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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피격’ 네트워크에 주도권 있지만 상황 가변적”

등록 2014-03-17 19:30

경기도 평택 2함대에 전시중인 인양된 천안함 선체는 ‘천안함 논쟁’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산 증거물이다. 깨어지지 않은 형광등, 휘어진 프로펠러, 선저의 긁힌 자국들은 ‘어뢰 피격’을 부정하는 증거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평택/이정아 기자 <A href="mailto:leej@hani.co.kr">leej@hani.co.kr</A>
경기도 평택 2함대에 전시중인 인양된 천안함 선체는 ‘천안함 논쟁’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산 증거물이다. 깨어지지 않은 형광등, 휘어진 프로펠러, 선저의 긁힌 자국들은 ‘어뢰 피격’을 부정하는 증거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평택/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싱크탱크 광장]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으로 본 천안함 사건
2010년 3월26일 발생한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논쟁은 “북한 어뢰에 의한 피격”이라는 정부의 결론과 함께 재론의 여지 없이 끝난 것일까. 지난해 여름 <북한연구학회보>(통권 제17권 제1호)에 ‘천안함 사건의 행위자-네트워크와 분단체제의 불안정성’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박순성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천안함 사건 4주년을 앞두고 지난 15일 서울 동국대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박 교수는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이라는 틀로 천안함 사건을 볼 때 이 사건은 여전히 살아 있는 논쟁거리라고 강조했다.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은 프랑스 과학자인 브뤼노 라투르와 미셸 칼롱 등이 1980년대에 과학과 기술개발 등을 설명하기 위해 개발한 이론이다. “하나의 새로운 기술은 이질적인 여러 행위자들을 크고 강한 네트워크로 구축할 때 생겨난다”는 게 핵심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행위자를 ‘인간’만으로 국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계나 기술, 환경 등 ‘다양한 비인간 행위자’를 포함한다. 어떤 ‘구축자’가 이런 ‘인간 행위자’와 ‘비인간 행위자’를 새로운 네트워크로 구축할 때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아이폰’은 바로 스티브 잡스라는 구축자가 당시 존재하던 기계 장치들, 인터넷 수준과 인간의 욕구 등을 활용해 새로운 방식의 연결망을 만들어냄으로써 탄생한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이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은 과학과 기술 문제를 넘어 사회학, 인류학, 정치학, 경제학과 같은 인문·사회과학으로 적용범위를 넓히게 된다. 기존에 인문·사회현상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사실 ‘비인간 행위자’의 개입 없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인간 행위자’와 ‘비인간 행위자’의 결합으로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의 유용성이 크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이 소통한다”고 할 때, 그 소통에는 ‘비인간 행위자’인 ‘휴대전화’나 ‘편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어떤 ‘비인간 행위자’가 결합되는가에 따라 소통의 양식과 기능도 달라진다.

6·15도 ‘네트워크 재구축’으로 설명

더 크게 보면 사회질서의 변화도 이런 기존의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를 새롭게 재조직(혹은 재번역)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6·15 정상회담과 이후 남북한의 화해 국면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라는 ‘구축자’가 그 당시 남북통일과 긴장완화를 요구하는 ‘인간 행위자’뿐만 아니라, 남북한의 경제 상황, 군사 상황, 국제 정세 등의 ‘비인간 행위자’를 새롭고 강한 네트워크로 재조직하고 재번역했기에 만들어진 것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 강고했던 분단체제는 ‘흔들림’을 경험하게 됐다.

박 교수는 논문에서 이런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을 이용해 천안함 사건과 한반도 분단체제의 변화를 설명했다. 기본적인 틀은 천안함 사건의 ‘해석’ 문제를 놓고 남한 사회에 ‘천안함 피격 행위자-네트워크’와 ‘천안함 사건 행위자-네트워크’라는 두 개의 행위자-네트워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두 행위자-네트워크는 각각 ‘인간 행위자’와 함께 천안함 선체 인양, 깨어지지 않은 형광등, ‘1번 어뢰’ 추진체, 과학실험 등 ‘비인간 행위자’들이 결합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가운데 ‘천안함 피격 행위자-네트워크’는 천안함이 북한에 의해 피격됐음을 주장하는 행위자-네트워크다. 주로 국방부와 보수언론들이 구축자 구실을 했다. 반면 ‘천안함 사건 행위자-네트워크’는 ‘피격 네트워크’가 모순이 많다는 ‘합리적 의혹’을 제기하는 행위자-네트워크다. 주로 시민사회단체와 진보언론들이 구축자로 활동했다. 이 두 행위자 네트워크의 경쟁과 주도권 장악, 안정화 과정은 한반도 분단체제의 향방과도 밀접히 관련된다. 즉 어떤 행위자 네트워크가 주도권을 갖는가에 따라 분단체제가 더욱 약화될 것인지, 아니면 재강화될 것인지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논문에서 정부가 국외 인사까지 포함한 합동조사단을 꾸리고 2010년 5월20일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의해 피격됐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국제사회에 문제제기를 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천안함 피격 행위자-네트워크’ 구축에 나섰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분석했다.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참여연대나 천안함조사결과언론보도검증위원회의 반론 등 ‘천안함 사건 행위자-네트워크’의 문제제기에 상당수 국민들이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그러나 2010년 11월23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나면서 ‘천안함 피격 행위자-네트워크’가 주도권을 가지고 ‘안정화’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의 관련성이 확인된 것은 없지만, “민간인 희생까지 일으켰다는 점에서” ‘무력도발자 북한’이라는 이미지를 강화시키면서 “호전적인 북한에 압박을 가하는 ‘안보 행위자-네트워크’를 국내외적으로 안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렇게 ‘천안함 피격 행위자-네트워크’가 안정화하면서 흔들리던 한반도 분단체제가 재강화되는 상황을 맞았다고 설명한다.

해석 둘러싸고 남한 사회 논쟁
‘피격’으로 보는 정부·보수쪽과
‘사건’일 수 있다는 진보쪽 대립
연평도 포격 계기로 ‘피격’ 우위
덩달아 분단체제 재강화쪽으로

다수 국민, 여전히 정부 발표 의심
새 증언 등 따라 ‘안정’ 깨질 가능성

이명박 대통령, 초기엔 ‘사건 네트워크’ 일원

박 교수는 이 과정에서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어떤 행위자-네트워크에서 활동했는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이 대통령이 초기에는 ‘사건 행위자-네트워크’의 한 부분으로 활동한 것으로 파악한다. 사건 직후 이 대통령이 “‘섣부른 예단’과 ‘막연한 예측’에 대해 주의할 것을 요구”한 점이나 2010년 4월2일 김태영 국방장관의 국회 답변 과정에서 “브이아이피(VIP)께서 장관님의 답변이 어뢰 쪽으로 기우는 것 같은 감을 느꼈다고 한다”는 메모가 전달된 점 등을 그 증거로 꼽았다. 하지만 이후 이 대통령은 4월 중순 천안함 선체 인양 뒤에는 빠르게 ‘피격 행위자-네트워크’로 옮아갔다. 이어 같은 해 5월24일 개성공단 이외의 모든 남북경협을 금지시키는 5·24 조처를 발표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초기에 ‘사건 행위자-네트워크’에 머문 것은 6·15 이후 남북 화해협력 과정에서 분단체제가 크게 흔들렸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북의 화해 진전이라는 현실이 대통령에게 신중한 자세를 취하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수언론과 국방부의 강력한 여론몰이와 정치·외교적 고려에 따라 이후 대통령의 태도가 ‘피격 행위자-네트워크’ 쪽으로 크게 기울게 됐다는 것이다.

‘분단체제의 역동성과 불안정성 확인’ 성과

박 교수는 이런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을 이용한 분석을 통해 “분단체제의 불안정성과 역동성을 더욱 강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분단체제라는 것도 어떤 행위자-네트워크가 주도권을 가지고 안정화되는가에 따라 항상 약화와 강화라는 갈림길에 놓여 있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의지와 물질의 결합, 우연과 필연의 접합, 정치와 과학의 혼합은 천안함과 관련한 행위자-네트워크가 쉽게 안정화되지 못하도록 만들고 분단체제의 작동방식도 뒤흔든다”고 주장한다. 즉 분단체제가 세계체제의 하위체제로서 갖고 있는 강고함이 있다 하더라도, 그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분단체제는 이미 만들어진,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질 수많은 분단의 행위자-네트워크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이에 따라 분단체제를 “분단현실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행위자-네트워크들의 맥락, 즉 분단의 행위자-네트워크들의 행위자-네트워크”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박 교수는 이에 따라 분단체제는 앞으로도 행위자-네트워크가 어떻게 형성되고 안정화되는가에 따라 지속적으로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특히 천안함과 관련한 ‘행위자-네트워크’만 해도 ‘피격 행위자-네트워크’의 안정화라는 현 상황으로 고착되지 않고, 다시 가변적인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국민들에게 ‘천안함과 관련된 정부 발표를 믿느냐’는 질문을 던질 때, 국민들 과반수가 여전히 정부 발표에 모순된 지점이 많다고 답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앞으로 정부가 강조했던 ‘북한 어뢰 관련 비밀문서’나 천안함 생존 장병들의 증언 등 새로운 ‘인간 행위자’ 및 ‘비인간 행위자’가 드러날 경우, 천안함과 관련한 ‘사건 행위자-네트워크’와 ‘피격 행위자-네트워크’는 또다시 격렬한 경쟁상태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을 통해 본 천안함 사건은 여전히 살아 꿈틀거리는 생물체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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