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2년 진단 ⑤ 통일·외교
울분에 찬 남북경협기업들
울분에 찬 남북경협기업들
“솔직히 기대했다. 하지만 이제는 지쳤다.”
남북경협 기업들이 기대를 접고 있다. 일부는 희망의 끈마저 놓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2년 내내 남북관계가 헛도는 상황에 절망한 까닭이다.
남북경협 기업들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발효된 5·24 조치로 직격탄을 맞았다. 당시 정부는 천안함 침몰에 대한 보복 조처로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경협과 국민 방북 등을 전면 금지했다. 개성공단 이외 북한 내륙에서 이뤄져온 남북경협은 한순간에 근거를 잃었다. 1989년 이래 남북 교류 협력의 토대를 쌓아온 경협 기업 1000여곳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다. 수천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숱한 기업인들이 부도, 파산, 신용불량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2년 반만 더 버티면 다시 솟아날 구멍이 생기리라 믿었다. “이명박 정부만 끝나면 살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보수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국민의 재산권과 생존권 침해를 마냥 내버려두지는 않겠거니 하는 기대가 있었다.”(이도균 시에스글로벌 대표)
박근혜 정부가 집권하면서 기대는 한껏 부풀었다. 5·24 조치 뒤 남북경협 기업인들이 만든 남북경협기업 비상대책위원회가 박근혜 정부 출범 넉달여 뒤인 2013년 6월 실태조사를 했다. 당시 조사에 응한 남북경협 기업인의 82.1%는 1년 안에 남북경협이 재개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1~2년이라고 응답한 이도 15.4%였다. 현 정부에서 재개가 쉽지 않다는 답은 3%에 그쳤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내세우며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한 박근혜표 대북 정책에 대한 기대가 깔렸다. 지난해 초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 대박’을 설파하면서 이런 기대는 절정에 달했다.
대북전단 공방으로 기대 물거품
1148개 업체 1조5751억원 피해
“멈춰선 장비·시설 남아 있는지?”
기업인들 출금·신용불량자 신세
“경협을 통일대박의 초석으로 보길” 하지만 기대감은 곧 허망하게 꺼졌다. 지난해 2월 1차 남북 고위급 접촉과 이산가족 상봉, 10월 북쪽 고위급 3인방의 전격 방남과 2차 고위급 접촉 합의 등의 남북관계 개선 기회는 대북전단 중단 공방 속에 물거품이 됐다. 5·24 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의 선제적 조처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 카드에 들어 있지 않았다. 남북경협 기업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지고만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5·24 조치 이래 2013년까지 남쪽의 경제적 피해 규모를 145억9000만달러(15조여원)로 추정했다.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은 2013년 10월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을 뺀 남북경협 기업들의 피해 규모를 1148개 기업, 1조5751억원으로 집계했다. 지난 1년4개월 새 피해 규모는 더욱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경협 기업인들은 비명을 지를 힘도 바닥났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북쪽에서 강모래를 들여오는 사업을 했던 시에스글로벌 이도균 대표는 “개성공단에서 불과 300m 거리에 작업장이 있는데, 벌써 5년째 가보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임진강 위쪽 사천강변에서 매년 50억원어치, 40만㎥의 강모래를 남북 합작으로 준설해 남쪽 건설 현장에 공급했다. 덤프트럭 기사 30명을 포함해 남쪽 100명, 북쪽 120명이 근무했지만 모두 일자리를 잃고 뿔뿔이 흩어졌다. 이 대표는 “준설 장비와 야적장 건설 등에 100억원을 투자했지만, 방북이 금지돼 장비·시설이 남아 있는지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평양에서 북쪽과 불수강(스테인리스 고압 파이프) 합작 공장을 운영했던 나우코퍼레이션 서승우 대표는 “230억원을 투자했는데 북쪽에서 무연탄, 아연괴, 알루미늄괴 등으로 대가를 막 받아 오려는 찰나에 교역이 금지됐다”고 말했다. 그는 “빚과 세금 연체로 출국 금지되고 은행 거래도 못하는 ‘경제적 식물인간’이 됐다”며 “요즘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인데, 청와대 앞에서 시너라도 뿌려야 하는 건가 하는 극단적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남북경협에 대한 꿈과 기대를 아예 접는 이들도 갈수록 늘고 있다. 신사복, 패딩 의류 등을 평양에서 임가공해 들여왔던 이윤주 제이엠(JM)모드 대표는 “현 정부가 남북경협 기업 1000여개 때문에 대북정책을 바꾸리라는 기대는 더이상 않는다”며 “이제 경협 재개는 바라지도 않고 정부의 일방적 조처로 인한 기업 손해에 대한 보상이나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동호 남북경협기업 비대위원장은 “남북경협 기업을 살리는 것이 경제 살리기와 통일 대박의 초석이라는 상식적 판단으로 박근혜 정부가 돌아오기 바란다”고 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1148개 업체 1조5751억원 피해
“멈춰선 장비·시설 남아 있는지?”
기업인들 출금·신용불량자 신세
“경협을 통일대박의 초석으로 보길” 하지만 기대감은 곧 허망하게 꺼졌다. 지난해 2월 1차 남북 고위급 접촉과 이산가족 상봉, 10월 북쪽 고위급 3인방의 전격 방남과 2차 고위급 접촉 합의 등의 남북관계 개선 기회는 대북전단 중단 공방 속에 물거품이 됐다. 5·24 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의 선제적 조처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 카드에 들어 있지 않았다. 남북경협 기업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지고만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5·24 조치 이래 2013년까지 남쪽의 경제적 피해 규모를 145억9000만달러(15조여원)로 추정했다.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은 2013년 10월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을 뺀 남북경협 기업들의 피해 규모를 1148개 기업, 1조5751억원으로 집계했다. 지난 1년4개월 새 피해 규모는 더욱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경협 기업인들은 비명을 지를 힘도 바닥났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북쪽에서 강모래를 들여오는 사업을 했던 시에스글로벌 이도균 대표는 “개성공단에서 불과 300m 거리에 작업장이 있는데, 벌써 5년째 가보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임진강 위쪽 사천강변에서 매년 50억원어치, 40만㎥의 강모래를 남북 합작으로 준설해 남쪽 건설 현장에 공급했다. 덤프트럭 기사 30명을 포함해 남쪽 100명, 북쪽 120명이 근무했지만 모두 일자리를 잃고 뿔뿔이 흩어졌다. 이 대표는 “준설 장비와 야적장 건설 등에 100억원을 투자했지만, 방북이 금지돼 장비·시설이 남아 있는지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평양에서 북쪽과 불수강(스테인리스 고압 파이프) 합작 공장을 운영했던 나우코퍼레이션 서승우 대표는 “230억원을 투자했는데 북쪽에서 무연탄, 아연괴, 알루미늄괴 등으로 대가를 막 받아 오려는 찰나에 교역이 금지됐다”고 말했다. 그는 “빚과 세금 연체로 출국 금지되고 은행 거래도 못하는 ‘경제적 식물인간’이 됐다”며 “요즘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인데, 청와대 앞에서 시너라도 뿌려야 하는 건가 하는 극단적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남북경협에 대한 꿈과 기대를 아예 접는 이들도 갈수록 늘고 있다. 신사복, 패딩 의류 등을 평양에서 임가공해 들여왔던 이윤주 제이엠(JM)모드 대표는 “현 정부가 남북경협 기업 1000여개 때문에 대북정책을 바꾸리라는 기대는 더이상 않는다”며 “이제 경협 재개는 바라지도 않고 정부의 일방적 조처로 인한 기업 손해에 대한 보상이나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동호 남북경협기업 비대위원장은 “남북경협 기업을 살리는 것이 경제 살리기와 통일 대박의 초석이라는 상식적 판단으로 박근혜 정부가 돌아오기 바란다”고 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