 믿음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비핵화를 대화와 협상의 전제가 아닌 최종 결과로 삼겠다는 기존 합의를 발판 삼아 후속 협상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북쪽에 전한 셈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공동성명에선 이러한 내용은 빠지고 △북 위협에 대한 인식 공유 △무력시위 규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이행·협상 복귀 촉구 △국제사회 공조가 언급됐다. 여기에 △핵·재래식 및 미사일 방어 능력을 포함한 확장억제 △연합연습 및 훈련 범위·규모 확대 △전략자산 적시 전개 등 북의 ‘위협’에 맞설 군사적 대응 방안을 세밀하게 나열했다. 이번에도 “대화의 길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했지만, 북한이 이른바 ‘대북 적대시 정책’의 표식으로 지목해온 내용을 강조한 것이다. 북으로선 대화에 나설 명분도, 이유도 사라진 꼴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북한에 냉정한 태도를 숨기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22일 오전 숙소인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한 기자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느냐”고 묻자 “안녕하세요. 이상, 끝(Hello. Period)”이라고 말했다.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뜻이 없음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전날 한-미 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에서도 ‘북한과 만나기 위한 전제조건’에 대한 질문에 “김 위원장이 만남에 대해 진지하고 진실됐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전략적 인내’를 떠올리게 한다.

‘전략적 인내’는 대북 제재와 중국 역할론을 두 축으로 삼아, 일정 수위의 압박을 유지하면서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겠다는 구상이었다. 오바마 행정부 8년 동안 북한은 4차례 핵실험을 포함해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고도를 끌어올렸다. 오바마 행정부는 5차례에 걸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로 맞받았을 뿐, 이를 막지 못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 100일만인 지난해 4월 말 대북정책의 얼개를 발표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식) 일괄타결에 초점을 두지 않을 것이며, 전략적 인내에 의존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당시 미 정부 고위 당국자는 “우리의 접근법은 싱가포르 및 그 이전의 합의들에 기초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새로운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이룰 수 있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그 기초는 ‘남북관계 개선 →군사적 긴장완화 →종전선언·평화협정 체결 →한반도 비핵화’ 과정을 제시한 4·27 판문점 선언이었다.

하지만 미국 언론조차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두고, 바이든 대통령이 ‘전략적 인내’와 다를 게 없으며, 한·미 두 지도자가 전임자들로부터 방향을 바꿨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 준비에 참여했던 외교안보 소식통은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은 각각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성과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도,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정부도 이를 높게 평가할 국내 정치적 동기가 없다”며 “미-중, 미-러 관계 악화 속에 북쪽이 추가 핵실험 등까지 나아간다면, 2018년 이전보다 위태로운 정세가 만들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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