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 ‘2+2’ 회담 사흘째인 24일 오후 개성공단에서 물건을 싣고 입경한 차량들이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통일대교를 지나가고 있다. 파주/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무박 사흘’ 끝장 협상 왜?
먼저 판 깨면 결렬책임 뒤집어쓸 우려
①남 “지뢰 사과” 북 “방송 중단” 자기주장 되풀이
②박 대통령-김정은 지휘…협상자들 재량권 없어
③남북경색 장기화로 서로에 대한 정보도 태부족
먼저 판 깨면 결렬책임 뒤집어쓸 우려
①남 “지뢰 사과” 북 “방송 중단” 자기주장 되풀이
②박 대통령-김정은 지휘…협상자들 재량권 없어
③남북경색 장기화로 서로에 대한 정보도 태부족
판문점에서 진행중인 남북 고위급 ‘2+2’ 회담이 시작 사흘째인 24일도 끝 모른 채 이어졌다. 전날 오후 3시30분에 시작한 2차 회담이 밤을 꼬박 새우고도 24시간을 넘겨 계속된 것이다. 가장 젊은 나이인 홍용표(51) 통일부 장관을 제외하면 평균 68.3살인 고령의 남북 참석자들이 밤샘 강행군을 할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양쪽이 모두 쉬이 물러서기 힘든 위치에서 협상에 나선 ‘상황 논리’가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남북의 요구사항이 이미 타협이 이뤄지기 힘든 상태가 돼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쪽은 지뢰폭발 및 포격 사건의 범인으로 북한을 지목하고 시인과 사과를 요구하지만, 북쪽은 이미 관련 책임을 공식 부인한 상황이다. 또 북쪽은 대북 확성기 방송의 무조건 중단을 요구하지만, 남쪽은 북의 사과 없이는 ‘절대 불가’라는 태도다. 남북 모두 자신의 요구를 들어줘야만 다음 단계 논의로 나아갈 수 있다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첫 관문부터 그 부분이 핵심적인 문제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배경에는 남북 최고지도자들이 모두 원칙적 입장만을 고수하면서 협상 당사자들에게 재량권을 주지 않은 채 원칙 관철만을 요구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확실한 사과와 재발 방지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고 확성기 방송도 계속 유지할 것”이라며 ‘타협 불가론’을 천명했다. 북쪽도 황병서·김양건 두 고령의 고위 당국자가 계속해서 같은 주장만 되뇌었다.
이렇다 보니 사실상 합의가 어려운 상태에서 양쪽 모두 상대방이 먼저 결렬을 선언하고 회담장을 박차고 나서기만을 기다려온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결렬을 짐작하고 있음에도, 이후 사태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 ‘역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남북간 대화 단절이 몇년씩 지속되다 보니 서로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 협상에 진전을 보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는 대외적으로는 핵 및 인권 문제와 관련해 대북 압박의 선봉에 서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통일 준비’를 이유로 북한의 급변사태를 시사하는 발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는 등 남북 대화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정은 체제 또한 폐쇄적 태도로 예측불가능성을 키웠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 사안이 남북을 뛰어넘어 객관성을 띠는 국제사회의 판단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남북간 서로 자기주장만 되뇌는 ‘도돌이 협상’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한 요인이라는 풀이도 나온다.
남북관계 특성상 협상이 며칠째 이어지는 게 유별난 상황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날 <에스비에스>(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일반적으로 남북 장관급 회담도 3박4일 내지는 4박5일로 했고, 1998년 비료회담은 일주일 동안 회담을 했어도, 결론을 못 냈다”며 “(이번 마라톤협상이) 특이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익명을 요구한 한 대북전문가는 “고위급 접촉에서 다양한 사안이 논의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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