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방문한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지난해 8월 5일 평양 아동병원을 방문해 입원중인 어린이이 환자를 격려하고 있다. 북한의 영유아는 아직도 인도주의적 도움이 필요한 상태이지만, 통일부는 모든 대북지원단체의 북한주민 접촉신고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대북 인도지원 단체들의 경우 현재 팩스 등을 통한 북한주민 접촉마저 100% 불허된 상황입니다. 이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지난 5월23일 통일부로부터 ‘북한주민 접촉신고 수리 거부’ 통보를 받은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회장 이제훈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회장) 소속 단체 관계자의 말이다. 이 단체는 지난 5월10일쯤 통일부에 북한주민 접촉신고를 냈다가 이날 통일부로부터 접촉신고 수리를 거부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단체만이 아니다. 비슷한 시기 접촉신고를 한 10여개의 북민협 소속 단체들도 5월20일을 전후해 통일부로부터 모두 ‘수리 거부’ 통보를 받았다.
대북지원단체들은 이제 북한주민 접촉이 사실상 100% 불가능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지난 1월6일 북한의 제4차 핵실험 이후 통일부가 약 5개월 동안 대북 인도지원 단체들의 접촉신고를 이렇게 ‘수리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주민 접촉신고는 3개월 단위로 갱신하도록 돼 있다. 따라서 지난 1월5일 접촉신고가 접수됐다고 해도 이미 지난 4월5일로 기한이 만료되었기 때문이다.
현행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제9조 2(남북한 주민 접촉) 제1항에 따르면, 남한의 주민이 북한의 주민과 이메일, 팩스 등을 주고받거나 만나기 위해서는 통일부 장관에게 ‘북한주민 접촉신고’를 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북한주민 접촉이 ‘허가’가 아닌 ‘신고’라는 것이다. 대북지원단체들은 “그런데도 통일부가 법 취지에 어긋나게 ‘북한주민 접촉신고’를 마치 허가제인 것처럼 운영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대북 인도지원 단체가 한번 신고하면 최장 5년 동안 북한주민들과의 접촉을 허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는 접촉 기간이 3개월로 크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대북지원단체들의 접촉신고가 거부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당시에도 2009년 5월25일 북한의 제2차 핵실험 이후나 2010년 5·24 조처 때는 여러 대북제재 수단이 발표됐다. 그런데도 단체들의 북한주민 접촉이 허용된 것은 ‘인도적 대북지원은 정치적 흥정 대상이나 압박용 무기가 될 수 없다’는 판단이 밑바닥에 작용한 덕이다.
홍용표 장관이 이끄는 현재의 통일부도 ‘북한 취약계층 대상 인도적 지원 허용’ 방침을 여러 차례 밝히고 있기는 하다. 홍 장관 자신이 지난 3월8일 북핵 태스크포스(TF) 자문단 회의에 참가해 “민간단체가 대북 인도적 지원을 신청하면 원칙적으로 지원을 허용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5월25일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도 언론사 브리핑 시간에 ‘북한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인도적 지원은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정 대변인은 “재개 시점과 지원 범위 등은 추후에 신중하게 고려할 것”이라고 단서조항을 달았다.
현재 대북지원 민간단체들은 이런 통일부의 주장은 진정성이 결여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인도적 지원을 계속할 의지가 있다면 민간단체들이 낸 접촉신고를 거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대북 인도지원이 가능하려면 ‘북한이 현재 필요로 하는 인도적 지원은 어떤 것이 있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접촉신고를 거부하면 인도지원에 필요한 이런 기초 정보를 파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한 대북지원단체 간부는 “어떤 인도적 지원 품목을, 어디에, 얼마만큼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깜깜이 상황’을 만들어놓고 ‘인도지원 계속’을 주장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일 뿐”이라고 통일부의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따라 익명을 요구한 또다른 대북지원단체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 인도주의 지원에 대한 철학이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이명박 정부보다도 못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통일부가 북한주민 접촉신고 수리를 5개월 넘게 거부하면서 대북 인도적 지원을 북한을 압박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을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북민협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난 25일 통일부에 공식 질의서를 보냈다. ‘북한주민 접촉신고 수리 거부’에 대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듣기 위해서다. 북민협은 질의서에는 통일부가 ‘북한주민 접촉신고’를 신고사항으로 생각하는지 허가사항으로 생각하는지와, 실제적으로는 이렇게 접촉신고를 거부하는 상태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은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은 모순된 것 아니냐는 점 등을 집중적으로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민협의 한 관계자는 “지금 통일부에 해주고 싶은 말은 이번 북한의 제4차 핵실험 이후 유엔에서 채택된 제재안 2270호를 제대로 잘 준수하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유엔 제재안 어디를 뜯어봐도 인도주의 지원을 금지하거나 막으라는 규정은 없다”며 “우리 정부가 인도적 대북지원 단체들의 접촉신고를 거부하는 것은 유엔의 제재안 내용과도 명백히 다른 것”이라고 밝혔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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