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역주민이 24일 낮 경기 연천군 중면사무소 안 ‘북한군 고사기관총 낙탄지’를 가리키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10일 오후 연천 지역에서 한 보수단체가 띄워 올린 대북전단 살포용 대형 풍선을 향해 고사기관총을 발사했다. 연천/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박근혜 정부 2년 진단 ⑤ 통일·외교
연천 주민 “또 총쏠까 불안”
연천 주민 “또 총쏠까 불안”
군 초소를 지나자 너른 벌이 펼쳐졌다. 누런 볏짚이 깔린 논 위 곳곳에 천연기념물인 두루미들이 떼지어 노닐었다. “우리 마을이 율무 농사를 많이 짓는데, 두루미가 율무를 좋아한대요.” 주민 김학용(61)씨가 논 옆 산자락에 들어선 율무밭을 가리켰다.
24일 경기도 연천군 중면 횡산리를 찾았다. 임진강변 민간인 통제선 안에 자리하고 있지만, 여느 농촌 마을의 한가로운 겨울 풍경과 별다를 게 없다. “지뢰밭을 걷어내고 논밭을 일구긴 했지만, 수십년간 접경지역의 살벌한 기운은 안 느끼고 살았어요.” 김씨 부부는 1986년 충청남도 천안에서 이주한 뒤 단 한 번도 군사충돌에 휘말린 적이 없었다고 했다. 봄이면 씨 뿌리고 가을이면 거두면서, 1남1녀를 키웠다.
하지만 지난해 10월10일 이래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날 김씨는 추수철을 맞아 한창 바쁘게 벼를 베고 있었다. 오후 3시가 채 안 돼 총소리가 들렸다. “주변 군부대에서 사격 연습을 하나보다 했죠. 그런데 4시40분쯤 군부대에서 ‘실제 상황’이라며 대피령을 내렸어요.” 당시 마을 이장을 맡고 있던 김씨는 마을회관 옆 지하 대피소를 열고 주민들과 함께 긴급 대피에 나섰다. 대피령은 저녁 7시쯤 해제됐지만 상당수 주민들은 놀란 가슴 탓에 마을회관에서 함께 밤을 지새웠다. 그는 “마을이 1972년에 생겼는데, 76년 ‘8·18 사건’ 때 연천읍내로 피난 간 걸 빼면 대피령은 처음이라고 하더라”고 했다. 전쟁 일보직전에 발령되는 ‘데프콘 2’가 내려졌던 ‘8·18 미루나무 사건’ 이래 가장 급박했던 순간이 횡산리 주민들에게 펼쳐졌던 셈이다.
북한군은 이날 남쪽 탈북자 단체가 연천군에서 띄운 ‘대북 전단’ 살포용 풍선을 떨어뜨리려고 남쪽의 벌컨포와 비슷한 고사기관총을 쐈다. 이 가운데 한 발은 민통선과 100여m 떨어진 연천군 중면사무소 마당에 떨어졌다. 임재관 면장은 “한 직원이 ‘쾅’ 소리와 함께 파편이 튀는 모습을 보고 나가 봤더니 가운데 손가락 굵기의 총탄이 박혀 있다고 해 군부대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지름 3㎝ 크기의 원형으로 파인 피탄 지점에는 투명 아크릴로 된 반원 뚜껑이 씌워져 있다. ‘북한군 발포 고사기관총탄 낙탄지’라는 안내판도 서 있다.
‘연천 총격’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이래 다시 한 번 북한군의 화력이 민간인 거주구역을 향해 불을 뿜은 사건이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차별성을 내세웠던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공약이 이명박 정부와 동일한 실패의 길을 밟고 있음을 말해주는 사례다. 박근혜 정부는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대화와 협력을 통해 남북간 신뢰를 형성하고 통일 기반을 구축하겠다고 장담했지만, 결과는 민간인마저 위험에 빠뜨린 무력 충돌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작년 전단풍선 향해 쏜 북 총탄
마을 면사무소 마당까지 떨어져 “표현의 자유도 좋지만
사람이 죽어나갈 수 있는 문제
방치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 지난해 고위급 접촉과 이산가족 상봉 성사, 북한 실세 3인방의 방남 등으로 잠깐 깜빡였던 남북관계 개선의 희망은 ‘연천 총격’으로 사그라들었다. 북쪽은 ‘연천 총격’ 한 달여 전 ‘대북 전단을 뿌리면 도발 원점을 초토화하겠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정부는 대북 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며 사실상 방치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최근 낸 ‘박근혜 정부 3년차 대선공약 이행평가’에서 “정부가 대북 전단 살포를 사실상 방관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를 놓쳤다”고 쓴소리를 했다. 횡산리 주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성토했다. 김학용씨는 “‘표현의 자유’도 좋지만, 사람이 죽어나갈 수 있는 문제를 방치하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현 이장인 은금홍(66)씨는 당시 남북관계 관리만이 아니라 안보 대비에서도 정부의 무능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짚었다. 그는 “당시 실탄이 중면사무소에 떨어졌는데, 군이 우리 건지 적군 건지도 몰라 1시간 반이 지난 뒤에야 대피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 사이 마을에서 불과 2㎞ 떨어진 군사분계선 위로 남북 간에 수십발씩 총탄이 오가는 교전 상황 속에 한동안 주민들이 방치됐다는 것이다. 지역 경제도 큰 타격을 받았다. 임 면장은 “젊은층이 많이 찾던 ‘로하스 캠핑장’이 문을 닫는 등 관광·숙박업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윤영범 부면장은 “땅값도 떨어져 주민들이 끓고 있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3년차 맞아 일방주의 탈피해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최근 한 강연에서 “2년 동안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알다시피 크게 진전이 안 됐다”고 사실상 실패를 자인했다. 통일·외교 분야 핵심 공약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가동이 안 되니, ‘동북아 평화구상’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의 관련 구상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쪽에는 신뢰를 쌓으라고 요구하면서, 북쪽이 극도로 반발하는 ‘대북 전단 살포’는 나몰라라 하는 모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김진향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3년차를 맞아 일방주의적 접근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했다. 연천 주민들은 한층 절박하다. 김학용씨는 “곧 봄인데, 또 전단 날리고 총 쏠까 봐 불안하다”며 “비상만 안 걸리면 여기도 천국인데, 걱정없이 농사짓도록 정부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천/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마을 면사무소 마당까지 떨어져 “표현의 자유도 좋지만
사람이 죽어나갈 수 있는 문제
방치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 지난해 고위급 접촉과 이산가족 상봉 성사, 북한 실세 3인방의 방남 등으로 잠깐 깜빡였던 남북관계 개선의 희망은 ‘연천 총격’으로 사그라들었다. 북쪽은 ‘연천 총격’ 한 달여 전 ‘대북 전단을 뿌리면 도발 원점을 초토화하겠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정부는 대북 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며 사실상 방치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최근 낸 ‘박근혜 정부 3년차 대선공약 이행평가’에서 “정부가 대북 전단 살포를 사실상 방관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를 놓쳤다”고 쓴소리를 했다. 횡산리 주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성토했다. 김학용씨는 “‘표현의 자유’도 좋지만, 사람이 죽어나갈 수 있는 문제를 방치하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현 이장인 은금홍(66)씨는 당시 남북관계 관리만이 아니라 안보 대비에서도 정부의 무능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짚었다. 그는 “당시 실탄이 중면사무소에 떨어졌는데, 군이 우리 건지 적군 건지도 몰라 1시간 반이 지난 뒤에야 대피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 사이 마을에서 불과 2㎞ 떨어진 군사분계선 위로 남북 간에 수십발씩 총탄이 오가는 교전 상황 속에 한동안 주민들이 방치됐다는 것이다. 지역 경제도 큰 타격을 받았다. 임 면장은 “젊은층이 많이 찾던 ‘로하스 캠핑장’이 문을 닫는 등 관광·숙박업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윤영범 부면장은 “땅값도 떨어져 주민들이 끓고 있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3년차 맞아 일방주의 탈피해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최근 한 강연에서 “2년 동안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알다시피 크게 진전이 안 됐다”고 사실상 실패를 자인했다. 통일·외교 분야 핵심 공약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가동이 안 되니, ‘동북아 평화구상’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의 관련 구상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쪽에는 신뢰를 쌓으라고 요구하면서, 북쪽이 극도로 반발하는 ‘대북 전단 살포’는 나몰라라 하는 모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김진향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3년차를 맞아 일방주의적 접근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했다. 연천 주민들은 한층 절박하다. 김학용씨는 “곧 봄인데, 또 전단 날리고 총 쏠까 봐 불안하다”며 “비상만 안 걸리면 여기도 천국인데, 걱정없이 농사짓도록 정부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천/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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