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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월26일은 한국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한 지 3년이 되는 날이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지만 천안함은 여전히 남북관계, 더 나아가 동북아 정세에서 불안요소다. 왜냐하면 한국 정부가 주도한 민관 합동조사단이 천안함 사건에 대해 ‘폭침’으로 규정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국제적 합의는 물론, 국내적 합의 도출도 미흡한 상황이라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다툼이든 서로가 잘잘못에 대해 합의를 이뤄야 끝을 맺을 수 있다. 서로 옳다고 계속 주장하는 상황에서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더욱 크게 번질 수도 있다. 그런데 천안함과 관련해서는 남은 북의 소행이라고 규정하고 북은 남의 모략극이라고 강하게 대립하고 있다. 남쪽 국민들의 시각도 일치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북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에서 볼 때는 사과’인 묘안을 찾는 것은 어렵다.
이제는 정부는 물론이고 여러 논의 주체들이 서로의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합일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정현곤 시민평화포럼 공동운영위원장이 “합조단의 천안함 관련 모의폭발 시뮬레이션을 다시 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눈여겨봐야 할 사안이다. 보수-진보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음으로써 우리 스스로 ‘천안함 출구’를 만들어나가자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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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교수가 밝힌
‘합조단 데이터 조작설’ 논란 계속
“에너지분광 분석결과
선체·어뢰 흡착물질과
폭발실험 흡착물질 달라야”
국방부는 여전히 재실험 거부
“합조단 조작 없었다
3개 흡착물질은 동일성분…
표면 불규칙한 분말 경우
분광분석 원소비율 달라져”
‘진검승부.’
정현곤 시민평화포럼 공동운영위원장은 천안함 관련 ‘수중폭발 시뮬레이션 재실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 20여년 동안 통일운동과 시민운동에 몸담아온 정 위원장은 이 재실험이 이승헌 미국 버지니아대학 교수(물리학)가 제기하고 있는 ‘합조단 자료 조작설’의 진위를 가려줄 핵심 열쇠라고 판단하고 있다. 재실험을 하면 천안함 민관 합동조사단(합조단)과 이 교수 중 한쪽은 거짓말을 한 것으로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결과는 지난 3년간 남한 사회를 가두어왔던 ‘천안함’이라는 긴 터널에서 벗어날 출구가 돼줄지도 모를 일이다.
2010년 3월26일 발생한 천안함 침몰 사건과 관련한 의혹은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멈추지 않고 있다. 정부가 구성한 합조단은 2010년 5월20일 “북한의 130t급 연어급 잠수함이 무게 1.7t의 중어뢰인 CHT-02D를 발사해 천안함을 폭침시켰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발표에 대해 연어급 잠수함의 존재 여부, 높은 부식률을 보인 CHT-02D 어뢰의 진실성 여부, 폭발 뒤에도 남아 있는 어뢰추진체 ‘1번’ 글자 문제, 합조단이 밝힌 어뢰의 폭발력과 지진파의 불일치 등 많은 의혹이 제기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정 위원장은 하지만, “이 논쟁들 가운데 많은 부분은 진위를 가리기 어려운 추정에 근거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추정에 근거한 논쟁들이 지속되면서 ‘천안함 폭침’이라는 정부의 공식 발표는 여전히 전체 국민들을 제대로 설득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 위원장은 그러나 이 교수가 주장하는 ‘합조단 자료 조작’설은 재실험을 통해 명확하게 진위를 가릴 수 있는 사안이라고 강조한다. 중립적인 추진단을 구성해 재실험을 한 뒤 그 결과를 공개하면 합조단의 주장이 맞는지, 이 교수의 주장이 맞는지를 모든 사람들이 판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의 주장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합조단이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의해 격침된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천안함 사건 이후 자체적으로 실시한 ‘수중폭발 시뮬레이션 결과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합조단은 2010년 5월20일 조사결과 발표 때 수중폭발 실험 결과 생성된 흡착물질(이하 폭발실험 흡착물질C)이 천안함 선체에서 발견된 흡착물질(이하 선체 흡착물질A), 그리고 ‘결정적 증거물’인 어뢰추진체에서 발견된 흡착물질(이하 어뢰 흡착물질B)과 동일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교수는 이런 조사결과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선체 흡착물질A와 어뢰 흡착물질B는 양판석 캐나다 매니토바대 지질학과 교수와 정기영 안동대 교수가 각각 독립적으로 분석해 ‘알루미늄 황산수화물’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알루미늄 황산수화물은 폭발에 의해 생기는 물질이 아니며 100도 이하의 낮은 온도에서 생성되는 침전물질이다.
따라서 이 교수는 흡착물질A 및 B에 대한 에너지분광(EDS) 분석 결과는 합조단이 발표한 것처럼 알루미늄과 산소의 비율이 1:0.9인 것이 맞다고 본다. 하지만 합조단이 폭발실험 흡착물질C의 에너지분광 분석결과 알루미늄과 산소 비율이 흡착물질A 및 B와 비슷하게 나왔다고 발표한 것은 명백한 조작이라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폭발실험에서 나온 흡착물질은 알루미늄과 산소의 비율이 1:0.23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따라서 합조단이 알루미늄과 산소의 비율이 1:0.23인 실험 결과를 감춘 채, 흡착물질A 및 B와 비슷한 데이터를 거짓으로 내놓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지난 19일 <한겨레>가 요청한 질의서에 대한 답변에서 “합조단의 실험 결과에는 어떤 조작도 없었으며, 세개의 흡착물질은 동일성분”이라며 “이는 명백한 어뢰폭발의 증거”라고 밝혔다. 또 국방부는 이 교수의 에너지분광 분석 결과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천안함 선체 및 어뢰추진체의 흡착물이 산화알루미늄이 아닌 비결정성 알루미늄 산화물로 구성되어 있고 동일한 물질일지라도 표면이 불규칙한 분말의 경우 에너지분광 분석상의 원소비율이 크게 달라진다”며 “이를 근거로 폭발의 진위를 따지는 것은 비과학적”이라고 밝혔다.
지난 3년 동안 이어져온 이 교수와 합조단의 의견대립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모습이다. 국방부로서는 재실험 요구 자체를 정부가 주도한 기존 실험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재실험 요청을 수용하면, 스스로 1차 실험에 대한 의혹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남한 사회 전체가 치르고 있는 국론분열에 따른 국력손실을 고려해본다면, 국방부가 대승적으로 재실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 위원장은 실제로 2011년의 경우 보수진영에서도 이런 문제의식에 동의해, 재실험을 포함한 의혹 해소 노력을 진보-보수단체가 공동으로 시도한 적이 있다고 설명한다. 당시 진보적 싱크탱크인 세교연구소에 상임기획위원으로 몸담고 있던 정 위원장 등이 보수우파진영의 싱크탱크인 시대정신(대표 이재교) 관계자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한국과총) 관계자들과 함께 이승헌, 양판석 교수를 포함해 학술심포지엄을 여는 계획을 추진했다. 정 위원장은 “당시 시대정신 관계자가 ‘정부가 설마 데이터를 조작했겠느냐’며, ‘모든 것을 열어놓고 토론하면 의혹이 해소되고 합조단의 결과가 맞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학술심포지엄은 결국 이승헌 교수의 ‘재실험 요구’를 한국과총이 수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생하면서 추진 자체가 무산됐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국론분열의 심각성을 진보단체와 보수단체가 함께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은 결과와 상관없이 높이 살 만한 시도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평화포럼의 또다른 공동운영위원장인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천안함 문제에 대해 국회가 좀더 능동적인 자세로 의혹과 갈등 해소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 사무처장은 “지난 18대 국회 때 천안함 특위가 구성됐지만, 보고서도 채택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됐다”며 “천안함 사건 조사 발표와 관련이 없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상황에서 국회 국방위 등이 나서서 의혹 검증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참여연대는 2012년 3월 천안함 사건 2주년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9·11 테러 조사와 관련해서 미 상원에 설치됐던 9·11 위원회 같은 여야 공동 특위 구성”을 촉구한 바 있다.
정현곤 위원장도 “국회가 천안함 관련 의혹을 해소하는 데서 가장 중심적인 주체가 돼야 한다”며 “곧 시민단체들과 함께 국회가 제 역할을 하도록 촉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년 천안함 4주기 때는 정 위원장 등이 추진하는 ‘진검승부’의 결과가 국민 앞에 드러나 국민들이 ‘하나의 시각’으로 천안함 사건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국방부나 정부 공격하자는 취지 아니다
남북관계 재개 걸림돌 제거하자는 의미”
재실험 주장 정현곤 위원장
천안함 관련 ‘수중폭발 시뮬레이션 재실험’을 제안하고 있는 정현곤(사진) 시민평화포럼 공동운영위원장은 재실험 추진이 국방부나 정부를 공격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가 앞으로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데서 예상되는 큰 걸림돌을 제거하자는 의미가 크다고 밝힌다. 그가 말하는 ‘큰 걸림돌’은 국민들 중 상당수가 여전히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 위원장이 활동하고 있는 시민평화포럼은 평화와 통일에 대한 시민사회의 무관심을 극복하고 “일반시민과 단체도 자유롭게 참여하고 소통하고 연대하는 것을 목표”로 2008년 10월 출범한 시민단체이다.
정 위원장은 이밖에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6·15 남측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세교연구소 상임기획위원 등 시민단체와 통일단체를 잇는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합조단이 모의 폭발 실험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이승헌 교수의 주장은 이 교수가 3년 동안 계속해온 주장이다.
“그렇다. 천안함 문제에 계속돼온 여러 의혹 제기 중의 하나다. 하지만 다른 의혹들은 검증이 쉽지 않은 추정에 근거한 것들이 많다. 이 교수의 주장은 재실험만 하면 진위가 드러난다. 이번 제안이 국방부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이 문제를 과도하게 쟁점화시켜서 갈등을 유발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재실험 결과 데이터를 보고, 결과에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가장 유력한 길을 찾으면 된다.”
-재실험 결과에 따라 후속조처가 크게 달라질 것 같은데.
“만일 재실험을 해서 합조단의 주장이 진실로 밝혀지면, 정부의 천안함 발표에 대한 신뢰는 크게 높아질 것이다. 반대의 경우라면, 재조사 등 천안함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방법들을 정부가 강구해야 할 것이다.”
-재실험 결과는 박근혜 정부가 앞으로 남북관계를 푸는 데도 큰 영향을 줄 것 같다.
“새 정부는 천안함 사건 관련 합조단 발표 등과 관련이 없다. 이에 따라 남북관계 재개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다고 생각한다. 남북대화를 재개하자면 천안함 문제의 책임을 남북간에 확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실제 폭침이라면 명백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천안함 문제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천안함에 대한 북한의 책임이 어느 정도인지, 또 그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합의가 어느 정도인지가 새 정부가 남북관계를 푸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국방부가 재실험에 부정적 태도이므로, 우선 재실험을 할 수 있는 주체를 찾아야 할 것 같다. 폭발물 취급이 가능한 대학연구소 등이 좋을 것 같다. 재실험 주체를 찾는 것도 정부와 소통해가면서 진행할 계획이다.”
글·사진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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