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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식량·전력 ‘절대과제’…권력 강화뒤 ‘점진적 개방’ 나설듯

등록 2011-12-22 20:42

김정은(맨 앞) 조선노동당 중앙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평양에 있는 목란 비디오 회사를 방문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9월11일 이 사진을 배포했다.
김정은(맨 앞) 조선노동당 중앙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평양에 있는 목란 비디오 회사를 방문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9월11일 이 사진을 배포했다.
김정은 체제 집중분석 ③ 개혁·개방정책 펼칠까
김정은, 자본주의 체제에 익숙
경제협력·외자유치 총괄해온
후견인 장성택도 개방 적극적
쌀과 전기. 김정은 체제가 단기적 권력 장악을 넘어 중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있을지는 결국 이 두 가지를 인민들에게 공급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는 주민들의 마음을 돌려세우려면 공권력을 동원한 사상 통제를 넘어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보다 더 많은 생필품과 에너지를 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개혁·개방은 김정은 체제로선 언제고 피해갈 수 없는 과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망가진 북한 경제 시스템의 개선 없이 민생 회복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탈북자 출신 김영희 정책금융공사 조사연구실 수석연구원은 “북한 주민 입장에서 볼 때 김정일 위원장은 핵개발로 군사강국을 이뤘다지만 경제강국은 달성하지 못한 채 숨졌다”며 “강성대국 달성을 최대 업적으로 내세워야 할 김정은으로선 인민생활 향상을 김 위원장의 유훈으로 받들고 제한적이나마 개혁·개방을 추진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개인적 이력도 그가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를 낳는 요소다. 김 부위원장은 스위스에서 교육을 받아 선진 자본주의 체제 문물에 익숙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나 중국의 덩샤오핑처럼 역사적으로 젊은 시절 외국 체류 경험을 지닌 지도자들이 주도적으로 개혁·개방을 추진한 사례가 많다. 김 부위원장의 최대 후견자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북-중 경제협력과 외자 유치를 총괄하는 등 개혁·개방에 적극적인 편이라는 점도 기대를 높이는 요인이다.

문제는 시간과 범위이다. 충분한 준비 기간 없이 급박하게 출범한 김정은 체제로선 당분간 권력 내부 엘리트 장악을 통한 권력 기반 공고화가 무엇보다 급선무다. 국정원 3차장(북한 담당)을 지낸 한기범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권력 속성상 일단은 권력을 확고하게 장악한 뒤에야 경제 시스템의 개혁 등 구체적인 민생 문제를 고민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단기간 김정은 체제의 개혁·개방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정은 체제 권력 기반의 취약성이 군부와 기존 관료 집단의 반발을 부를 수 있는 개혁·개방 추진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는 진단이다.

일정한 준비기를 거쳐 개혁·개방을 추진하더라도 그 방식은 매우 제한적이고 점진적인 양상을 띨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조봉현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전면적 개방·개혁까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일단은 나선과 황금평 등의 북-중 합작 특구개발에 속도를 내고, 제한적으로 특구에 한정된 법과 제도를 갖춰 실제 가동에 들어가는 정도로 출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거점식·점진적 개혁·개방 전략을 펼칠 것이라는 예상이다. 조 연구원은 “김일성 주석의 100번째 생일인 내년 4월15일까지는 내부 단속에 주력하고 이후 제한적 개혁·개방 플랜을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영희 수석연구원도 “단기적으로는 중국과 미국 등의 지원을 받아 민생에 기름칠을 한 뒤 점차적으로 제한적 특구개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갈 걸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정책 변화의 성과를 봐가면서 집단농을 시범과정을 거쳐 개인농으로 바꾸고 배급제를 단계적으로 완화·폐지하는 식의 내부 시스템 개혁에도 손을 댈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북 경협과 관련해서도 개성공단 등 기존의 제한적인 특구 확대 방식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고경빈 전 통일부 정책홍보본부장은 “통치자금 확보를 위해서도 제한적으로 분리된 형식의 특구를 유지하고 늘려나갈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제한적 개혁·개방이 전면적 시스템의 정비로까지 이어질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한기범 교수는 “김정일 재임 때인 2002년 시도했던 시스템 개혁조처인 7·1 경제관리개선조처가 후반부 들어 김정일의 결정으로 무효화됐다”며 “아버지의 유훈을 잇는다는 점에서도 김정은이 7·1조처 식의 개혁조처를 다시 시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당시 7·1조처를 주도했던 경제 간부들이 숙청됐던 경험도 김정은이 다시 시스템 개혁을 추진하는데 장애 요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김정은의 후계자 수업기간 싱가포르와 미국 등에 경제고찰단을 보내 시스템 개혁을 상당히 연구한 만큼 점진적 개혁·개방 성과에 따라선 전면적 개혁으로 나아갈 수 있다”(조봉현 연구원)는 의견도 있다.

김정은 체제의 개혁·개방 추진과 관련해 남쪽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많다. 고경빈 전 본부장은 “김정은의 가장 큰 고민은 남북이 대치한 상황에서 개혁·개방으로 북한 체제와 자신의 권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라며 “김정은이 안심하고 개혁·개방을 추진할 수 있도록 끌고가려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봉현 연구원은 “개성공단을 안착시키고, 5·24 대북조처로 중단한 대북 교역·임가공 등을 다시 허용하는 데서 출발해 점진적으로 특구를 늘려나가면서 북한의 안정적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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