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산에서 본 개성공단 개성공단의 사활은 개성공단 자체가 아니라 남북한과 미국이 한반도에서 새로운 안보 균형점을 마련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개성공단 잔류인원 전원 철수를 하루 앞둔 지난달 28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도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과 주변 모습. 파주/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개성공단 살릴 해법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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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문제에 치중한
김대중·노무현 정부
‘평화경제론’ 효력 다해” “‘경제-안보 교환’ 시대에서 ‘안보-안보 교환’ 시대로.” 개성공단 회생의 해법을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의 담론을 빌려 정리한 말이다. 조 책임연구위원은 저서 <뉴한반도 비전-비핵 평화와 통일의 길>(백산서당, 2012) 등에서 남북관계의 중심축이 이미 ‘경제로 평화를 사는’ 경제-안보 교환 시기에서, 남북한과 미국 등이 안보 문제에서 서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안보-안보 교환 시대로 옮아왔다고 강조해왔다. 조 책임연구위원의 ‘안보-안보 교환론’은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서해평화지대론 등 남북간 경협을 중심으로 한반도 평화담론을 구축해왔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평화경제론’이 생명력을 다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평화경제론’은 남북한의 경제협력이 군사적 긴장완화를 이끌고, 마침내 남북한 공동번영에 이른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경제협력만으로 군사적 긴장완화를 이끌 수는 없다는 것이 ‘안보-안보 교환론’의 요지다. 오히려 군사적 긴장완화가 선행돼야 개성공단과 같은 경제협력도 원활히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 책임연구위원이 ‘경제-안보 교환론’이라고 평가한 ‘평화경제론’도 두 민주정부 시절에는 그 자체로서 완결적인 것이었다. 6·15 공동선언 제2항, 즉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을 중심으로 통일을 지향’해나가기로 한 대목이 일종의 ‘안보-안보 교환론’ 구실을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연합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경제 문제뿐만 아니라,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 등 안보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노무현 정부에서는 6자회담을 통해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한마디로 두 민주정부 시기에는 남북관계의 목적지(남북연합)와 그 이행을 촉진할 수단(개성공단 등 남북경협)을 모두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경제-안보 교환 아닌
안보-안보 주고받아야
‘체제보장’-‘비핵화’ 문제
정면으로 논의해야할 시점” 물론 목적지인 남북연합 속 군사적 긴장완화는 먼 미래의 일이었던 반면,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은 현재진행형으로 추진해왔다. 더욱이 두 민주정부는 대중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어려운 군사안보 문제보다는 쉬운 경제 문제를 주로 활용했다. 평화경제론이 안보 문제보다 경제 문제에 치중했다는 비판은 일정 정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평화경제론이 이렇게 약화된 데에는 이명박 정부의 ‘악역’이 결정적 구실을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6·15 공동선언 부정, 금강산 관광 중단, 5·24 조처를 통한 개성공단 이외의 경협 중단 등 남북관계의 숨통을 차츰 조여가면서 개성공단은 ‘외로운 섬’으로 남게 됐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는 북-미 대화에 대해 발목잡기로 일관했다. 이에 따라 ‘안보-안보 교환’ 문제에서도 어떤 진전도 보지 못했다. 따라서 개성공단은 이명박 정부 시절 이미 ‘목적지조차 잃어버린 외로운 섬’이 돼버린 것이다. 조성렬 책임연구위원의 ‘안보-안보 교환론’은, 이런 남북관계의 현실을 지적하면서 안보 문제를 중심으로 한반도 평화의 큰 틀을 다시 짜야 할 때임을 강조한 담론으로 읽힌다. 북한이 우려하는 ‘체제보장 문제’와 남한과 미국이 관건적 사안이라고 보는 ‘비핵화 문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정면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안보-안보 교환’을 핵심적인 요소로 인정하고 추진한다 해도 앞길은 순탄치 않다. 안보 분야에서 북한과 남한, 그리고 미국이 ‘등가라고 판단되는 지점’에 합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5년 6자회담에서 합의된 9·19 공동성명에 대한 평가다. 핵실험을 당시까지 하지 않았던 북한은 ‘모든 핵무기 및 현존하는 핵 계획 포기’와 ‘핵확산금지조약(NPT)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복귀’를 약속하고, 미국은 ‘핵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침략하지 않고,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합의의 이행을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당시 남한과 미국의 보수진영은 이 합의에 대해 미국이 너무 많이 양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9·19 합의는 실현되지 못하고, 그 뒤 북한은 3차례에 걸쳐 핵실험을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안보-안보 교환’이 다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북한이 지닌 ‘핵능력’에 대한 협상 당사자들의 재평가가 합의점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나 핵에 대한 주관적 ‘평가액’ 차이가 워낙 커서 합의점 도달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조성렬 연구위원은 지난 25일 열린 북한연구학회 봄철 학술회의에서, 지난 12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발표한 ‘공동성명’을 평가하면서 ‘뒤늦게’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두 장관이) ‘9·19 공동성명’의 약속을 상기시키며 ‘뒤늦게나마’ 한반도평화체제와 북-미 수교, 동북아 다자안보체제와 같은 대북 안전보장 방안을 꺼내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과 남한의 보수정부가 이제야 9·19 때 합의한 교환이 등가가 된다고 판단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북한은 이미 9·19에 만족하지 않는 모양새다.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은 지난 18일 성명에서 한반도 비핵화의 3가지 조건으로 △대북 제재결의 해제 및 적대시 정책 중단과 사죄, △소극적 안전보장(NSA) 요구, △한반도 및 주변지역의 비핵무기 지대화 등을 주장했다. 9·19 당시보다 자신들의 핵능력에 대한 가치를 훨씬 높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홍민 동국대 ‘한국사회과학연구(SSK) 분단-탈분단 행위자 네트워크 연구팀’ 연구교수는 26일 열린 에스에스케이연구팀 통합 심포지엄에서 “북한은 핵을 단순한 무기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북한에 핵은 “수난 받는 민족을 상상하고 호명하는 일종의 정치적 제의(祭儀)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이미 북한의 통치에서 핵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조 연구위원도 이렇게 한반도 내에서 핵에 대한 가치 평가가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상황임을 강조하면서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뿐만 아니라, 잠재적 핵보유국가인 일본의 핵능력도 통제하는 장치”, 즉 ‘동북아 비핵지대 구상’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밝힌 ‘서울프로세스’ 또한 아직 실체가 드러나진 않았지만, 일종의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이라는 점에서 조 연구위원의 문제의식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어 보인다. 결국 현재 개성공단의 위기는 이명박 정부가 ‘경제-안보 교환’을 무력화시키고, ‘안보-안보 교환’도 진전시키지 못한 데 대한 필연적인 결과다. 개성공단의 해법은 따라서 개성공단 자체가 아니라, 새 지도에 해당하는 새로운 ‘안보-안보 교환 지점’을 찾아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 그 출발점은 오는 5월7일 한-미 정상회담일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의 정상화를 바라는 많은 시선들이 정상회담의 결과에 벌써부터 관심을 두는 이유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최근의 북한은 기존의 북한이 아닌 듯하다” “통일보다는 개별국가의 생존논리…언뜻언뜻 엿보여” ‘북한은 통일을 여전히 중심 화두로 삼고 있는가?’ 올해 남북 간 ‘전쟁 위기’와 최근 ‘개성공단 위기’ 국면에서 북한의 성명 등을 꼼꼼히 살펴본 정현곤 시민평화포럼 공동운영위원장은 이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고 답한다. 오랫동안 통일운동과 평화운동에 몸담아온 정 위원장이 보기에 최근의 북한은 ‘기존의 북한’이 아닌 듯하다. 이제까지의 북한이 통일담론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면, 최근에는 ‘분단으로부터 독립된 하나의 국가’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가 언뜻언뜻 엿보인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한반도의 비핵화를 얘기하면서도, 미국에 대해 핵 군축을 주장하는 부분이 그렇다. 핵 군축은 핵을 줄이는 것이지 핵을 완전히 없애는 ‘비핵화’와는 거리가 있는 개념이다. 여기에서는 ‘통일’보다는 개별 국가의 ‘생존’ 논리가 강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정 위원장은 요즘 북한이 ‘조건부 비핵화’와 ‘핵 군축’을 모두 얘기하는 것은 북한이 ‘통일담론 유지’와 ‘독립국가 담론으로의 전환’의 갈림길에 있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이런 ‘느낌’이 정확하다면, 박근혜 정부가 남북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 ‘통일담론’ 전체가 효용성을 잃을 가능성도 높음을 뜻한다. 무엇보다 남한에서는 이미 상당 부분 통일무용론이 진행되고 있다. 갤럽의 연도별 여론조사(표 참조)에 따르면, 지난 2월 조사에서 남한 주민 20%가 ‘통일보다는 현재대로가 낫다’고 답했다. 2001년에 8%에 달했던 통일무용론이 2011년 12월 24%에 이르는 등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홍민 동국대 한국사회과학연구(SSK) 연구교수는 특히 젊은층의 통일무관심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홍 교수는 26일 에스에스케이연구팀 통합 심포지엄에서 “현재 남한 젊은이들의 경우 광포하고 잔인한 신자유주의적 삶에 포위되어 살아야 한다”며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통일보다 정규직이 소원이 된 나라”라고 지적했다. 정현곤 위원장의 분석은 이런 ‘통일무용론’이 배경은 다르지만,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으로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가 새로운 안보 균형점을 찾지 못해 장기간 남북관계 개선책을 만들어내지 못할 경우, 남북 양쪽에서 통일담론이 빠르게 훼손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어쩌면 박근혜 정부에서 통일부가 외교부에 흡수돼버리는 일도 그저 ‘상상’만은 아닐지 모른다는 우려가 든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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