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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싱크탱크 광장] “통일부, 남북경협 피해 전수조사 한번도 안해”

등록 2012-05-22 19:44

정양근 남북경협활성화추진위 위원장
정양근 남북경협활성화추진위 위원장
‘5·24 조처 2년’ 토론회
인터뷰 l 정양근 남북경협활성화추진위 위원장
“5·24 조처로 상처받은 것은 오히려 올바른 대북 관계 원칙이다.” ‘5·24 조처 2년, 남북관계 전환과 19대 국회의 과제’라는 주제로 21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터져나온 우려의 목소리이다. 사단법인 한반도평화포럼과 시민평화포럼이 주최한 이 심포지엄은 2010년 천안함 사건 발생 두달 만에 급박하게 발표된 5·24 조처의 영향을 집중 분석했다. 참석자들은 이 조처가 훼손한 것은 남북경협, 인도지원, 사회문화교류의 전 분야에서 지난 15년간 발전시켜온 원칙들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과연 오는 6월 개원하는 제19대 국회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남북경협 참여 기업인들의 모임인 ‘남북경협활성화추진위원회’ 정양근 위원장은 남북경협 사례 발표와 발표 뒤 한 인터뷰 동안 내내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정 위원장뿐만 아니라 모든 남북경협 기업인들에게 5·24 조처는 기업의 생명줄을 끊는 행위이자 민족경제공동체 구현이라는 남북경협의 본질적 의의마저도 상실케 하는 걸림돌이 돼 있기 때문이다.

정 위원장이 대표를 맡고 있는 남북경협활성화추진위원회는 5·24 조처 등 현 정부의 남북경협 제한 조처로 피해를 본 남북경협 기업인들이 지난 2월17일 발족시킨 단체이다. 정 위원장은 이날 전체 남북경협 경제인을 대표해 19대 국회에서 남북경협 기업 피해 사례를 조사하는 조사처를 신설하고 보상입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성과 금강산 등지에서 활발히 사업을 하신 것으로 안다.

“개성에서는 개성공단 외곽지역의 북한 땅에서 농사를 지어 개성공단 노동자들에게 식자재와 일용품을 공급하는 사업을 진행했고, 금강산에서는 북한 농산물을 가공해서 판매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두 사업체 모두 현재 운영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업장 방문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두담’이라는 회사명으로 운영하던 개성 쪽 사업은 1단계로 판매소와 저장소를 지은 상태에서 진전을 못하고 있다. 더욱이 개성공단 바로 바깥에 있다는 이유로 사업장 방문마저 불허돼왔다. 금강산 사업장의 경우도 계속 방문이 불허돼오면서 2011년 초에는 재고 상태로 오래된 농산물이 상태가 안 좋아져 1억5천만원어치를 불에 태워버리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5·24조처는 기업 생명줄 끊어
남북경협 본질마저
상실케 하는 걸림돌”

-남북경협활성화추진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다른 경협인들도 5·24 조처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위원회는 이전에 존재했던 남북경협사업자협의회, 금강산지구기업협의회 등 다양한 남북경협사업자단체가 한데 힘을 모아 구성한 것이다. 모두 다 큰 어려움에 처한 기업이다. 많은 사람이 파산을 했고, 어떤 이들은 심지어 목숨을 버리는 충동까지 느껴야 했다. 한 예로 5·24 조처 이전에는 북한 기업에 송금하는 것이 포괄승인을 받으면 언제든지 가능했는데, 현재는 매 건 승인을 받아야 송금을 할 수 있다. 이것을 위반하면 무슨 사상범이나 된 것처럼 경찰서 보안계에 불려가 조사를 받아야 한다.”

-통일부를 비롯한 정부에서 지원대책을 마련한 것은 없나?

“남북경협 기업들이 목소리를 높여 지원책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지난 2월에도 경협 기업을 대상으로 총 400억원 대출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런 지원은 여우가 두루미를 초대해놓고 접시에 음식을 차려놓은 꼴이다. 지원 대상과 범위 등에서 피해 업체들의 이야기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한 예로 대출조건이 3년 연속 적자인 기업은 신용대출을 못 받게 돼 있는데, 이미 현 정부가 들어선 2008년부터 3년 내내 적자를 본 기업이 상당수다. 더욱이 폐업을 한 기업의 경우, 더 피해가 큰데도 지원 대상조차 될 수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통일부는 피해 업체의 상황이 어떤지 전수조사조차 한번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19대 국회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해야 하나?

“무엇보다 남북경협 기업체들의 피해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회에 경협사업 피해조사처를 만들어서 공정한 입장에서 피해신고 등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남북경협에 관여했던 기업이 전국적으로 1100개 정도에 이르렀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 중 상당수 기업들이 피해를 보고, 다수는 폐업을 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이들이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파악하는 것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중국과 대만은 설혹
미사일이 발사되더라도
경협 중단하는 일 없었다“

-피해조사 이후 국회에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가장 기본적인 것은 19대 국회에서 피해를 본 경협인들이 다시 남북경협을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피해를 입은 기업들은 대부분 남북경제공동체라는 민족의 비전을 실현하는 데 제일 앞장서 있던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의 노력이 실패로 끝나게 되면 앞으로 남북경협을 하겠다고 나설 기업이 없을 것이다. 2010년 대한상공회의소 자료에 따르면 기업인 80%는 이미 앞으로 남북관계가 정상화된다 하더라도 남북경협 사업에 참여할 의향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이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어떤 방식이 가장 좋은 방식인가?

“우선 피해를 조사했으면, 그에 따라 보상 등을 해주는 입법이 이루어져야 한다. 앞으로 남북경협 사업이 다시 발전해나가려면, 경영 외적 사유 즉 남북한 간의 정치적 이유로 정상적인 사업 진행이 어려워졌을 경우 이에 대한 보상을 남과 북이 해야 한다는 취지의 입법이 꼭 필요한다. 보상입법이 특별법이 될지 일반법이 될지 등에 대해서는 추후 더 논의해야 하겠지만, 남북경협 발전에 필수적인 정경분리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서도 보상입법은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

정 위원장은 인터뷰와 사례 발표를 하는 내내 중국과 대만의 성공적 경협 사례를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중국과 대만은 설혹 중국에서 미사일이 발사되더라도 경협을 중단하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중국-대만 사이의 교역 규모가 1500억달러로 성장할 수 있었던 주요 요인이다.” 정 위원장은 우리의 남북경협 기업인들도 재기해 중국과 대만 못지않은 경제교류를 이루는 데 한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한반도평화포럼과 시민평화포럼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5·24 조치 2년, 남북관계 전환과 19대 국회의 과제’를 주제로 연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무대 위 오른쪽부터 정경란 시민평화포럼 운영위원장, 정양근 남북경협활성화추진위원장, 사회를 맡은 정현백 성균관대 교수, 강영식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운영위원장.  이정우 선임기자 <A href="mailto:woo@hani.co.kr">woo@hani.co.kr</A>
한반도평화포럼과 시민평화포럼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5·24 조치 2년, 남북관계 전환과 19대 국회의 과제’를 주제로 연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무대 위 오른쪽부터 정경란 시민평화포럼 운영위원장, 정양근 남북경협활성화추진위원장, 사회를 맡은 정현백 성균관대 교수, 강영식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운영위원장.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지난해 북에 1원 한푼 지원안해
훗날 광란의 시기로 기록할 것”

인도적 분야

“5·24 조처 이후의 기간을 훗날 역사는 광란의 시기로 기록할 것입니다.”

강영식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운영위원장은 5·24 조처 이후 2011년 정부의 실질적 대북 지원이 ‘0’이 됐음을 지적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동안 정부는 당국차원 지원, 민간단체를 통한 지원, 식량차관을 통한 지원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북한을 지원해왔는데, 2011년에는 이 모든 영역에서 지원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이 65억원이 집행됐지만, 이 또한 2010년에 결정된 것임을 고려할 때 지난해 정부는 말 그대로 북한에 1원 한푼 지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1년 131억원을 북한에 지원한 민간 차원의 인도적 지원이라고 다르지 않다. 민간 차원 인도적 지원은 이 기간 남한 당국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 정부는 5·24 조처 직후 어떤 대북 지원도 불허했다. 지난해부터 부분부분 영유아 대상 지원과 밀가루 지원을 허용했지만,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다시 규제하는 것을 반복했다. 강 위원장은 이는 인도적 지원을 대북 압박정책의 수단으로 전락시킨 것을 의미한다고 비판했다.

강 위원장은 정부의 이런 무원칙과 오만이 잘 드러난 사례로 지난해 대북 수해지원 협의 과정을 꼽는다. 2011년 6~7월 북한에 수해가 발생하자 정부는 50억 상당의 수해지원 물품을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북한이 “식량과 시멘트 등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정부는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을 내세우면서 초코파이, 영유아용 과자 등을 중심으로 물품을 보내겠다고 주장해 결국 지원이 무산됐다. 강 위원장은 이렇듯 인도적 지원이 정치적 고려에 따라 좌우됨에 따라 남북한은 모두 인도주의적 정신을 잃게 됐다고 지적했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왼쪽부터 정현백 성균관대 교수, 강영식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운영위원장, 정경란 시민평화포럼 운영위원장.
왼쪽부터 정현백 성균관대 교수, 강영식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운영위원장, 정경란 시민평화포럼 운영위원장.
“교류 허가 대부분 내주지 않아
주민들 만나는 기회마저 봉쇄”

사회문화 부문

5·24 조처는 사회문화분야의 남북협력에도 큰 타격을 줬다.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활발히 열리던 정부 차원의 회담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급격히 줄어들다가, 5·24 조처 이후에는 거의 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는 민간차원에서 진행되는 사회문화교류도 허가를 대부분 내주지 않았다. 정경란 시민평화포럼 운영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통일이 정부와 민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때 이런 민간부문 사회문화교류 축소는 그대로 정부의 운신의 폭을 줄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전 정부에서 사회문화교류는 정치적인 문제로 남북관계가 경색됐을 때 그것을 풀어주는 완충제 구실을 하기도 했는데, 이제 그런 역할을 기대하기 쉽지 않아졌다는 것이다.

정 위원장이 더 안타까워하는 부분은 이런 사회문화분야의 교류 축소로 인해 “남북 주민들이 통일을 준비하며 주체가 되어가는 공간을 잃었다”는 것이다. 정 위원장 자신도 2000년대 중반부터 사회문화분야 교류에 참가해 북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오랜 분단이 만들어낸 이질성을 체감했고, 다시 그것을 바탕으로 민족 동질성 회복에 대한 고민을 깊이 있게 해나갔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5·24 조처 등으로 만남의 기회마저 봉쇄되는 기간이 길어진다면 진정한 화해 방안을 찾는 일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모든 분야에서 대북 협력과 지원을 금지하고 있는 5·24 조처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정책이라는 정부의 주장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2011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조사를 보면 5·24 조처 이후에도 국민들은 북한을 경계나 경쟁, 혹은 적대 대상(36.3%)이 아니라 지원이나 협력 대상(63.7%)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경협 정경분리 원칙 세우고
피해자 보상법 마련 나서야”

19대 국회 과제

‘원칙의 회복과 유지를 위한 입법화.’

‘5·24 조처 2년…’ 토론회에 참석한 주요 토론자들이 19대 국회의 과제로 한결같이 강조하는 대목이다. 5·24 조처를 통해 훼손된 통일 관련 원칙들을 다시 세우고, 앞으로는 그런 원칙 훼손이 일어나지 않도록 법률을 제정해 안전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훼손된 원칙들을 회복하는 것이다. 5·24 조처는 남북경협, 인도적 지원, 사회문화 교류를 전면적으로 봉쇄하면서, 1988년 7·7선언 이후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확립돼온 정경분리, 인도적 지원의 정치적 이용 금지, 민간 부문 남북 교류 지원과 장려라는 근본 원칙을 모두 크게 훼손시켰다. 이로 인한 피해자는 교류협력의 직접 당사자뿐 아니라 전체 국민이다. 가령 남북경협 당사자가 큰 손해를 입는 것을 보면서 기업인들이 남북경협에 참여하기를 더욱 꺼림에 따라 남북경제공동체 구성이 지연되거나 불가능하게 될 때, 그 손실을 감당해야 할 것은 경제인만이 아니다. 사회문화분야 교류 축소로 국민이 주체가 되지 못할 때, 들러리로 전락하는 것도 교류협력의 직접 당사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참석자들은 19대 국회에서는 이런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입법화에 나서줄 것을 강조했다. 경제협력분야에서는 무엇보다 정경분리 원칙과 경협 피해자 보상법안 마련을, 사회문화분야에서는 남북사회문화교류진흥법 제정을 핵심 과제로 꼽았다. 그리고 인도적 지원 분야에서는 지원 여부를 놓고 소모적 논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지원하는 것이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둔 것인지를 논의해 입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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