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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확실한 투자 보장” 요구에 “믿을 수 없다” 대꾸

등록 2007-06-12 11:58수정 2007-06-14 13:30

평양 봉화피복공장 노동자들의 작업모습. ‘위대한 장군님의 동지애를 따라 배우자’ 등 정치구호가 요란하다. 류이근 기자
평양 봉화피복공장 노동자들의 작업모습. ‘위대한 장군님의 동지애를 따라 배우자’ 등 정치구호가 요란하다. 류이근 기자
[류이근기자의 평양 방문기]④ 경제관 차이

얼마큼 만드는지 값은 얼만지 대답 다 달라

투자 매력있지만 원가 개념 없고 시설 낡아

“북한이 다 돈으로 보일 거야.” 한 경제계 인사가 남쪽 기업인들에게 북한은 온통 돈 벌 아이템으로 가득한 곳이라고 말했다. 장사와 거리가 먼 방북단 인사들조차 농담처럼 ‘여기 와서 이걸 하면 떼돈 벌겠다’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한다. 북한은 정말 기회의 땅인가?

여기 와서 이거 하면 떼돈 벌겠다?

5월16일 북한은 남쪽 인사들에게 좀처럼 열지 않는 공장 문을 열었다. 북쪽 안내원은 버스에서부터 잔뜩 긴장했다. “공장이 주민 지역에 있다. 그것 아시구 촬영 주의 하시라우.” 날씨가 흐렸다. 차창 밖 평양 시민들은 외출복에 장화를 신었다. 버스가 멈춘 곳은 평양 만경대 구역 내 운동화와 장화를 생산하는 ‘류원 신발공장’이었다. 남쪽에서 올라온 행사 안내원도 주의를 줬다. “질문은 간단하게 해라. 물어볼려면 간부에게 한 두 마디 물어라. 불미스러운 일은 없도록 해라.” 공장 정문 앞엔 ‘3대 혁명 붉은기 쟁취 전투장’이라는 붉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류이근기자의 평양기행] ④북한 경제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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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간단하게, 불미스러운 일 없도록”

“하루 몇 켤레나 생산합니까?” 겨우 말을 붙일 수 있는 운동화 생산 라인의 노동자와 공장 간부들에게 같은 질문을 계속 던졌다. “1년에 40만 켤레를 생산합네다. 하루엔 2천 켤레요.”(공장 지배인) “하루 1000~1500켤레쯤”(한 여성 노동자) “하루 1600켤레를 생산합네다”(문성일·32) “년 100만 개”(한 남자 노동자).

신경질적인 제지 받으면서 물어봤지만…

북쪽 안내원의 신경질적인 제지를 받으면서 물어봤지만, 대답은 다 달랐다. 우문이었다. 북쪽 제조업 공장의 가동률은 20~30%에 불과하다. 이날 공장 가동도 남쪽 손님들을 위한 ‘연출’이라고 남쪽에서 올라간 제조업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김성옥 한국신발피혁연구소 본부장은 “공장 한 쪽에 재료와 완제품이 쌓여 있어야 하는데 없더라. 재료가 부족해 많이 생산을 못 하는 것 같고, 신발 창을 만드는 공정을 보면 아주 초보적인 수준의 운동화”라고 말했다.

그런데 하루 몇 켤레나 생산하는지를 되풀이 해서 물었으니. 북쪽에선 생산량을 물어보면 생산 계획량 또는 물품의 최대 생산 가능량을 갖고 답한다는 것도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비누 한 개가 노동자 평균 임금의 1%

이 공장에서 10년을 근무했다는 한 남자 노동자는 “운동화 한 켤레가 얼마냐”고 묻자, “우린 가격은 모른다. 국가에서 100% 다 해결해준다”고 말했다. 그는 “통일에 힘 써주길 바란다”며 미리 교육을 받은 듯한 멘트를 남쪽 기자에게 날렸다. 그의 말과 달리 신발은 배급(국가 공급) 대상이 아니다.

가격에 대한 궁금증은 쉽게 풀 수 없다. 평양화장품공장을 방문해서도 마찬가지였다. 2005년 10월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지 지도한 흔적들이 공장 곳곳에 자랑스럽게 남아 있다. 기념비도 앞마당에 우뚝 서 있다. 치약 공장에 들어가 중간 간부로 보이는 남자에게 개당 가격을 물었으나, “글쎄, 국가적으로 공급되는 거라서…모르겠다”고 답했다. 은하수(140g, 국규 8697-2002)라는 상표명의 치약은 남쪽에서 80년대 가장 많이 썼던 ‘럭키 치약’보다 제품 용기나 질이 떨어졌다. 물품에 정말 가격이 없을까? 김서진 민화협 정책위원은 흐믓한 표정으로 다가와 “지배인에게 따로 물었더니 상점에서 치약은 40원(북한 돈 기준), 비누는 30원에 팔린다”고 귀뜸해줬다. 북쪽 노동자의 평균 임금이 3천 원이라고 했을 때 비누 하나가 임금의 무려 1%에 달한다.

평양 화장품공장 노동자들이 치약 튜브를 생산하는 모습. 류이근 기자
평양 화장품공장 노동자들이 치약 튜브를 생산하는 모습. 류이근 기자

“고건, 자재 공급하는 데가 따로 있어서…”

지배인은 비누의 원자재는 중국에서 수입해온다고 했다. 얼마치나 수입하냐구 묻자, “…고건, 자재를 우리가 수입하는 게 아니라 자재 공급하는 데가 따로 있어서 모른다”고 말했다. 북한의 계획경제시스템을 이해하면 그리 답답해할 노릇도 아니다. 하지만 남쪽 사람들에겐 좀 황당하다. 노성호 한국무역협회 남북교역지원팀장은 “신발공장이든 화장품공장이든 북쪽엔 도대체 원가 개념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욕심 뭐냐니까 “아직도 배고픈 게 많다…”

보여준 설비들은 대체로 낙후돼 있었다. 평양화장품공장 지배인은 끝내 화장품 생산라인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에게 “지배인 동지의 욕심은 뭐요?”라고 물었더니, “아직도 배고픈 게 많다. 화장품 생산공장을 좀 더 현대적으로 꾸리고, 비누와 치약 생산설비도 현대적인 것으로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도 어김 없이 교육받은 듯한 멘트를 빠뜨리지 않았다. “조국통일에 이바지하는 심정에서 앞으로 사업을 진행하겠다.” 가식적이란 느낌이 드니, 듣기 좀 불편했다.

공장들의 생산설비 현대화가 시급해 보였다. 류원 신발공장 공장장도 생산 설비의 현대화를 욕심내고 있었다. 이틀 전 방문한 평양봄철국제상품전람회는 북쪽의 그런 의지가 크게 반영된 행사다. 전람회장 한 중앙엔 김일성과 김정일이 과학기술 발전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교시가 ‘전시’돼 있다.

경제관과 시스템 너무 이질적…한반도 기류 변수 상존

공장 참관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남북간 단순한 기술 격차뿐만 아니라 경제관과 경제 시스템이 너무 이질적이라는 것이다. 한반도 안팎에서 조성되는 정치적 변수와 함께 경협의 걸림돌들이기도 하다.

남쪽의 기업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북쪽의 투자 매력이 있다. “현재 중국에 투자하고 있는데 웬만해선 북한에 투자하고 싶다. 인접해 있는데다 인건비가 싸고 말이 통한다. 거기다가 같은 민족 아니냐? (잠재적 경쟁자가 될) 중국에선 기술 유출 우려가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비슷한 정도의 ‘리스크’가 존재한다.

“일 없다, 당장 들어오면 된다” 대화 헛바퀴

평양봄철국제상품전람회에 출품된 칠보산수출목재가공공장의 바낙널 선전 간판. 류이근 기자
평양봄철국제상품전람회에 출품된 칠보산수출목재가공공장의 바낙널 선전 간판. 류이근 기자

5월17일 북쪽이 자랑하는 남포 부근의 영남 배(선박)수리 공장에 갔다. 세계 2위의 조선 업체인 대우조선해양은 현장에서 진지하게 투자 가능성을 검토했다. 2만 톤 급이 안 되는 배게호를 수리하는 망치 소리가 귀를 때렸다. 현재 북측 설비로는 남쪽의 투자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항만을 확장해야 했다. 물리적 조건을 떠나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중국과 같은 조건은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으나, 쉽지 않은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남북간 대화가 헛도는 경우도 많다. 남쪽의 기업가들은 북쪽에 ‘투자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끊임 없이 요구한다. 투자를 하는 기업들로서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곧바로 북쪽은 ‘일(문제) 없다. 당장 들어오면 된다. 투자한다 투자한다 말만하고 실제 들어오는 곳은 거의 없으니, 믿을 수가 없다’고 대꾸한다.

김 위원장 “천지 개벽” 발언 이후 6년, 북한은…

내부 자원과 동력이 고갈된 북한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개방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렇다고 시계는 결코 빠르게 갈 거 같지 않다.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 2001년 상하이를 방문해 “천지가 개벽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의 개혁·개방은 결코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78년 개방화 길로 나선 지 20년이 넘게 흘렀다. 개방의 성공 확률이 꼭 높다고 할 수도 없다. 북한의 지금 개방 조건이 중국의 78년보다 ‘낫다, 못하다’는 논쟁이 벌어질 정도로, 북한의 조건은 아직 열악하다. 20년 뒤 영남 배수리 공장과 평양의 공장들을 둘러볼 수 있다면, 그 때 우리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까? 20년 후 평양의 모습이 궁금하다. <끝>.

평양= 영상·글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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