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오전 평화나비 네트워크를 비롯한 대학생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근처 소녀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15 한-일 합의 즉각폐기와 문재인 정 부의 투트랙 방침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15년 ‘12·28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로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의 남은 이사들이 지난 26일자로 모두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이사진이 사퇴했다고 해서 재단이 바로 해산되는 것은 아니다. 정관상 재단을 해산하려면 이사회 의결과 함께 소관 부처인 여성가족부 장관의 승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사들의 사임에 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화해·치유재단 사무처는 정관상 임원의 임면을 이사회 의결을 통해 정하게 돼 있다. 이사의 사직도 이사회를 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소관 부처인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이사회 의결 사항은 ‘면직’일 뿐 사직과 다르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재단법인의 이사 사직은 사의가 재단에 도달한 시점에 효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이사진의 사의 표명으로 현재 재단엔 정관상 당연직 이사인 사무처장과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 3명만 남은 상태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미 재단의 이사 수는 정관상 필요한 최소 정수(5명)에 미달하게 된다. 새로 이사를 선임하거나, 해산 등의 절차에 필요하다면 상법 규정에 따라 사임한 이사를 불러들여 퇴임이사로서 의결권을 행사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사 사임에 관한 법적 해석이 어떻게 되든 이사들의 사임에 따라 화해·치유재단이 더 이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 회복, 상처 치유”라는 애초 목적사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재단의 성격을 바꿀지, 아니면 아예 해산을 할지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의 열쇠는 정부가 쥐고 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29일 “이사진의 사의 표명과는 관계없이, 재단의 거취에 대해선 아직까지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 전날 대통령의 메시지를 두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바람직한 방향을 관련 부처들이 논의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12·28 합의’ 7개월 뒤인 지난해 7월 발족한 화해·치유재단은 지난 5월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기능 정지 상태에 빠져들었다.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재단 설립의 근거인 12·28 합의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이다. 지난 27일 여성가족부가 공개한 내용을 보면, 재단은 위안부 피해 생존자 47명 중 34명에게 1억원씩을 지급했고, 사망 피해자(유족) 199명 중 58명에게 2천만원씩을 지급했다. 생존자 2명, 사망자 10명에 대해선 지급 절차가 진행 중이다. 재단에는 현재 일본 정부의 출연금 108억원(10억엔) 가운데 61억원이 남아 있다. 재단은 애초 이런 피해자 지원사업과 함께 ‘피해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었지만, 사실상 어려워졌다.
화해·치유재단은 박근혜 정부가 맺은 12·28 합의의 핵심적 내용이었다는 점에서, 이 재단이 더 이상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은 합의가 무력해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2·28 합의에 대해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며 정부에 후속 조처를 주문한 바 있다.
다만 정부가 재단의 공식 해체를 결정할지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재단은 “한국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고, 이에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하고, 한·일 양국 정부가 협력하여 모든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행하기로 한다”는 12·28 합의에 따라 설립된 것이다. 따라서 일방적인 재단 해체는 12·28 합의의 전면 무효화와 재협상을 전제하지 않으면 어렵다. 외교부 당국자는 “재단의 처리 문제는 지금 당장 뭐라 말하기 어렵다. 정부의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할 때 함께 검토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박기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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