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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비상식적 사드’ 비판하던 문 대통령, 북-미에 끼여 후퇴

등록 2017-09-07 21:16수정 2017-09-07 22:18

문 대통령, 취임 전후 ‘오락가락’
대선 후보 때 “차기 정부에 넘기라”
‘배치 재검토’서 ‘현실론’으로 입장 선회
‘4기 추가 보고 누락’ 제동 걸었지만
두달 뒤 북 ICBM 쏘자 추가배치 지시

미 압력에 쫓기듯 배치 강행
트럼프, 핵실험 뒤 4일 통화때도
“사드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재촉
정부, 임시배치·불가피성 강조에도
“영구기지화·절차 정당성 훼손” 비판
* 표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7일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1개 포대가 경북 성주에 배치되기까지 걸린 1년7개월은 밀실·편법 행정, 정부의 오락가락 행보로 점철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일방통행식으로 진행됐던 사드 배치 문제는, 이를 비판하며 집권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한반도 안보 환경의 악화와 함께 미국의 직간접적인 압박에 밀려 혼선을 거듭했다.

애초 사드 배치는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이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비정상적인 국정상황에서 강행됐다. 지난 3월6일 사드 일부 장비가 국내에 전격 반입된 데 이어 4월26일 사드 발사대 2기가 새벽 성주 골프장에 기습 배치됐다.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지 않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처럼 중차대한 문제를 결정한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사드 배치의 실효성을 의심하며 국회 비준 등 공론화를 요구했던 문 대통령은 대선이 가까워오면서 명확한 찬반을 밝히지 않은 채 “사드는 차기 정부에 맡기라”고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이때도 사드 배치 재검토 요구를 하진 않아 이미 입장 변화를 일부 드러냈다. 한-미 간 공식 합의한 사항을 뒤집기 어렵다는 현실론에 바탕한 것이었다. 대신 문 대통령은 사드 문제를 풀어갈 ‘원칙’으로 ‘국내 절차적 정당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지난 5월 말 국방부의 첫 실무보고를 받으며 ‘사드 발사대 4기의 국내 반입 사실을 보고 누락했다’며 사드 배치 관련 절차에 제동을 건 게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이 일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조사를 받았고, 위승호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직위해제됐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이후 북의 잇따른 핵·미사일 도발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고 미국의 사드 배치 압력이 거세지자 스스로 강조했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소신을 거둬들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28일 사드 전체 부지에 대해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한 뒤 발사대 4기를 추가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사계절 환경영향평가가 필수인 일반 환경영향평가 실시에 따라 추가 배치는 1년 이상 늦춰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날 밤 북한이 화성-14형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자 몇시간 만에 태도를 바꿔 발사대 4기 추가 배치를 미국과 논의하라고 지시했다. 불과 두달 전 이들 발사대 4기 국내 반입에 대한 보고 누락을 이유로 국방부를 문책했던 일이 무색해졌다. 우리 정부는 ‘임시 배치를 검토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미국의 압박은 더욱 노골화됐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한 이튿날인 4일 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먼저 꺼낸 말도 “사드 배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사드 임시 배치를 최대한 신속하게 완료할 것”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이 이때 이미 ‘7일 배치’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약속한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문 대통령이 국외 방문 중 경찰력을 동원해 주민들을 끌어내고 발사대 배치를 강행한 것은 과정의 투명성, 국민들의 동의를 강조했던 기존 태도와 극명하게 배치된다. 이날 새벽 반대 주민 등과 경찰의 몸싸움이 격화되는 상황을 보고 청와대 일부 실무진이 “진입 작업을 중단하는 게 좋다”는 의견을 전달했으나, 임종석 비서실장은 “그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사드 배치를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 때문이라는 얘기가 청와대 안팎에서 나온다.

정부는 사드 발사대 배치가 ‘임시 배치’이며 “최종 배치 여부는 약속대로 보통 환경영향평가를 마친 뒤 결정하겠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거듭 해명하고 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김은경 환경부 장관과 함께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 나선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고도화되고 있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비하여 현재 제한적인 한·미 연합 미사일 방어능력을 보완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불가피하여 사드 체계의 잔여 발사대를 임시 배치하게 되었다”며 “국민 여러분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조치의 일환으로 부득이하게 결정하여 추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 장관은 사드의 전자파 위험을 지적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핸드폰 전자파보다 약하다”며 “배치 완료 상태가 되면 작전운용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7일 사드 발사대 4기의 추가 배치를 계기로 성주 기지의 보강공사도 함께 허용하면서, 성주 기지가 사실상 사드 1개 포대의 영구 기지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미 간 합의 사안이라는 이유로 사드 배치를 중도에 막지 못한 정부가, 향후 환경영향평가를 이유로 이미 성주 기지에 자리잡은 사드를 철수시킬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문 대통령이 절차적 정당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제시한 일반 환경영향평가는 결국 요식행위로 전락하게 됐다는 것이다.

박병수 선임기자, 이정애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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