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복으로 땅을 기며 필사적으로 부상자 호송”
육군 1사단, DMZ 지뢰 폭발 TOD 영상 공개
지난 4일 비무장지대(DMZ)에서 우리 군 수색대원 2명에게 중상을 입힌 지뢰 폭발 사고는 군사분계선(MDL)을 몰래 넘어온 북한군이 파묻은 목함지뢰가 터진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은 합동참모본부가 이날 공개한 사고 당시 열상감시장비(TOD)로 촬영된 지뢰 폭발 장면. 합동참모본부 제공
수색대원 3명이 쓰러진 군인 한 명을 부축하고 철책 통문 안으로 긴박하게 후송했다. 그때 갑자기 통문 바닥에서 5m를 훌쩍 넘는 흙먼지가 치솟고 부상자를 후송하던 대원들이 한꺼번에 뒤로 넘어졌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은 다리를 다쳐 바닥에 쓰러졌다. 이를 본 다른 대원이 급히 통문 안으로 들어와 그를 땅에서 끌며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넘어졌던 대원 2명은 정신을 차린 듯 다시 일어나 포복으로 땅을 기며 필사적으로 부상자를 후송했다. 나머지 장병들은 소총으로 전방을 겨누며 이들을 엄호했다.
육군 1사단이 10일 언론에 공개한 이달 4일 비무장지대(DMZ) 지뢰폭발 사고 영상은 한마디로 처참했다. 열상감시장비(TOD)로 촬영한 이 영상에는 1사단 수색대원 김모(23) 하사의 발목 절단으로 이어진 2차 지뢰폭발 장면이 담겼다. 김 하사는 불과 5분 전 DMZ 추진철책 통문 밖에서 1차 지뢰 폭발로 두 다리를 크게 다친 하모(21) 하사를 후송하다가 변을 당했다. 추진철책은 DMZ 안에 있는 소초(GP)들을 잇는 철책으로, 북한군의 침투를 막고 우리 군의 수색작전을 용이하게 하는 데 쓰인다.
당시 TOD로 DMZ를 감시하던 병사는 1차 지뢰 폭발음을 듣고 급히 TOD 방향을 사고 현장으로 돌려 2차 폭발을 촬영할 수 있었다. TOD 영상 속 수색대원들은 전우 2명이 잇달아 쓰러진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후송작전을 펼치는 모습을 보였다.
사고를 조사한 안영호 국방부 전비태세검열단 부단장(육군 준장)은 “단 한 명의 수색대원도 숨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전우의 구출과 전투 대형 유지를 위해노력했다”고 평가했다.
수색대원들이 전열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후송작전을 수행했기 때문에 김 하사와 하 하사는 15분 만에 들것에 실려 GP로 후송됐으며 사고가 발생한 지 1시간28분 만에 군 병원으로 옮겨질 수 있었다.
안 준장이 이끄는 합동조사단은 이번 사고가 북한군이 최근 군사분계선(MDL)을 몰래 넘어와 매설한 목함지뢰의 폭발로 발생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앞서 육군 1사단은 9일 MDL과 440m 떨어진 곳에 있는 사고 현장도 언론에 공개했다.
지뢰폭발은 우리 군 수색대가 드나드는 추진철책 통문 바로 바깥쪽(북쪽, 1차 폭발)과 안쪽(남쪽, 2차 폭발)에서 발생했다. 수색대원의 발이 놓이는 곳에 지뢰가 묻혀 있었던 것이다. 목함지뢰가 빗물에 떠내려온 것이 아니라 북한군이 우리 군 수색대를 겨냥해 매설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게 하는 대목이다.
1사단 수색대는 지난달 22일에도 이 통문을 통과했으나 모두 무사했다. 북한군이 지난달 말 이곳에 목함지뢰를 파묻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합동조사단에 따르면, 목함지뢰 2개가 한꺼번에 터진 1차 폭발의 화구(폭발로 움푹 패인 곳)는 가로 117㎝, 세로 90㎝, 깊이 19㎝에 달했다.
지난 4일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폭발사고를 조사한 합동조사단의 안영호 단장(육군 준장)이 9일 사고 현장을 방문한 취재진에 당시 상황을 직접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취재진이 확인한 2개의 화구는 지난 8일 쏟아진 소나기 탓에 꽤 많은 흙이 쌓여 있었다. 사고 현장 주변은 알갱이가 꽤 굵은 ‘마사토’로 덮여 있었다. 손으로 땅을 파보니 야전삽 같은 장비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지뢰를 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통문 아래쪽에는 폭이 15㎝쯤 되는 틈이 있었다. 합동조사단은 북한군이 이곳으로 손을 집어넣어 목함지뢰 1개를 파묻은 다음 통문 북쪽에 지뢰 2개를 매설한 것으로 보고 있다.
추진철책 남쪽에는 몸을 숨길 만한 높이의 둔덕이 있어 통문까지 경사지가 만들어져 있었다. 통문을 넘어서면 경사는 완만해졌지만 MDL 주변 계곡에 다다를 때까지 내리막은 계속된다. 이런 지형적 특징도 합동조사단이 목함지뢰의 유실 가능성을 낮게 보는 근거다. 경사지 때문에 목함지뢰가 북쪽에서 떠내려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추진철책 남쪽 지역은 지뢰 제거 작업이 끝나 유실될 지뢰도 없다는 것이 합동조사단의 설명이다.
북한군이 지나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 현장 근처 길목에서 약 2㎞ 서쪽에는 우리 군 일반전초(GOP)의 관측소(OP)가 보였다. 북한군이 통문에 접근하는 것을 OP에서 포착할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이 길목에서 OP의 감시 범위에 들어오는 구간은 약 10여m로, 녹음을 이용해 상체를 숙이고 기동하면 카메라에 잡히는 시간은 3∼4초 밖에 안된다는 것이 합동조사단의 설명이지만 완벽한 사각지대가 아닌데도 북한군을 놓쳤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사고 현장을 둘러본 취재진이 철책 남쪽 둔덕을 넘어오자 피 묻은 거즈와 압박붕대 봉지 같은 것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수색대원들이 부상당한 전우를 부축해 이곳으로 옮기고 들것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지혈을 한 긴박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1사단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수색작전 구역에서 대대적으로 지뢰 탐지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군이 매설한 것으로 보이는 목함지뢰의 추가 발견 사례는 아직 없다.
군은 이번 사고를 북한의 ‘DMZ 지뢰도발 사건’으로 규정하고 그 밑에 깔린 의도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북한군이 무모한 행동을 벌인 것은 군사적 차원에서는 DMZ 안에서 우리 군의 활동을 위축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군 관계자는 “북한군은 최근 DMZ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고자 눈에 띄게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며 “과거에 비해 수색과 매복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합참이 공개한 DMZ 지뢰 폭발 당시 영상>
파주=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