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응 주아프간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이 무사히 카불 공항을 벗어나는 아프간 조력자를 껴안으며 눈물 짓고 있다. 외교부 제공
아프가니스탄에서 길게는 7~8년씩 한국 정부를 도와 일했던 현지인과 그 가족 391명이 무사히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까지 전쟁 영화 속 탈출 작전 같은 긴박한 상황이 이어졌다.
애초 한국행을 희망했던 아프간인은 427명. 한국 정부는 8월부터 이들에 대한 대피 계획을 세웠지만, 정부의 판단보다 아프간 정세는 급격히 악화됐다. 24일 예정했던 인원 가운데 26명만 카불을 빠져나왔다는 소식은 작전 실패에 대한 불안감을 키웠다. 하지만, 25일 이달 세상에 나온 갓난아기 3명과 영유아 100여명을 포함해 총 391명이 무사히 카불을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국방부는 이번 이송 작전명에 ‘미라클’(miracle·기적)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말 그대로 ‘카불의 기적’이 이뤄진 것이다.
25일 외교부 설명에 따르면 365명은 24일 버스 6대에 나눠 타고 순차적으로 카불 공항에 도착했다. 전날 입성한 26명은 일찌감치 탈레반의 검문검색과 공항 주변 인파를 뚫고 공항 주변에 머무르다 걸어 들어온 이들이었다. 숫자가 드러내듯 개별적으로 카불 공항에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다행히 22일 미국 정부가 우방국들에 제안한 ‘버스 모델’이 가시화했고, 정부는 이튿날 미국 정부와 탈레반 간 합의로 공항에 진입이 가능한 버스를 섭외하는 데 성공했다. 탈레반이 카불에 진입한 직후 카타르로 철수했다가 아프간인들의 국내 이송을 지원하기 위해 22일 카불로 되돌아온 주아프간 한국대사관 직원들의 발 빠른 조처가 큰 역할을 했다.
한국과 오랜 기간 함께 일해 익숙했기에 가능했던 ‘한국식 피라미드 연락망’도 이들의 탈출 과정에서 빛을 발했다. 대사관과 국제협력재단(KOICA), 바그람 한국병원 등 근무지별로 대표자를 뽑아 신속히 연락이 이뤄졌다. 이들은 집결 장소와 시간을 공유해 정확히 집결했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연락망이 굉장히 끈끈하고 탄탄”한 덕에 “굉장히 효율적으로 움직여 원하는 사람은 100% 가깝게 집결했고 오늘 새벽 무사히 들어왔다”고 했다. 하지만, 버스에 나눠 타고도 공항에 진입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신생아들의 건강에 이상이 생길까봐 대사관 직원들은 마음을 놓지 못했다. 다행히 공항 주변 상황은 총소리가 난무했던 15~17일 대사관 직원들 철수 때보다 안정된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한국 시간 오후 6시께 무사히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도착했다.
애초 한국행을 희망했던 427명 가운데 36명은 개인 사정으로 아프간에 남거나 제3국 이송을 택했다. 그에 따라 26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는 이들은 대사관(21가구 81명), 병원(35가구 199명), 직업훈련원(14가구 74명), 차리카기지 지방재건팀 관련자(5가구 33명), 코이카(1가구 4명) 근무자 등 391명으로 정해졌다. 이들은 25일 300여명을 태울 수 있는 대형 군수송기 K-330(공중급유기)와 C-130을 타고 26일 오전과 오후에 각각 도착하게 된다. 국방부 당국자는 수송 작전에 군 인력은 60~70명이 투입됐다고 설명했다.
외교부는 일단 이들에게 3개월 단기비자를 지급한 뒤 장기체류비자로 일괄 변경 조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의 신원을 둘러싼 일각의 우려에 대해선 “여러 차례 검토 및 확인을 마쳤다”고 밝혔다. 이들과 함께 근무했던 공덕수 전 바그람 직업훈련원 원장은 “근래 바그람 미군기지에 있던 옛 한국병원과 직업훈련원 건물이 탈레반에 의해 폭파됐다”면서 “탈레반 통치 아래에 한국병원 직원과 훈련원 조력자들을 그냥 두면 탈레반에 의해 처형되는 게 거의 확실시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들을) 구출하는 것은 인도주의 측면뿐 아니라 한국은 결코 친구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한국 정부와 국민의 신의와 의지를 국제사회에 다시 인식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국민들의 이해를 당부했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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